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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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8 19:1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신구약 성경의 길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면서 빅데이터(big data)는 여러 방면에서 대개의 추세를 예측해 주고 있다. 그런데도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를 확실히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불확실한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경향 때문에 미래를 내다보거나 예측하려고 특별히 요한계시록을 많이 연구한다. 요한계시록에 관한 책들이 부쩍 많이 나오고 있다. 세계화의 강화로 인간관계나 국제관계가 비교적 쉽게 전해지고 있다. 국제관계도 인간관계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의 상대성을 먼저 짚어본다.

인간관계의 상대적인 요소들은 당사자인 우리(1인칭)와 너희(2인칭) 그리고 삼자인 그들(3인칭)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세계화의 심화로 말미암아 국제관계는 모호하면서도 불투명하다. 어제의 아군이나 우군이 반드시 오늘에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이 미래에 대한 상대적인 길은 너무도 희미하다.  동양의 유명한 철인이 그 길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갈급함은 인터넷 시대의 정보가 넘치고 있어도 내면으로 더 깊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성경으로 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길을 찾아 그 대개를 보고자 한다.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길은 생명나무의 길이다. 이 생명나무의 길은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길 가운데의 생명나무로까지 연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과하는 길이다. 구약성경에서의 중요한 길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의 길이다. 가나안까지 들어가는데 바로 가면 7일의 길이다. 그런데, 왜 40년 동안 걸어서 돌고 돌아야만 했던가? 여기에 여호와의 길인 주의 길이 있지 않은가? 이 여호와의 길은 너무도 심오하기에 거룩한 길이며 생명의 길이다. 온 세상은 이 길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길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이 칠흑같이 어두운 인간들의 시대에 그 마음들을 비추는 진정한 빛이다. 구약성경의 중심인물인 다윗이나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간 것도 온 세상이 가는 길이며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다. 이런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은 주의 길이 없이 따로 나와 단독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의 길도 주의 길로부터 나온 것들이다. 구약시대의 왕들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나라와 왕들의 길이 모두 예비 되어 있다(계16:12). 이러한 점에 대해서 여호와의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인간들의 길 자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욥은 그의 길이 여호와의 길 안에 있음을 깨닫고 귀로만 듣던 것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요컨대, 구약성경이 제시하는 길의 핵심은 바로 여호와의 길이다. 그 길은 의(義)의 길로서 그 의로운 길에 바로 생명이 있다.
다음에, 신약성경에서 그 길을 찾아 구약성경과 연결해 보고자 한다. 신약성경의 길은 구약성경과 연결되어 있다. 구약성경 여호와의 길은 신약성경에서 주의 길로 표현되었다. 어두운 시대의 불의한 왕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치던 세례요한을 죽였다. 주의 길이 바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임을 몰랐기 때문이다. 주의 길에서도 그 첩경(하나님의 대로)은 하나님 아버지에서 그 아들까지로 연결하는 길이다. 이렇게 성령으로 된 참으로 신비한 길을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확인하지 못하면 변하는 시대마다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수를 몰랐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주의 길인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사도바울은 구약성경에서의 그 의로운 길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임을 발견하여,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로 신약성경까지의 길로 연결시켰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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