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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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11 19:2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憲法) 비판 12 - ‘권징조례’ 비판


1. 장로교 헌법의 ‘권징조례’ 조항은 얼마나 비성경적인가?

객원기자 오늘은 ‘대한예수교장로교 헌법’ 비판 마지막 좌담회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순서상으로는 ‘권징조례’ 다음에 ‘예배모범’이 있지만, 지난번에 이미 이 부분을 다루었기 때문에 ‘권징조례’에 나타난 비성경적 부분을 최종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좌담회 마지막 시간을 통해 왜 우리는 기독교의 유일한 법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반드시 돌아가야만 하는지 역사적 시대적 책무를 깊이 새겨보고자 합니다.

박홍기 연구원 이제까지 살펴본 헌법은 결론에 가까워질수록 목사에 대한 절대적 권한 부여를 헌법의 최종 결론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도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고사하고 종교 생활의 합리적 상식마저도 무시한 목사들의 교회와 교인 지배의 도구로 만들어진 것이 장로교 헌법이라는 사실에 실망스럽고 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결국 헌법 정치의 마지막은 목사의 교회 지배를 확정하는 ‘권징조례’에 와서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 발전을 목사의 목회 성공과 등치시키고 성도들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그야말로 개악(改惡)의 연속이 바로 지난번까지 살펴본 ‘헌법적 규칙’이었으며 이것은 ‘권징조례’에서 교인과 동료 목사에 대한 상세한 재판권으로 구체화해 놓고 있습니다.
목사 중심의 당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의 이익과 권한을 법제화하고 있는 권징조례는 모두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총론(1-6조), 2장 원고와 피고(7-15조), 3장 고소장과 죄증설명서(16-18조), 4장 각항 재판에 관한 보통규례(19-32조), 5장 당회 재판에 관한 특별규례(33-35조), 6장 직원에 대한 재판 규례(36-46조), 7장 즉결처단의 규례(47-53조), 8장 증거조 규례(54-69조), 9장 상소하는 규례(70-100조), 10장 이의와 항의서(101-105조), 11장 이명자 관리 규례(106-111조), 12장 이주기간에 관한 규례(112-115조), 13장 재판국에 관한 규례(116-142조), 14장 치리회 간의 재판 규례(143-145조).
1장 총론에서는 권징(勸懲, 권선징악)이란 교회(여기서 교회는 목사 중심의 당회가 구성된 교회를 말합니다)가 위탁받은 권한(당회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인에 대한 재판을 위탁받았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으로 진리 수호가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범죄란 성경에 어긋난 주장이나 행동을 할 때 발생하며 이것이 재판의 주요 안건이 됩니다. 이 재판대 앞에서는 모든 교인뿐 아니라 교인들 자녀도 복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도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교인을 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성경에서 어긋난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 장로교의 교단들 가운데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교회가 과연 얼마나 고민하며 재판에 임하는지를 돌아보면 이 권징조례의 총론은 사문화(死文化)된 것으로 보입니다. 작금에 일어나는 교회 운영권을 놓고 벌이는 재판 건이나 세습과 관련된 문제들을 보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2장 원고와 피고는 말부터 벌써 너무나 세속적입니다. 성경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사실 다른 부분도 그랬지만 권징조례 부분은 더욱 심합니다. 사용하는 낱말 자체가 성경과는 동떨어진 개념들과 세속적인 용어들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거의 없다는 것은 교회의 임의적 운영을 목사들과 그들의 세력화의 상징인 교단이 세속의 재판권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3장과 4장에는 치리회를 주관하는 목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판관’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목사 앞에 선 다른 동료 목사나 교인들은 예수님 앞에 선다는 뜻이 됩니다. 치리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대신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성경적이며 반교회적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줄곧 기독교의 유일한 법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며, 목사는 단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교사 이상 이하도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사들 중심의 치리회와 재판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를 재판하고 시벌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로마가톨릭과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로마 교황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계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것처럼, 목사들 중심의 치리회와 재판국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너무 분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에 앞서서 그리스도의 지체인 한 성도가 다른 지체인 성도에 대해 그 위에 군림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적그리스도적 발상입니다. 재판관의 신분으로 같은 지체인 교인들을 재판하는 자리에 있는 순간 이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권징조례’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속적 집단으로 전락시킬 만큼 비성경적이다!


