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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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30 08: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적 오류를 진단하다


본 연재는 <한국크리스천신문> 교회개혁 특별기획 좌담회를 지면으로 옮긴 것으로, 이번 좌담회에는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 저자)과 박홍기 박사(성경신학학술원 연구원), 성경신학학술원 연구생 다수와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참여하였다

객원기자  오늘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과 제26장을 중심으로 개혁파 전통의 교회관과 성도들의 신앙관에 대해서 좌담회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신앙고백서는 지금부터 370년 전, 즉 중세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벗어난 종교개혁(1517년)이 백 년 정도 지난 시기에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개혁파 교회관이 성경의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지만,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그 결과 현재 한국 개혁파의 많은 교회가 다시 중세로 돌아가 버렸다는 심각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백서의 교회관은 무형과 유형이라는 통상적 분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형과 유형의 매개자로 이른바 ‘성직자’를 거론한 것은 교황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직자 중심의 교회관은 보혜사 성령께서 주관자 되시는 성도들의 교제를 왜곡하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오늘의 좌담회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Y연구생  지금 기자님이 지적하신 것을 고백서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 잠시 안내하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합니다. 상당 부분 성경 본문을 근거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의 신부이며 몸이며 하나님의 충만이라고 시작합니다. 사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야 하는 데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교회라고 강조하면서 보혜사 성령의 사역 즉 성령론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성직자와 말씀과 규례’를 강조함으로써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를 결국 ‘정상적 교회’처럼 오인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고 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교회의 유일한 지표인데, 성경과 공예배와 규례와 의식을 동등한 것으로 병렬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교황 지배와 사제 중심의 중세 로마 가톨릭으로 회귀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백서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라고 강조하면서 그렇지 않은 교회를 ‘사단의 회’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인간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거나 교회의 머리 행세를 하면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적그리스도’가 된다는 것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이 지배하는 유형 교회 나아가 그 유형 교회의 중심이 된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공예배’를 강조했기 때문에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분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효력을 상실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관은 성도들의 공예배 참석, 목사 중심의 의식준수, 물질봉사, 제도 순종이라는 로마 가톨릭의 교회관으로 돌아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봅니다.

박홍기 연구원  지금 지적하신 고백서의 교회관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교회의 현 부패 상황이 조금 전 기자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미 370여 년 전에 시작했다는 사실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크리스천신문>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교회체제개혁’ 운동에 대해 일부 목사들이 ‘무교회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비난을 역으로 생각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교회체제개혁 운동이 10년 전부터 바르게 걸어왔고 지금도 그렇게 가고 있다는 칭찬으로도 들립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는 말의 중심에는 ‘목사 지배 중심’의 잘못된 교회관이 폭로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진행되는 개혁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실 목사의 삼권지배(강단권, 재정권, 행정권)를 지적하고 오직 성경권위만 개혁파 교회의 유일한 지표라는 사실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령한 교회보다는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의 존속과 운영에 몰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많은 성도들이 교회는 반드시 목사가 있어야 하고 교회 헌법이 지배하고 제사 의식과 헌금인 제물이 있어야 ‘정상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목사들도 강단에 서면 보이는 유형의 것들을 준수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인 것처럼  의도적으로 강조합니다. 유형 교회는 구원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게 한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말은 유형 교회가 구원을 허락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비성경적인 모습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전형적 교회관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이 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중세 천 년의 부패한 교회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하나님께서 창세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구원과 교회에 대해 에베소서 1장 7절부터 10절까지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7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즉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 어느 누구의 어떤 무엇으로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교황도 목사도 아무도 성도의 구원을 두고 원천적으로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완전한 죄사함이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8절과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택함 받은 성도에게 분명하게 밝히어 창세전 이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그 비밀을 알려주시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사건으로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시키려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 사함을 받은 백성들이 연합을 이루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부활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조직하도록 하신다는 말이죠.
그래서 에베소서 1장 23절 보면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신령한 연합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즉 인간의 의지나 권력 혹은 평가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는 신령한 일치의 연합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밖에서는 구원받을 어떤 가능성도 없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의 지체로 붙어있지 않으면 결코 구원이 없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지체는 어떤 경우라도 구원을 취소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사나 성도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성도들의 구원 여부에 관해 평가하거나 교회의 주인처럼 군림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의 분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을 분리하는
인본주의적 발상이다!



