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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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12-22 09: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2021년까지 살아 있다는 것


살고자 개인이나 세계는 오늘도 몸부림을 치고 있다. 세계적인 코로나시기를 맞이하여 사람들은 이 연말까지 곳곳에서 경계와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월유수(歲月流水)’에는 시간의 빠름과 동시에 그 힘이 묻어 있다. 밀레니엄(millennium)에 대한 감동과 감탄이 약 20년 전에 전 세계를 흔들어 놓지 않았던가? 세월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흘러 2021년 12월에 도달하였다. 온 세상은 패권(覇權)을 잡기 위해 달려왔고 또 달리고 있다. 그러한 야망이나 욕망은 그 누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하고 확인하게 되었다.
여기서 삶 곧 살아 있음에 대하여 시공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함께 고려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一切唯心造)”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이 말이 지닌 설득력 때문일 것이다. 시각의 차이(a difference of viewpoint)는 인류사에서 항상 있는 것이다. 방법적인 면에서 시각의 차이가 나는 것은 각 사람이 보는 것이 전체인가 아니면 그 전체의 부분인가와 깊이 관련된다. 이것을 감안하고 염두에 두면서 살아 있음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데 그 중심을 두고자 한다.
첫째, 공간과 함께하고 있다. 공간과 가장 밀접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있으면 공간이 있고 공간이 정해지면 시간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 인간과 인생이 들어 있다. 인간의 뇌(腦)에서 왼쪽의 뇌는 시간과 더 밀접하고, 오른쪽의 뇌는 공간과 상대적으로 더 연결되어 있다. 살아 있음에서 죽음으로 판정되는 구별과 기준에서 뇌사나 심장사(cardiac death) 등이 주로 인정되고 있다. 요즈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전쟁터나 집이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죽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지금 코로나시기를 맞이하여 세계는 공간적인 이동을 크게 자제하고 있다. 21세기의 20년에서 의식주문화와 함께 휴대폰은 일반생활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문화는 그만큼 편리하게 되었다. 21세기에 20여 년이 지나가면서, 또 5대양 6대주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 대하고 있는 이 코로나시기에 휴대폰의 통신생활을 결코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거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발로 뛴다는 말이 쉽게 들린다. 발이 넓다는 말은 사회활동과 맥을 같이 한다. 발은 땅을 딛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의 공간적인 움직임과 이동 등을 통하여 자신의 살아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직감하게 된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분명한 요소이다.
둘째, 시간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극복하고자 한다. 바로 숫자상의 극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누리고자 많은 취미를 찾아 나선다. 반대로 “나이는 속일 수 없다(The more the years, the nearer the grave)”는 것이 절대다수의 주장이다. 이러한 상반되는 두 생각 안에서, 코로나의 시기는 전 세계에 큰 시사(示唆)를 던져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신체 면에서의 극복이다. 육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나이를 이긴다는 것은 때로 어폐(語弊)일 수 있다. 2021년까지의 코로나는 사람 몸의 연약성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자기에게 속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사회적인 거리 두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의 생활을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은 영혼이나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신체적인 나이를 극복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 정신에 깃들어져 있을 것이다. 자신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나이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과 함께하고 있다. 대중 속의 고독함을 강조한 말은 대개 잘 알려져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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