객원기자 연구원님의 의견을 듣자니 권징조례 조항들이 다른 조항에 비해 상세하고 분량이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들의 치리권과 재판권을 강화하고 재판 결과에 무조건 승복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인 치리를 위한 재판의 결과는 투표를 통해 3분의 1 이상이면 가결된다고 합니다. 성경의 진리 여부를 투표로 정하겠다는 발상은 ‘성경권위’를 목숨보다 귀한 가치로 여긴 개혁파 신앙 전통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 조항을 버젓이 헌법이라고 만들어 놓고 있으니, 정말로 심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2. 장로교 헌법의 ‘권징조례’에 나타난 목사들의 재판권은 얼마나 심각한가?

J연구생 지난 호에 다룬 ‘헌법규칙’에서 교인의 출석 의무, 헌금 의무, 목사에 대한 순종 의무, 헌법 준수 의무를 강조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오늘 ‘권징조례’를 보니 지난 내용이 권징조례로 장로교 헌법의 정치를 매듭짓기 위한 일종의 ‘밑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진리를 성경 교사인 목사들이 치밀하게 연구하여 성경에서 계시한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하면 교회법은 성령의 주관하심으로 그대로 집행됩니다. 목사들은 성경에서 확인한 것은 분명히 말하고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투표로 3분의 1 이상으로 가결하여 진리를 정하겠다고 하니 정말로 장로교 헌법이 이렇게 끝나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개혁파 교단의 성경 교사로서 목사는 단지 ‘성경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자기 임무를 끝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경에 부합하면 ‘예!’, 성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아니오!’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의도된 설교 중심, 훈계 중심, 지배/피지배의 계급화 의식 때문에 목사들은 설교 한 마디로 성도들의 행동은 물론이고 그들 신앙의 양심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말씀의 운동력(히 4:12)으로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통치를 장로교 헌법은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빨리 폐기하고 오직 성경에 근거한 목회의 올바른 원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연구생 5장에 보면 당회는 이른바 피고가 복종할 때까지 벌을 내린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참으로 집요합니다.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 반드시 정죄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니지요. 성경진리가 무엇인지 확인해 주면 되는 것이지 당회가 성도들을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 6장은 목사들도 교단의 재판에 불응하면 수찬(성찬식 참여 금지의 책벌)을 정지시키겠다는 제도가 나옵니다. 정직이나 면직으로 말을 듣지 않으면 제명하고 출교시킨다고 합니다. 이단 시비도 교단 재판국이 투표로 하겠지요. 고소 취하나 복직도 교단의 재판국 말을 들어야 가능합니다. 이 정도 가버리면 성도에 대해서는 당회가, 목사에 대해서는 노회가 유일하신 재판장인 하나님의 자리에 가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7장 ‘즉결처단’은 말부터 교회 생활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즉결처단은 결국 재판국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을 보면 교회 허락 없이 다른 교회나 교단으로 가면 책벌할 수 있다는 권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의로 교회를 설립하거나 교파에 가입하면 책벌하겠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 신앙 양심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비상식적인 책벌 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징조례’의 재판국 조항들은 인간이 교회의 머리이고자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Y연구생 8장은 증인 채택과 증인의 증언 재판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형식상 공정한 절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목사 중심의 당회나 노회나 총회의 재판국이 결정하기 때문에 절차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교회는 소수의 의견이라도 성경적이냐 비성경적이냐가 모든 판단의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성도가 다른 성도를 재판하고 심판하는 것은 교회의 유일한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을 침범하는 치명적인 범죄입니다.
