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21-10-20 10: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기독교 공동체를 향한 신학 교육

- 신앙공동체의 영성 회복과 박용기의 성경신학 -


1. 왜 기독교 영성이 중요한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곧 신앙공동체는 세속 정신과 분리되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영성(spritualit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세계 교회는 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의 영성을 매우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위협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교회의 유일한 절대표지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성경권위에 있다고 볼 때, 기독교 영성의 퇴락은 바로 성경을 신적 권위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다. 절대 존재와 같은 근본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이 시대의 정신적 탁류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점점 기세를 더하여 교회 문화 전체를 갈아엎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이 인간의 상식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인 것처럼,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 된 교회는 반드시 진리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시 섭리(Divine Providence)의 한 증거임으로 절망할 수는 없다. 우선 영성에 대한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고찰을 한 후에 박용기의 성경신학(Park’s The Bible Theology)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향후 오이코스대학교와 성경신학학술원의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통해 말씀중심의 건전한 기독교 영성의 회복에 대한 더욱 치밀한 논의가 이어지고 교회 문화에서도 그 영향력이 미쳐 더욱 수준 높은 신앙의 결실이 맺길 바란다.


2. 문화의 원동력으로 영성과 성경 진리의 관계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신앙공동체를 위해 주신 진리의 말씀이다. 교회 공동체는 세속 세계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역사와 시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의 이러한 초월적 속성을 우리는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은 역사 속에 존재하는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그의 몸 된 교회는 관념이나 진공 상태가 아니라 역사적 구체성을 띠고 문화(文化)라는 토양 안에 영성을 계시한다. 문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 나타나는 인간 삶과 가치의 총체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 식생활, 기후, 토양, 개인과 종족의 특성과 소질, 남녀노소의 고유성, 반복하는 시대적 유행 등 변화무쌍한 일체의 삶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의 변화와 변천이라는 토양 곧 문화적 상황 속에서 신적 본질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영성의 순수함은 반드시 문화적인 실제적 토양에서 구체적으로 확증될 때 실효성이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문화의 실효성이란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적 가치가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는 일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절대적 기준이 없는 가치와 삶의 상대화와 다양화 그리고 혼돈이 아니라 반대로 문화의 다양화는 바로 영성의 구체적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가치가 바로 기독교 윤리를 포함한 하나님 중심의 모든 실천(Praxis)을 가능하게 하는 모태가 된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 계시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와 그 교회의 정체성, 이 모든 문제를 기독교 영성에 집중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은 단순히 주관적 심리 상태를 관리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기독교 역사가 기독교 진리의 정체성을 두고 벌어진 투쟁의 역사임을 감안할 때, 영성 문제는 격렬한 진리 투쟁 현장에서 태동했으며 ‘참 영성과 거짓 영성의 충돌’의 역사가 교회 역사를 지배했다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특히 신약성경의 기록 시기를 보면 바로 영성의 투쟁 현장이었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가치 투쟁, 헬라와 로마 문화 그리고 기독교 지성의 충돌이 성경 기록의 배경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복음서에 대한 오래된 접근 방법인 ‘공관복음(synoptic Gospel)’이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네 개의 복음서는 각각 그 역사적 배경과 기록 목적 그리고 계시 수용의 일차적 당사자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연대기 중심으로 임의적 종합을 꾀한다는 것은 성경 권위의 훼손을 야기하며 나아가 각각의 교회 공동체가 지닌 영성의 고유성도 왜곡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기록이다. 족보를 비롯한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한 구약 성취 내용, 세례 요한이 소개한 천국과 이 천국을 완성하시는 그리스도의 삼중직 사역, 천국의 요건으로서 신령한 영성의 토대가 되는 팔복에 대한 선포 등 마태를 중심으로 했던 교회 공동체의 고유한 특징이 담겨있다. 그리고 ‘원복음’이라고 하는 마가복음은 그 표현부터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주장은 복음성의 고유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의 고유한 신분을 중심으로 기록한 마가복음은 그 자체로 교회 공동체의 영성을 취급한다. 또한 누가복음은 이방인 사도인 헬라인을 통해서 기록된 계시의 말씀이다. 당연히 누가가 속했던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영성을 다룬다고 본다. 특히 유대인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과 종족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도 모두 포함하여 인종을 초월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복음을 기록한다. 복음서의 결론과도 같은 요한복음은 요한이 속한 공동체에 주신 말씀이다. 특히 그리스도 철학의 핵심 개념을 성육신하신 하나님 곧 창세전 로고스(말씀)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 철학의 중요한 철학 개념은 ‘로고스’의 실체는 바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존재임을 밝혀준다. 철학에 대한 성경권위의 절대적 우월성을 확증한 것이 요한복음의 위상이라고 본다.
헬라인 사도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예루살렘부터 로마까지 전해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전해지면서 교회가 설립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팔레스틴 지역의 영성과 유대인의 영성이 충돌하던 시대에 오직 올바른 유일한 영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 그 원천임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바울서신의 경우도 각각 그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교회 공동체의 영성 확립에 신적 복음 진리를 보여준다. 로마서는 이신칭의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율법(할례)을 받아야만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반박하는 대칭적 언어이다. 갈라디아서는 할례 받지 않은 자와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의 절대성에 있음을 밝혀준다. 갈라디아서 후반부에 계시된 성령의 열매는 기독교 영성 정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에베소서는 창세전 이미 확정된 이방인과 유대인의 공동체의 비밀을 보여준다. 기독교 영성의 원천이 창세전 영원한 예정에 기초한다는 놀라운 비밀을 보여준다. 바울 서신은 유대인의 육체적 할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독교 영성의 초월성과 신비함이 기독교 문화를 지배한다는 것으로 총론적으로 제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세하게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구약의 모세오경도 애굽의 영성을 떨쳐버리고 여호와(Jehovah)의 영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확립시키는 과정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보았던 성막은 여호와 중심의 영성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솔로몬 이후 분열왕국으로 전락한 남북왕조에 관한 퇴락의 역사도 총괄적으로 볼 때 여호와의 참된 영성이 바알의 거짓 영성을 쫓아내는 영성 투쟁에 관한 기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3. 영성 혼돈의 역사에 대한 비평

