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문화

 
작성일 : 19-04-17 19:2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Panis Angelicus (생명의 양식)


부활절을 앞두고, 프랑스의 19세기 작곡가이며 오르간 연주자인 세자르 프랑크(César Franck 1822~1890)의 Panis Angelicus라는 곡을 통해 ‘생명의 양식’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자르 프랑크는 두 형제 중 맏아들로 - 자식을 피아니스트로 키우려 했던 아버지의 의지로 - 형제는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835년(13세) 파리에 나간 세자르는 1837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웠는데 특히 피아노에는 비범한 재능을 나타냈다. 그는 J. S. Bach에 심취하여 Bach 같은 작곡가가 되려고 준비하였으나, 작곡가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아버지에 의해 퇴학당하게 되고, 그는 그 후 생계를 해결해 가며 - 교회의 오르간 반주와 후배들을 가르치며 – 틈틈이 작곡에 힘썼으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린 곡은 1889년 그의 말년인 67세에 초연되었던 현악 4중주 D장조와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등 몇 곡 되지 않는다.
그가 작곡한 곡 중 Panis Angelicus라는 곡이 나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이 곡의 제목은 라틴어로서 그 뜻을 직역하면 “천사의 빵”이란 의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의 양식”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많이 불리어지고 있다.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맘이 빈 자에게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님이 해변서 떡을 떼심 같이 하늘의 양식을 내리어 주소서.
낮고 천한 우리 긍휼히 여기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찬송이란 멜로디보다는 가사의 내용으로 감동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Bach의 칸타타 BWV 147 중에 나오는 “우리의 기쁨 되시는 예수”라는 곡은 화려한 오르간 또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합창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참 기쁨과 지혜의 왕, 사랑의 구주 예수…”라는 가사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가사 없이 피아노나 기타 등의 독주 악기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이 곡을 가사와 함께 많이 들어본 사람이라면 악기 소리만 듣고도 연주자의 연주에 신앙적인 감명을 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원어로 부르거나 악기만으로 연주한다면 그 곡을 자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와 리듬과 화음으로 이루어진 곡일 따름이다. 물론 이런 곡들은 가사 없이 곡 자체만의 연주로도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가사의 의미가 청중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찬송, 교회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영국 국가는 “God save the Queen (또는 King)”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으나 이 곡의 멜로디를 빌려온 통일찬송가 79장은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로 시작하고 있다. 또 독일의 국가는 원래 하이든이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2세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이후 오스트리아의 국가로 쓰이다가 1841년 독일의 통일 열망을 담은 가사를 붙였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국가로 사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에는 전체 노래 중 3절만을 공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데, “단결과 자유, 조국 통일을 위하여!…”로 시작하고 있으나, 이 멜로디를 빌려온 통일찬송가 245장은 “시온성과 같은 교회…”로 시작되고 있으며, 믿음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세워진 교회를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곡이 교회에서 악기만으로 연주된다면 이 찬송가 가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롭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듣는 사람에 따라 같은 곡이 신앙심이 아닌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사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것은 그 곡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가사를 알고 있지 않다면 음악적인 감동을 줄 수 있을 뿐, 가사와 함께 불리어질 때 참된 찬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생명의 양식”의 가사는 요한복음 6장의 말씀에서 인용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큰 무리를 보시고 제자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고 시험하셨다. 예수께서 “생명의 떡(양식)”으로 오신 분이심을 아직 모르고 있던 빌립은 이들을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화폐 단위임)이 필요함을 보고하자, 제자 안드레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그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예수께서 축사하신 후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음을 요한복음 6장 5~13절은 기술하고 있다.
기원전 9세기경 엘리사 선지자도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명을 먹이고 남은 사실(열왕기하 4:42~44)이 있다. 예수께서 이러한 표적을 행하심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의 양식으로 세상에 오신 참선지자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께서 그들을 로마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시키고 그들을 먹여 줄 왕으로만 생각하였다. 이튿날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26~27)고 말씀하셨다. 즉, 영생에 이르는 영적인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인쳐 증명하신 예수님 자신이 주시는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
당장 먹고 배부를 양식만 구하려는 무리들에게 예수께서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35~40)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의 부활까지도 약속하신 것이다. 출애굽 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주셨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던 유대인 무리들에게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한복음 6:47~51)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6장에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주기도문) 중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일용할 양식이란 식사 때마다 먹는 음식인 육신의 양식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이 분명함을 요한복음 6장은 증거하고 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에베소서 1: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한복음 14:16)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생하는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예수님, 그리고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까지 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할 뿐이다. 할렐루야! (참고문헌 박용기 저 「성경강론 14권」)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장로 한용환 기독교지도자협의회

모세 이후의 찬송과 다윗ㆍ솔로몬 시대의 성전 음악
인간 창조 후 고대 시대의 찬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