9장 상소(上訴) 규례도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상소 절차가 있다는 것은 온당하게 보인다고 하지만 결국 마지막 재판 결과는 최고 상위 기관이 위탁받아 심사하고 판결하게 됩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얼굴도 모를 뿐 아니라 한 번의 면식도 없는 어떤 목사가 자신의 신앙 양심의 자유를 판단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성도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오직 성경대로 알고 믿느냐를 상호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지 누가 누구의 생각을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재판이 부당하다 하여 아무리 상회(上會)에 상소하더라도 결국 마지막 재판국이 표결로 처리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근래 일어났던 장로교 교단의 대형교회 세습 과정을 보면 총회의 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불법이 난무하고 부당한 절차의 증거가 명백하더라도 일부 재판국 회원들이 상소를 기각해 버리거나 목사들의 최종 표결로 가면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가거나 더 악화하는 것이 장로교 부패의 현주소라고 생각합니다. 장로교 헌법, 정말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좌담회 결론에 와서 생각하니 빨리 폐지해야 할 필연성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10장에 보면 이의(異議)와 항의서 제출 절차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모두 형식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1장은 이명자(移名者) 관리 규정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 소속 교단의 모든 교인은 반드시 당회나 노회 나아가 재판국의 관리 아래 두겠다는 것을 명시하는 조항입니다. 참으로 악의적인 발상입니다. 세속 국가의 헌법도 국민의 자유로운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한다는 제도를 만들다니, 불법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에서는 인위적인 법으로 성도를 관리하려고 하기 전에 그 교인이 어느 곳에 있든지 교회의 유일한 법인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진리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데, 이것을 장로교 헌법은 결국 스스로 저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장로교 헌법의 ‘권징조례’는 장로교 교인들을 얼마나 절망적으로 만드는가?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여러분들이 말씀하신 권징조례에 나타난 비성경적이며 불법적인 내용을 들으면서 지난 40년 동안 당회장으로서, 노회장으로서, 총회장으로서 보낸 시간을 다시 깊이 반성했습니다. 사실 제 목회 역사는 노회로부터 ‘이단 목사’로 정죄 받으면서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대형 교단들이 돌아가며 순서대로 저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처음에는 개혁 측이, 그다음은 고신 측이, 마지막으로 통합 측이 이단 시비를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지혜롭게 견디도록 하셨으며, 또한 이렇게 여러 후배 동역자들로 장로교 헌법까지 세밀하게 분석하도록 하시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교회로 개혁되기를 바라며 살게 하심에 무한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권징조례 13장에 보면 재판국(裁判局)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사실 나에 대한 재판을 좌지우지했던 곳이 바로 이 재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노회든 대회든 총회든 재판국 인원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항상 목사가 한 명 더 많습니다.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장로교 헌법이 목사의 목회 성공을 위한다는 것을 재판국의 인적 구성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장로교 교인들의 신앙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장로교 헌법의 비성경적이며 불법적인 조항들을 비판해 왔습니다. 이제 장로교 헌법 중심의 교회 생활은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폐기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얘기를 잠시 하고자 합니다. 이단으로 정죄한 대형 교단에 맞서 싸우면서 처음에는 목회 자체를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진리 투쟁을 할 마음을 주셔서 각 교단의 총회 재판국에 대항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 20권을 완간했고, 이를 사용하여 천여 시간의 성경강론도 했습니다(www.ibt.or.kr).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상황에서 반드시 성경으로 돌아가야만 하는지 그것을 다시 강조하고자 합니다. 장로교의 대형교단들은 자신들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대한예수교장로교 헌법’으로 저를 임의로 재판하여 정죄하고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는 저를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로 철저하게 보호하시면서 자라게 하셨으며, 많은 국내외 동역자들도 동참케 하셔서 장로교 헌법의 대안을 성경에서 확실하게 찾도록 하셨습니다. 장로교 총회는 목사인 박용기를 제명하고 축출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바꾸어 개혁파 신앙 선배들이 화형틀의 잿가루로 사라지면서 지키고자 했던 성경진리를 더욱 사랑하게 하셨으며 오직 성경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경만’ 기독교의 유일한 법임을 깊이깊이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깨닫지 못해 실수한 것이므로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서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기 때문이죠.

‘권징조례’는 장로교 교인들의 교회 생활을 뿌리째 흔들 만큼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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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에 대한 신약적 의미를 살핀다
장로교 헌법의 ‘헌법적 규칙’ 조항은 왜 비성경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