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오피니언

 
작성일 : 18-08-15 18:3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축도(축복기도)’의 허구에서 벗어나기 1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계12:1~4)


인용한 내용은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하늘의 큰 이적 내용이다. 부활승천하셔서 하늘에서 영원한 통치를 하고 계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 17:14)이신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에 대한 계시내용이다. 그리고 ‘열두 별의 관’을 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진리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자 고통 가운데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해를 옷 입은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비슷하게 생긴 ‘큰 붉은 용 한 마리’를 소개하는데 머리 일곱 뿔 열 곧 ‘칠두십각’과 입곱 왕관을 쓰고 영원한 천국 백성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박용기 저, 『성경강론 18』, 성남: 진리의말씀사, 2014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세우는 교회는 지상에서 항상 거짓 종교와 투쟁하는 교회다. 초대 교회가 그랬고 중세는 아예 진리를 가장 한 거짓 종교 세력(로마 가톨릭)에 의해 겉보기에 모든 교회가 패배한 듯 보였던 시대다. 종교개혁 시대는 거짓된 교황권위에 맞서서 성경권위로 치열한 진리 투쟁을 전개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근대는 성경권위를 허물고 훼손하려는 세속의 상식과 철학에 맞서서 투쟁했던 시기이며, 현재는 그 투쟁 상황이 특히 한국 교회 상황은 중세 로마 가톨릭에 패배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중세보다 더 심한 경우라는 말은 중세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자체를 볼 수가 없어서 무엇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 교회 상황은 모든 교인들 가정에 적어도 두어 권 정도의 성경은 모두 있다. 아마 모두 합하면 수천만 권 정도는 족히 넘을 것이다. 스마트 폰 어플까지 고려하면 파악할 수 없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어느 나라보다 한국 교회 성도들 가까이 놓여 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 어느 시대보다 한국 교회는 부패했다는 것이 현재의 사실이다. 가장 가까이 성경을 두고 성경을 가지고 교회당을 들락날락 하지만 어느 나라 기독교보다 성경에서 멀어진 상황이 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 밖에는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듯한 부패의 정점을 찍고 있다. 이러한 사건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이 앞서 인용한 요한계시록 12장의 초반부 내용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항상 이와 유사한 거짓 진리의 도전을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를 진리 아래로 인도하지 않으면 결코 바른길을 갈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교회인 열두 별의 관을 흉내 낸 ‘칠두십각’의 용의 권세 즉 사단의 세력은 항상 진리인 것처럼 더 화려하게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강하거나 무서운 듯이 진리를 지키고자 하는 교회와 성도에게 접근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도의 최후 심판까지 그리스도 교회의 언저리가 아니라 중심부에 마치 그리스도처럼 자리를 잡고 진리 행세를 한다. 종교개혁 시대로 돌아가 보자. 로마 교황청의 권위는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성도들과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생애 즉 태어날 때부터 죽은 후까지도 로마 교황과 주교(主敎)의 통제 하에 있었다. 칠성례(七聖禮)는 태어날 때부터 사후까지 모두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태어나는 것도 맘대로 할 수 없고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생사 문제를 교황과 주교의 법을 따라야 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가 중세 로마 가톨릭보다 더 부패했다고 말할 때는 중세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교황권위가 아닌 성경권위가 실현된 듯이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불법과 그리스도를 ‘참칭’하는 목사들의 부패 정도가 중세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말이다. 목사의 도덕적 부패는 본질이 아니라 표면이며, 부패의 본질은 성경권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목사의 자기 욕망과 세속적 영달을 위해 스스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참칭하는 대역죄를 저지르는 적그리스도가 된 상황이다.   

성경을 펼쳐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주와 역사 그리고 인간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목사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의 복도 받고 천국에도 갈 수 있다는 거짓이 난무한다. 성경 본문을 읽고 성경에 담긴 의미와는 무관하게 뻔뻔하게 말하는 이른바 설교는 그 정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는 베드로 사도의 엄중한 경고(벧후 1:20)에는 아랑곳없이 이른바 눈속임의 성의(聖衣)인 목사 가운을 입고,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하며 마지막에는 뻔뻔하게 금전 요구까지 하는 상황이 부패한 한국 교회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 교회 특히 ‘성경권위’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교회의 표지로 삼는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총회 소속의 산하 수많은 장로교 부패상황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한참 진행 중에 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한국 교회의 부패와 무관하게 분명히 살아계시고 진리를 향한 올바른 길이든 비진리의 구렁텅이로 매몰당하는 그릇된 길이건 모두 주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본 지면에서 주로 할애한 한국 교회 부패 목록이 자칫 자기 눈에 썩어가는 눈동자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든 티끌만 지적하는 경우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길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다. 자신 스스로 진리로 향하는지 비진리로 향하는지 자신은 결코 알 수 없는 상황(롬 8:26)이기 때문이다 !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12). 


인용에서 보듯이 성경권위는 막연한 추상적 주장이 아니다. 성경권위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존귀와 영광과 모든 찬송을 받아 마땅한 분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독생자 어린 양뿐이시다. 더 이상 목사들과 교회 실권을 쥐려는 종교 권력자들의 그리스도 참칭과 대역죄를 중단하길 바란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접고 성경공부부터 하길 바란다. 물론 성경공부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우는 기회도 깨닫는 과정도 모두 보혜사 성령의 주권과 은혜에 달려 있다. 그래서 성경을 지식으로 안다는 것과 교회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복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착각한다. 머리에 든 성경 지식이 많으면 마치 신앙이 좋은 듯이 말이다. 보혜사 성령의 주권을 무시하는 판단이라고 본다. 하지만 필요조건도 매우 중요하다. 즉 성경을 많이 알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존재 증명과 그 능력의 영광을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리스도의 진실한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주권과 무한한 은혜를 찬송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 역시 보혜사 성령의 주관하심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같은 입으로 본문의 말씀과는 무관한 아니 본문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곡해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리스도를 참칭하여 교회와 성도들에게 농간(弄奸)을 부리고 결국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에게 대역죄를 범하는 강단 설교자들은 그 악행을 그만두기 바란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무지몽매한 성도들의 세속적 욕심이 더 문제일 경우도 있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욕심이 있다면 교회에 가지 말아야 한다. 헛된 욕망으로 참석하여 군중 심리에 노예가 되는 만큼 한국 교회의 목사는 그만큼 더 부패하고 그 피해는 바로 성경진리를 공부하지 않고 세속의 헛된 욕망을 찾고자 교회당을 찾아가는 성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칭과 그 대반역의 대역죄에서 해방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여호와 하나님 계시 중심의 성경공부(www.ibt.or.kr)밖에 없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VII : 성도들의 성경 무관심과 무지에서 벗어나기
종교개혁 정신의 원형찾기 V : ‘축도(축복기도)’의 허구에서 벗어나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