다음으로는 역사적으로 기독교 공동체의 영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거스틴(Augustine, 354-340) 이후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진리에서 벗어난 인위적 신앙공동체로 변모하고 변질해 버린다. 교부철학의 완성이라는 어거스틴은 예정론 중심의 은혜론에 기반을 둔 교회론을 정립했다. 하지만 그 은혜의 확인은 지상의 교회에 속한 감독들이 확인해줄 때 완성된다고 한다. 즉 로마 가톨릭의 교황 체제가 태동하는 길을 어거스틴이 열어준 셈이다. 이로써 교회 공동체의 영성이 세속화되고 외적 교회 권력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이후 교회사를 지배하게 된다. 중세 시대의 로마 가톨릭과 스콜라 신학은 대부분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것을 반복하거나 왜곡하여 교황제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퇴보하게 되었다.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양성문제, 계시와 이성, 철학과 신학의 혼동을 가져온 스콜라 신학은 중세 시대 영성 충돌의 실상이었다. 어거스틴 신학은 신플라톤적 이원론적 영성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성에 예속되어 이상주의(이데아론)와 자연주의의 영성의 혼돈을 보여준다.
종교개혁의 시조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교황청이 만든 거짓된 면죄부를 반대하고 교회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만’ 있음을 역설했다. 서구의 종교개혁은 성경 중심의 영성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칼빈(Jean Calvin, 1509-1564)의 종교개혁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개혁파 영성 수립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칼빈의 신학은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론과 중세의 스콜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주의(Realism)가 교회 공동체에 철저한 여과 없이 유입하여 성만찬의 여러 견해들(화체설, 공재설, 기념설)이 혼합된 ‘영적 임재설’을 채택하게 된다. 이는 성만찬을 행할 때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를 뜻한다. 이러한 입장은 신정통주의라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변증법적 신학과 기독론에 주요한 교리가 된다.
이후 18세기에 들어 서구 교회가 기존에 유지하던 교회 공동체의 영성은 위협에 처하게 된다.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특별계시 기록임을 문제 삼고 나아가 성경권위를 부정하는 인본주의 철학의 공격을 받는다. 합리주의, 계몽주의 그리고 이신론은 교회 공동체의 영성을 근본부터 흔들어 버렸다. 이에 맞서서 게블러(Johann Philipp Gabler, 1753–1826)와 같은 신학자에 의해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으로 방어하는 운동이 일어난다. 이들은 특별계시 기록으로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일차 계시의 수납자인 신앙공동체의 영성을 수립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성경의 통일성을 확증하지 못한 결과로 각 권의 계시 연관성은 없다는 결론과 함께 성경의 영감성도 부정당한다.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은 역사적 예수 탐구로 결국 성경은 고전 문서 정도로 취급한다. 이후 성경신학은 보스(Geerhardus Johannes Vos, 1862-1949)나 레드(George Eldon Ladd, 1911-1982) 그리고 리델보스(Herman Nicolaas Ridderbos, 1909–2007) 등에 의해 영감론에 근거한 이론들이 나오지만 지엽적인 주제들을 변증하기에 급급했고, 팔머 로버트슨(Owen Palmer Robertson, 1937-)은 일차 계시의 수납자들의 영성을 벗어난 새로운 영감론을 제시하며 하나님의 언약과 그리스도 성취 구도 속에서 교회 공동체의 영성에 기초를 닦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으로 포장된 말씀 중심이 아닌 신학을 하나 더 지적해 보면, 동방정교회가 있다. 이들의 영성은 성경 없는 기독교 공동체이며 체계적 신학이 없는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동방정교회 방식의 영성 훈련을 통해 인간의 심령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영성은 본질적으로 성경에서 벗어난 신비주의적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방교회가 강조하는 인간의 원죄설에 대해서 동방정교회는 인간의 원죄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의 영성이 얼마나 성경적이냐에 대한 질문은 동방정교회에서는 그리 중요한 물음이 될 수 없다.
한국의 성경신학은 1980년경부터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한국 교회 영성을 근본적으로 지적한다면 ‘하나님이 없는 영성’으로 흘렀다고 비판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을 초월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이신론(Deism)에 근거한 서구 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뉴 잉글랜드 신학(New England Theology)과 문자주의에 경도된 근본주의 신학에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의 신학이 한국 교회의 올바른 영성 정립에 걸림돌이 되었다.
역사와 실존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섭리(경륜, Providence)하시고 말씀하시는 성경 중심의 확증이 없으므로 한국 교회는 기복주의, 맘몬사상의 늪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경마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기보다 개 교회들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사리사욕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생명력 없는 죽은 영성으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의 삶은 결코 불가능하다.


