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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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02 19: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북녘 땅 지체를 위한 통일 준비 완료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측 평화의 집-‘평화, 새로운 시작’. 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회담의 주제다.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날이다. 8천만 동포들은 물론 세계의 방송과 언론도 감동과 흥분과 희망을 타진했다. 공로가 있는 사람의 ‘노벨상’을 운운할 정도의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불과 몇 달 전 금방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과 우려의 시간을 기억해 보면 이러한 반전이 있으리라고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떤 인간의 계획이 만들어낸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주와 세계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특별히 더 각인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의 각본대로 되는 것도 한국이 운전자 노릇을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후원과 러시아의 지지 선언 그리고 일본의 동참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표피일 뿐이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이며 한반도에 정하신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인간들이 지배하는 권력 집단들은 각각 자기의 관점에서 손익을 따진다. 인간이 속한 세속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영구 평화체제의 희망을 안겨다 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성도로서 가치관이 세속과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도 기쁨의 기준이 세속과 달라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있다. 만물 위에 교회, 그리고 교회 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신다(엡 1:22).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정말로 통일의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동시에 성도로서 우리는 평안체계 구축 그 자체가 염원의 목표로만 끝날 수 없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 당국자들이나 국민들이 통일을 원하는 것보다 더 간절한 바가 있다. 바로 북녘에 진 복음의 빚을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고 있는 지체들과 꼭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1948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한국전쟁과 오늘 이 시간까지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과 지체들은 목숨과 신앙을 바꾸어 왔으며, 김일성 부자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성경진리를 사수하고자 온몸을 던졌고 던지고 있다.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칭했던 평양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현대사에서 유례없는 독재의 땅, 기독교 박멸의 땅으로 지금까지 동토(凍土)의 땅으로 남아있다. 그 동방의 예루살렘은 지금 동토 소굴의 예루살렘으로 죽음과 사투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교회로 있다. 이에 비해 이남(以南)의 교회는 부유하고 편하다 못해 이제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이 남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닌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누구보다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 그 이상으로 성도의 간절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통일’을 향한 힘차고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서 남북정상회담, 이보다 더 중요하고도 기쁜 소식이 분명 기다리고 있다. 분단 70년 올해, 그리고 ‘오직 성경의 절대권위’만을 외친 종교개혁 500주년을 방금 지난 우리는 북녘 성도들에게 이전에 받았던 복음의 빚을 갚을 수 있는 완벽한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물질적 지원이나 경제협력과 같은 현물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정말로 아낌없이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 완벽한 선물, 반드시 나누어야만 행복한 통일의 선물, ‘논리적으로 완전한 진리체계로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한 성경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분단 이후 북한의 신학과 신앙은 멈추어 있다. 우리처럼 마음 놓고 마음껏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서로 확인하고 기뻐하는 기회가 없었다. 성경진리의 절대가치보다 건물 부동산과 재화에 더 관심이 있는 이 남한의 교회가 외면하고 있는 성경의 절대진리를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된 말씀이 개념 하나까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임을 확정한 ‘성경신학’을 값없이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야벳, 이제 셈의 장막에 거하리라
‘제주 4·3사건’, 성도들의 순교와 헌신의 현장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