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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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9-29 10:1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종전선언과 평화시대를 위한 성도의 애원


지난 9월 22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의 종전 선언을 재차 당부·촉구했다. 2019년에 이미 제안했던 바를 다시 한국, 북한, 미국 나아가 중국의 적극적 참여를 거론하며 ‘한반도 종전선언’ 카드를 펼치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지금의 시대를 모든 나라가 향후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함께 추구해야만 하는 ‘지구 공동체 시대’로 규정했다. 이는 우선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며 국가 간의 경계를 허무는 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미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지구 공동체 시대를 위해 경쟁과 갈등에서 공존과 상생으로 전환하는 일에 더욱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인류애와 연대의식이 지배하는 지구 공동체 시대에는 유엔의 역할이 더욱 커졌으며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복잡한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모든 인류가 공감하는 새로운 규범과 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바로 유엔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의 이해관계에 매몰당하지 않고 모든 나라가 연대하고 협력하는 국제질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국제연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공동 극복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백신 보급 국제연합체(COVAX Facility, 약칭 코백스)에 2억 불을 공여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했으며 국내에서는 코로나 위기 극복과 새로운 도약 나아가 지속 가능 발전 목표를 위한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과 사회 안전망 확증을 통해 ‘휴먼 뉴딜’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그린·디지털·보건 분야에 투입하는 ‘공적개발원조’(ODA)에 대해 효율적 집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대한민국의 선진국 지위는 더욱 빛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경쟁과 갈등 극복을 넘어 ‘공존’과 ‘상생’의 시대가 된다는 것은 북한과의 평화 유지를 빼놓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완전한 평화는 다르게 말하면 비핵화와 공동번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정부가 시작하면서 추진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뭔가 확정될 듯 말 듯 현재도 여전히 해결 난제로 보이며 진행 중이다. 남북 정상의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 싱가포르 선언 등 역사적 성과가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 할 일은 참으로 멀고 많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평화의 실마리는 한반도 ‘종전선언’으로 보인다. 이에 대통령은 다시 2년 만에 ‘종전선언’을 위해 주요국들의 적극적 참여를 강하게 당부하고 요구했다. 남북미 3자이든 남북미중 4자이든 종전선언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당사국들의 모든 이해관계에 대해 대한민국으로서는 모두 수용하겠다는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위한 문을 활짝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남한과 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에 제안한 종전선언은 그만큼 유의미한 일로 보인다. 대통령은 오는 12월에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를 한국에서 주최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한 국제 사회의 응원과 협력을 재차 부탁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종전 선언과 평화 정착 나아가 공존과 상생의 제안은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 한반도에 일어난 기쁜 일뿐 아니라 슬프고도 참담한 일, 평생 아물 수 없는 치유 불가의 상처가 남은 모든 한반도 역사 전체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 섭리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의 상식적인 도덕적 감정으로 결코 속단할 수 없는 전 지구의 역사 자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주권적인 섭리 방법 속에만 해명된다. 그래서 지금의 한반도 역사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그의 몸 된 교회의 역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미 2천여 년 전에 성령 강림으로 시작한 예루살렘 교회 창립의 역사와 그 이후 모든 세계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시발점은 교회의 역사와 결코 분리할 수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순절 성령에 의한 교회 창립과 이후 수많은 교회 설립의 과정은 물론 성경진리의 전파를 통한 교회의 양육과 무장 그리고 교회의 진리투쟁 및 교회의 최후 승리 과정도 기독교 역사를 배제하고 결코 해석할 수 없다. 한반도의 종전선언 나아가 남북 모든 교회와 성도의 대통합의 역사!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통치 섭리 속에 이러한 사건이 우리 시대에 주어질 최고의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드러나길 단지 애원한다.
인류 역사에서 반복하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살상으로 이어지는 전쟁과 그 치유 불능의 쓰라린 상처는 인간의 의지 밖의 일이며 결코 피할 수 없는 역사였음이 틀림없다. 성경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을 함부로 전쟁과 섞어버리기에는 전쟁의 아픔은 너무 큰 공포와 절망 그리고 상처로 남아있다. 전쟁과 하나님의 존재 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감정을 인간의 두뇌로 모두 연관 지어 종합해 보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오만함의 극치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언약에는 전쟁의 종식을 선포한 많은 예언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전쟁 종식과 평화 시대가 도래하는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창세전 영원한 존재인 메시아(그리스도, 요 1:1; 엡 1:3)가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언약을 성취하시는 사건은 분명 피비린내 나는 인간 세상에 발발하는 전쟁과 그 종식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자연의 각종 생물들과도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언약을 포함한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이 함께 회복되는 전 지구적 평화 시대가 어떤 방법으로 도래할지는 감히 예측하기 힘들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의 역사는 이미 2천여 년 전에 이루어졌으며 또한 현재도 이루어지고 장차 이루어질 역사임이 틀림없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와 나아가 통일을 바라는 세계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져 북한의 지체들에게도 빚진 복음을 원 없이 다시 전하고 싶다. 유대인 유월절과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풍성한 잔치도 벌이고 싶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우리가 원하는 시간과 일치하는 날이 도래하길 다시 한번 두 손을 모은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8): 그[여호와 하나님]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회복할 이스라엘 백성들-필자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호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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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수 증가와 감소, 인간 중심적 이분법을 넘어서 봐야 한다
두 종류의 ‘빠른’ 정보: 이웃을 살린다 ↔ 사리사욕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