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1-08-09 21:1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경건의 사람, 칼빈_22


칼빈은 일생을 하나님 앞에 살았던 경건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강요」 초판부터 그의 저작 전부를 통해서 인간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 살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바로 그의 하나님 중심 사상 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위한 신학의 구체적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서 교리와 경건은 분리되지 않았다. 교리는 경건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고, 경건은 교리로서 표현되었다. 교리와 경건, 또는 신학과 삶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칼빈의 지론이었다.

교리와 경건은 함께 있어야 한다

칼빈은 경건을 바로 지도하려면 교리 논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교리와 경건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은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은 경건을 무시하고, 경건에 힘쓰는 사람은 교리적 체계가 없는 것이 문제다. 즉 교리와 경건이 나누어져서 서로가 독단에 빠지는 것이 문제다. 일찍이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 예배 시 “이 학교가 경건과 학문이 있는 대학”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는 또한 칼빈이 경건과 학문의 조화가 개혁 신학의 틀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칼빈이 경건이란 말을 쓸 때에는 오늘날 한국 성도들이 이해한 것과는 다르다. 우리가 경건이라는 말을 쓸 때는 외부적 엄숙, 몸가짐, 말 등 다분히 유교적이고 양반적 태도를 머리에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보다 진지한 용어로서, 자기의 가정이나 나라나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는 일이나 충성스러운 헌신을 의미하였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종교의 전 내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칼빈은 경건을 몇 가지로 정의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써 일어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결부된 경외를 경건이라고 했다’’ 또한 ‘‘경건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유익을 아는 지식이 일으키는 사랑과 결부된 경외’’라고 했다.(기독교강요 I .2. 1)

경건의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칼빈은 경건을 말할 때 하나님의 은덕 즉 은혜와 덕을 먼저 강조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우리의 삶 전부를 드려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축복 때문이다.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것 자체가 그것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을 받 고 보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리로 경건하게 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경건은 칼빈 신학의 실제적 내용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학은 경건의 모든 내용을 “옳게 기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칼빈이 제네바의 신학자이기 전에 목회자였다는 사실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칼빈이 제네바에 머물게 된 동기는 종교 개혁을 위함이었다. 칼빈은 일단 자기의 학구 생활을 잠시 접고 주위의 요청에 응하여 제네바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리하여 칼빈은 제네바에서 시민들의 신앙과 삶 전체를 개혁해 나갔다. 그러므로 칼빈의 신학 활동도 따지고 보면 제네바에서 신앙과 생활의 총체적 지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즉 칼빈의 신학은 성경적인 참된 기독교를 세울 목적으로 전개되었다. 칼빈의 신학자로서 또는 목회자로서의 삶은 경건과 학문 의 조화였다. 칼빈은 신학자로서 면모도 갖고, 목회자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지도자였다. 말하자면 그의 신학은 진실로 기독교 신앙과 생활의 신학이었고, 그의 목회 활동은 동시에 신학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이론과 실제, 사상과 삶이 일치되는 것이 칼빈의 모습이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경건의 대전이다

칼빈의 신학에서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그의 「기독교강요」 초판본 속표지에 명백히 드러난다. “기독교종교의 요강, 경건의 모든 내용과 구원의 교리에 필요한 지식 전부가 포함되어 있음. 경건에 열심 있는 자는 누구든지 다 읽을 만한 최신 저술, 불란서의 기독교 황제에게 올리는 서문에 있어서 본서는 신앙 고백서로 제출되었음.”이라고 했다. 이는 요즘 말로 하면 책을 소개하고 요점을 정리한 광고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강요는 경건의 대전(Pietatis Summa)이라고 썼다. 교리는 곧 경건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경건은 교리의 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경건이란 학문의 범주에 속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칼빈의 신학체계라 할 수 있는 「기독교강요」는 경건의 신학임을 천명한 것이다. 비유컨대 칼빈에게 있어서 신학은 수학이나 물리학같이 이론과학이 아니고 구체적이고 실제적 기술과학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칼빈의 신학은 교의학적인 것보다 실천신학으로 보고 싶다. 신학이 이론에서 시작해서 이론으로 끝나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어떻게 살며, 어떻게 기도하며, 어떻게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칼빈 신학의 특징은 경건의 내용을 기술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말하기를 ‘‘진실로 정당하게 말하여 종교 또는 경건이 없는 곳에 하나님이 알려진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기독교강요 I. 2. 1)라고 했다. 이처럼 칼빈은 경건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경건 이 빠진 신학, 경건이 없는 신앙은 일종의 공허한 사색(Vacua Speculatio)으로 생각했다. 칼빈은 경건에서 떠난 신학은 번쇄한 이론이요, 허식적 사색뿐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의 개혁주의 사상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이 뒷받침되었기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정성구 목사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 전 총신대학교 총장)

기도의 사람, 칼빈_23
오직 믿음의 사람, 칼빈_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