4. 박용기의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 성경권위에 의한 기독교 영성

현대의 성경 신학자 대부분은 일차 계시의 수납 혹은 주제에 머물러 성경을 보고 있다. 성경 신학자들이 지엽적이고 제한된 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박용기의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여호와의 메시아 언약과 여호와의 그리스도 성취’라는 성경해석학적 관점에서 성경 전체를 기독교 영성의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며 교회사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차 계시의 대상인 신앙공동체의 영성을 성경에 바탕을 두고 분명하게 확정하면서 그 영성의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섭리 그리고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에 있는 성령 공동체의 영성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지금 성경권위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하나님의 죽음이 지배하는 21세기는 그야말로 혼돈의 극치이며 짐승의 본성과 같은 감성주의 문화가 기독교 영성의 흔적마저 지우려고 한다.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던 영성의 세계가 단숨에 무너져 버리고 있다. 가령 한국 사회의 교육을 지탱하던 가치인 ‘군사부일체’와 같은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가 되었다.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와 교회의 권위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성도들도 자신의 신앙 정체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그 도피처를 찾을 수 없다. 그야말로 한국 교회를 비롯한 세계 교회가 영성의 대혼란에 처해 있다. 이 혼란의 상황을 뿌리부터 진단하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오직 그리스도의 심장’뿐이다. 영성과 관련해서 강조한 이 개념은 성경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정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오직 성경의 권위로만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온전한 기독교 영성이 확립된다. 결코 아물 수 없는 상처투성이의 세계 교회의 회복은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심장이 교회에 성경의 절대진리를 통해 공급될 때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박용기 목사의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은 하나님 여호와 중심의 성경관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확정하여 기독교 영성의 근본 뿌리를 놓았다는 점에 신학적으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공급되는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 아니면 이 시대 기독교 영성 회복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박용기 목사의 성경권위 확증과 이에 바탕을 둔 성경신학은 영성 혼돈의 시대에 말씀 중심의 영적 회복의 대각성을 촉발시킬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이 운동하는 역사를 강조하는 박용기 목사의 성경신학은 성도의 영성을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주관하는 운동이며 오직 성경진리에 기반을 둔 운동으로 간주한다. 언약과 성취의 해석학적 원리에 의해 성경을 해석하는 박용기 목사의 성경신학은 이제까지 왜곡된 영성을 극복하는 데 대안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서구 신학이 그토록 찾고자 갈구했던 성경권위 확증에 의한 기독교 영성을 정립하는 데도 큰 의의가 있다. 나아가 이론이냐 실천이냐를 놓고 벌인 서구 사상의 한계를 오직 성경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시대에 보여준 영성 회복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박용기 목사는 선지서를 때리시고 싸매시는 하나님(이사야), 뽑으시고 심으시는 하나님(예레미야·애가), 흩고 모으시는 하나님(에스겔), 멸하고 세우시는 하나님(다니엘)으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을 이해할 때 선지서를 통해 공의와 자비의 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세계 교회는 화석처럼 굳어져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다. 경직된 체제 속에서 지엽적인 교단의 교리를 두고 아직도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 제1회 오이코스대학교-성경신학학술원 학술교류 대회에 즈음해서 다음과 같은 제언(提言)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의 전체 진리에 바탕을 둔 영성이 아니면 기독교 신앙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제도적으로 기독교 신학과라고 하더라도 단지 소개할 뿐 학생들에게 믿음과 신앙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신학교는 목사라는 기능인을 만드는 직업훈련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이코스대학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대학교를 건립한 저로서는 선교의 사명을 한순간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성경신학학술원이 지키고자 하는 성경신학(Park’s The Bible Theology)을 오이코스대학교에서 신학대학원의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특별과정으로 만들었다. 기존의 신학교육의 형태를 벗어난 성경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새로운 형태의 교육 기관으로 발전하길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학술 교류를 시작했다. 최근 인가받은 온라인 학위 과정을 통하여 성경신학을 글로벌 강의와 수업 체제로 가동하고자 한다. 그 수업은 이미 잘 짜인 성경신학학술원 박용기 박사의 성경신학을 오이코스대학교의 행정적 기반을 플랫폼으로 삼아 말씀운동이 전개되길 염원한다.

※ 본문은 발제자의 강연을 요약한 것임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발제자 김종인 박사 (오이코스대학교 총장)

성경 주석의 왕, 칼빈_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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