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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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19 19:0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한국 교회 성장주의는 교회에 내린 하나님 심판의 증거


지난 6월 4일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한목윤)는 이 시대 한국 교회와 관련된 뜻 있는 주제 발표회를 가졌다. ‘대형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주제로 교회 원로들로부터 뼈 있는 고언(苦言)과 충언(忠言)을 들었다. 교수 두 분은 석좌 교수 신분의 원로이며 목회자 한 분은 은퇴 목사로서 원로였다. 한국 교회에 대해 거론한 내용 중 현재 ‘한국 교회는 비즈니스 업체이다’로 규정된다. 대형 교단의 대형 교회들이 한국 교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원로들은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내듯이 비판을 가했다. 간단히 말해 비즈니스 업체라는 것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투자자가 생산설비와 생산수단을 투자하고 노동자들은 임금을 대가로 자신의 노동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한국 교회라는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국 교회는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하는 악덕(惡德) 기업주가 지배하는 저급한 비즈니스 업체다. 생산설비와 생산수단은 기본적으로 자본가가 투자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 내의 설비 투자자는 분명 헌금을 내는 성도들, 이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다. 개미 주주(株主)들이자 동시에 노동자 신분인 성도들에 의해 생산수단 대부분이 구축된다. 그런데 그 투자설비와 수단이 마련되고 나면 투자의 주체와 명의(名義)는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간다. 개미 주주 성도들과 무관한 교회 카르텔인 노회(老會)에서 파견한 목사가 선임된다. 그런데 일반 교회 비즈니스 업체는 노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온갖 불법과 이단의 풍문을 만들어 작은 업체를 못살게 굴기 때문에, 홀로 독립 교단 비즈니스 업체를 만들기도 하지만, 한국 교회 비즈니스 업체들은 대개 노회 카르텔을 통해 업체를 보호하고 영업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되면 개미 성도 주주들은 잘 모르는 대표 이사가 어느 날 선임되어 모든 명의를 쥐고 노회법을 들먹이며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그리고 목사 카르텔인 노회는 그 목사를 가능한 끝까지 두둔하며 보호한다. 
물론 성도들과 함께 설비 초기 단계부터 생산수단을 투자한 목사 투자자들도 있다. 이럴 경우 목사는 ‘대표 이사’로서 목소리와 그 권한은 더 막강해질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몇 년 혹은 몇십 년 자신도 투자한 액수가 적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의 비즈니스 업체일 때는 조기에 분파(分派)가 형성되어 업체 분리 수순을 밟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발표회에 참여한 원로들은 지금이라도 업체를 축소하고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하지만 투자한 바탕이 질적 투자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 사업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다가 그 업종을 바꾸는 것도 정말로 쉽지 않은데 어떻게 양적 투자를 질적 투자로 그 투자의 성격을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노회 기업 카르텔, 당회 이사회 카르텔, 대표이사 목사의 경영 규칙이 확고하게 양적 성장에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질적 성장으로 가려면 그 경영원칙들을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 어려운 현실이다. 말이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항상 맞는 진리이지만, 한국 교회 비즈니스 센터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주문일 것이다. 그 기업에서 몸담았던 원로들도 이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닐 텐데, 질적 성장을 향한 간절한 소원만을 영원한 기업의 완전한 소유주가 되신 하나님께 드릴 뿐일 것이다.
어떤 대표 이사는 다른 대표 이사가 번영시킨 대형 비즈니스 업체를 자기 명의로 억지로 만들기 위해 교묘한 편법들을 찾고자 자기가 속한 카르텔을 방문하며 고개를 숙인다. 아니면 이미 확보한 대표 이사 명의를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과 친인척에게 물려주고자 모든 권력과 재력을 총동원하여 비즈니스 운영에 교묘하게 무차별적으로 무자비하게 관여한다. 한 원로는 비즈니스 업체를 분리하면 된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노회 카르텔과 당회 카르텔이 목사의 대표 이사 권한을 완전하게 보호하고 있는 이상 개미 주주 성도들의 경우에서 보면 분리를 하면 투자 손실이 더 커질 우려가 높다. 한 원로는 교회 비즈니스 행정실이 정실(情實)로 짜여 비즈니스 업체의 부패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 이사의 사례비와 판공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것도 답답한 지적이다. 재정을 대표 이사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소속한 카르텔의 법이 보호하고 있는데 사례비 줄이는 것은 임시방편도 안 된다. 한 원로는 비즈니스 성장주의가 낳은 대표적 폐해의 원인인 ‘세례’를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즈니스 운용을 양적이냐 질적이냐를 결정할 때 어떤 소액 주주를 모으고 어떤 대표 이사를 선임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절차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양적 운영으로 경영 구조가 고착화한 지 너무 오래된 한국 교회 비즈니스 업체는 질적 성장을 도모할 건전한 소액 주주와 대표 이사 선별할 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 비즈니스 업체의 규모는 점점 줄고 있다. 이미 오래전 영원한 천국 기업에만 소망을 둔 한 선배의 고백이 눈에 들어온다.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불쌍한 권력에 기생하려는 더 불쌍한 ‘기생충’ 목사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 = 한국 교회 퇴락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