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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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2 18:5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축복합니다’는 말, 남발하지 말라!


세상이 창조되기 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너무도 신비로운 ‘복(福)’이 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너무도 잘 아는 구절이다. 아니, 비성경적 축복관으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이 판국에 성경 교사들과 교회 지도자나 신앙 선배들은 반드시 주목하고 반드시 전달해 줘야만 하는 내용이다.
내용은 너무도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적인 복을 주셨다.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를 택하여 구별된 백성으로 삼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자들이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스러움을 찬양하며 살게 하시려는 데 있다. 이보다 더 신비롭고 확실한 기독교 축복은 없다. 여기서 빗나가는 모든 ‘복 타령’은 비성경적이며 세속적이며 기복적인 우상 숭배론에 빠진 것이다. 성경을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전달해야 ‘복’은 단 한 가지다. ‘창세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의 출발이며 동시에 완성할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근래 한국 교회 많은 목사들이 주일 아침 성도들에게 ‘축복합니다’라는 말로 인사하거나 아니면 참석한 성도들에게 권하여 좌우에 앉은 사람들에게 ‘축복합니다’라며 인사하라고 한다. 에베소서 1장 3〜6절의 의미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 매우 답답하고 슬픈 일이다. 그리고 설교 메시지를 봐도 처음에는 은혜를 강조한다. 물론 이 은혜의 본질도 에베소서의 말씀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을 텐데 그렇게 많이 강조하지 않고 죄론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하지 않기도 하겠지만, 목사로서는 죄인을 너무 강조하면 설교 끝에 교회 충성이나 헌금을 강조하기 미안하거나 힘들어진다. 죄인에 대한 강조는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지나치게 강조한다. 우리는 의인이라고 강조하면서 그 의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 잘해야 이른바 세상에서 말하는 ‘복’을 받는다는 방향으로 설교를 끌어간다. 앞서 본 ‘창세전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신비한 영광의 사건’과는 무관한 설교로 흘러간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축복합니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침에 일어나서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축복합니다!’라고 하면 잠시라도 이 말에 위안을 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복은 세속적이며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는 전혀 성질이 다르다. 중국을 다녀보면 문 앞에도 온통 ‘복’ 지천이고, 집 안에 들어가도 ‘복’ 도배다. 이러한 기복주의와 한국 교회에서 벌어지는 ‘복 타령’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창세전부터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 된 사실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의 메시지가 없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인간적으로 참담하고 극한 고통 속에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우리가 이미 창세전 그의 자녀라는 진리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론이다. 물론 인간은 본성상 자신이 듣기 좋은 소리를 더 듣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한다고 성경진리를 왜곡하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목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줄 수 없다. 축복권이 목사에게는 없다. 성도들도 성경진리로 눈을 돌려야지 인간에게 뭔가 요행이나 한탕 대박을 요구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단 성경 연구가로서 목사는 모든 성도에게 먼저 성경에서 확인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전달해 주면 된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몸 된 지체일 뿐인데 복을 주는 자가 따로 있어서 그 특별한 자만이 복을 준다는 것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축복합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미 창세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해보자!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정해진 사형 집행 일을 기다리며 신앙의 선배로서, 성경진리를 정말로 사랑하는 원로로서 마지막 부탁을 하는 바울 사도의 부탁이다. 특히 점점 무너지고 있는 한국 교회와 세속의 지식으로 혼돈으로 치닫는 우리 신학계에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진리에 몰두하며 세속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분명한 기독교 세계관을 성경에 근거하여 바르게 전해주는 진정한 원로 지식인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께서 순교일을 앞두고 있는 바울 사도를 통하여 전해주는 앞의 이 말씀은 인간적으로 그 사도가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부패와 불법과 추잡한 정치 행각으로 무너지는 한국 교회를 성경진리의 말씀으로 살려야 한다는 말은 팽개쳐버린 지 옛날이 되었고,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자기 전공과도 거리가 먼 정치적 발언을 하는 기독교 원로 지식들의 추한 모습을 보면 연민의 정까지 생긴다. 앞의 본문을 좀 더 보자. 곧 순교자로 참수당할 시간을 준비하는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하셔서 세상 정권을 심판하고 실체를 드러내실 영원한 나라, 하늘나라를 두고 확신에 찬 소망 가운데 진리의 말씀을 전하라고 동역자들과 후배 신앙인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부탁이 아니라 처지와 상황으로 보면 분명 마지막 유언이다. 이와는 거리가 먼, 너무도 거리가 먼 행보를 하는 우리 기독 원로들을 보면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좌우의 논리로 세속 정치를 결코 정리하거나 해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흙탕을 다시 역겨운 오물 통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빨갱이’든 ‘수구 꼴통’이든 어떤 세상의 논리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다. 인내와 말씀 전파로 세속 정치에 정신이 나간 신앙 후배들을 경책(警責)하여 진리의 말씀으로 정신을 차리도록 질책하기는커녕 사리사욕과 무지몽매로 진리를 더럽히는 정치 목사들을 오히려 더 부추기며 성도들을 또다시 혼돈의 늪으로 빠뜨린다.
정말로 한국 교회는 앞서 본 말씀처럼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 자기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런데 더 통탄스러운 것은 그 일을 기독교 원로들이 그 사욕을 더 부추긴다는 것이다. ‘성경 진리에서는 돌아서 버린 채 허탄하고 추잡한 정치판 이야기’를 무슨 고견(高見)이라도 되는 듯이 무책임하게 여과 없이 남발한다. 제발 멈추시길 바란다. 성경에 기록된 바울 사도 유언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모든 일에 제발 신중하여 진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하는 것이 당신 여생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의미 있는 직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肉身)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속한 영생의 소망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고자 바울 사도의 믿음을 지키도록 하셨다. 좌파에든 우파에든 휩쓸리지 않고 오직 성경진리의 말씀을 선명하게 전하면서 선과 악에 대한 최후 심판자로 나타나실 의로운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아름다운 기독교 원로들이 매우 그리운 시간이다. 다음과 같은 말씀에 동참하는 분들이.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기독교 언론, ‘기레기’가 되지 말아야
기독교 원로들, 정치 발언 삼가고 성경진리 수호에 나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