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08-02 14:2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화면 위의 퍼포먼스, 추상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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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轼 , 1950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정세의 구도는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 지고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는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예술가들도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승전국이 된 미국은 막대한 자금으로 문화부흥정책을 펼치고 예술가들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미국은 예술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현해 줄 환상적인 나라가 되었다. 유럽에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되었던 미국에 기라성 같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1940년대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탄생된 미술사조가 추상표현주의였다.
 이 시대 사람들은 합리적 사고에 대한 믿음을 깨고 과학문명이 가져온 전쟁무기로 수많은 인명이 대량 살상된 현장을 목격한 후 기존의 가치관을 과감하게 던져버렸다. 당시 과학사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는데 막스 프랑크(Max planck)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표하여 “과학은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그토록 신뢰하던 과학의 한계를 드러내었다”고 주장했다. 미술가들의 논리적 이성적 경향이던 기하학적 추상주의가 사라지게 되었고 환상적 신비스런 초현실주의도 그 빈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기하학적 추상의 선명한 선과 딱딱한 구획, 평면적 단순한 색채에서 벗어나 빠른 붓 터치, 정형에서 벗어난 혼돈된 형태, 자유로운 색채, 리듬으로 불명확한 형상들을 화면에 가득 채워 놓았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의 감각적 행위를 중시하여 고정된 해석을 버리고 다양하고 모호한 의미로 다양한 해석의 문을 열어 놓았다. 주제는 초현실주의를 이어받아 엉뚱한 소재를 일관성이 없이 구성하기도 했고 서로 뒤섞여 만들어진 형태와 색채는 추상화를 이어받았다.
본격적으로 추상표현주의를 연 작가는 미국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한 잭슨 폴록이다. 그는 거대한 화폭을 바닥에 깔고 화면 위를 돌아다니며 물감을 흘리고 붓고 뿌리며 또 다른 물감으로 빠르고 느리게, 길고 짧게, 이어지고 끊어지게 반복과 반복으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을 물감뿌리기 작업에 적용한 것이다. 또한 한손으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작업에 철저하게 몰입하여 열정적이며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므로 폴록은 칸딘스키의 조합방법과는 달리 예술가의 행위는 수단이며 목적이기도 한 새로운 표현방법을 구현해 낸 것이다.
폴록에게 있어 물감은 작가의 의도를 안전하게 표현시켜줄 도구가 아니라 내적 충동의 폭발물인 셈이다. 즉 행위자체에 의미를 둔 예술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화폭은 보여주는 시각적 공간임과 동시에 예술가의 자율적 신체적 행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고,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하는 새로운 미술용어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폴록은 현대미술의 특징을 일순간에 변화시키고 현대미술을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그 외의 작가들 역시 붓을 자유분방하게 또는 격렬하게 휘갈기고 급히 꺽거나 끊어지게 하는 필력으로 행위를 느끼게 하고 행위를 중요시하는 흔적을 남기는 형태를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추상표현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노출시키는 작품들이었다. 과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인간 내면에서 분출하는 것은 오직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죄성(罪性)일 뿐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완재 전도사 (아둘람교회)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 현대조각
무의식의 세계, 초현실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