S연구생  교회는 무형과 유형으로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앞서 에베소서 1장 10절과 23절에서도 분명하게 보았듯이 하나님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늘과 땅, 영원 세계와 피조 세계의 ‘통일’ 사건입니다. 그리고 분리할 수 없는 이 통일의 사건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시므로 모든 피조 세계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충만하게 계시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무형과 유형으로 분리한다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쉽게 예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나 자신을 어디까지가 보이는 지체이며 어디서부터 보이지 않는 지체라고 구별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렇듯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인위적이며 인간 중심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판단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봅니다. 볼 수 없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한다면, 보이는 교회는 누가 통치한다는 말이겠습니까? 로마 가톨릭은 교황과 그 사제들이 통치하고 개신교는 목사가 지배한다는 말인가요? 정말로 이렇게 보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봅니다. 성경 어디에도 교회에 대해 인간 중에서 특별히 누군가를 ‘교회의 머리’로 세웠다는 내용이 있습니까? 점점 부패하는 우리 한국 교회의 상황을 보면 볼수록,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하나인 교회를 유형 교회와 무형 교회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신령한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 중심적 판단과 인위적 지배의 틀 속에 넣는 비성경적 교회관이라고 봅니다.

J연구생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를 정의할 때 ‘사도적’이라는 말을 수식어로 씁니다. 아주 오래된 하지만 잘못된 성경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줬다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은 베드로를 일대 교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개혁파 교회는 이 말을 수긍하며 교황의 자리에 목사를 대체하여 교회를 ‘사도직 전승’이라고 하면서 그 사도권을 목사 자신에게 연결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합니다. 성경적인 사도는 주의 양 무리인 성도와 교회의 유일한 목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목동(엡 4:11의 포이멘)’일 뿐입니다. 목동이 아무리 유능해도 결코 주인 노릇을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도권은 말씀의 ‘심부름꾼’으로서 종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는 누구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자들인데 누군가의 일이 특별히 부각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 교제는 균열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 균열의 가장 큰 원인이 목사를 그리스도의 양무리의 한 목동 곧 말씀 안내자로 이해하지 않고 성도와 다른 특별한 부류로 본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도권은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른 자들이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기록하도록 쓰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도들이 성경의 기자들로 사용된 것도 아닙니다. 신약성경 절반을 기록했다는 사도 바울이 만약 자신의 공로를 자랑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 어디에도 자신의 임무를 특별히 부각한 곳은 없습니다. 물론 적그리스도의 무리에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자신의 사역을 사실로써 보고한 경우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선교 사역의 보고가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종은 아니라는 말이겠지요. 바울은 단지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을 사용해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총 앞에서 ‘무익한 종’으로 사용해 준 것에 감복할 뿐이었다고 봅니다. 



성경적 성도 교제는
말씀을 깨닫게 하여 은사대로 살게 하시는 성령의 교통 사역이다!



M연구생  오직 보혜사 성령만이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인도하시고 또한 성도들을 복음 진리로 양육하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물론 성도들의 교제도 성령의 교통하게 하시는 사역임이 틀림없다고 봅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강조했으면 합니다. 앞서 우리는 교회를 유형이다 무형이다 나누는 것은 성경적인 올바른 교회관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성도로서 자신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데 익숙합니다. 이원론적으로 생각해서 목사와 성도 자신을 스스로 계층화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세속적이고 목사가 있는 교회에 나오는 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은 앞서 확인한 ‘하늘과 땅의 통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창세전 비밀이었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삶 전체라고 봅니다. 우리가 받은 영원한 생명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이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보혜사 성령께서 깨닫게 하신 은사일 뿐이며 오직 교회는 성령의 교통하심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싶네요.

C연구생  여기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보혜사 성령의 교통하게 하심이 ‘가정교회’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이 귀한 가정교회를 너무나 소홀히 했습니다.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시작되는 곳이 가정교회인데 이것을 너무나 무시했습니다. 그 가정교회를 뒤로하고 목사가 있는 교회가 정상 교회인 걸로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가정교회의 가치를 모르거나 그 가정교회를 배제하는 어떠한 신앙생활도 맹목적이며 허구적이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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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성경적 오류를 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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