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5-10-11 14:4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가끔은 일탈을 꿈꾼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충북 진천은 어때? 살기 좋을 것 같지 않아? 텃밭을 일구고 상수리도 줍고 하면서…….’
 엊그제 집사람이 다가와 속삭였던 말 때문만은 아니다. 학교라는 삶의 현장에서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위선을 떠는 자신을 문득 바라보게 될 때. 법은 평등하지 않고 물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인격적 대우가 달라지는 세상을 어린 학생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할 때.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누구든지 노력하면 고귀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중의 백미는 교사의 비정상적 상태에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다. 교육보다는 마치 행정공무원처럼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뒤져, 내게 배당된 숱한 공문을 읽고 수십 쪽짜리의 첨부 파일을 읽어가며 일 처리 순서를 정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생활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때다. 교실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선 대신 자판만 두드리는 인생은 가련하다. 설상가상으로 주종관계를 기대하는 관리자와 만나게 되면 매일의 일상이 정신적으로 고되다. 단지 하는 역할이 다를 뿐인데 그것을 이해하는 관리자는 소수다. 업무 외의 영역까지 섬김을 받으려 하는 분을 볼 때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구절이 빙빙 맴돈다. 장로 교장이나 권사 교장을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가끔은 일탈을 꿈꾼다.
 학교생활 외에 정책연구 아카데미와 다른 연구모임 두 가지를 겸하니 순간순간 벅차다. 읽고 쓰고 듣고 발표하고. 원해서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피곤하니 이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게다가 모임에서 상정하는 교육의 방향성을 그리다보면 관료주의나 불합리한 학교문화, 말하자면 아득히 먼 학교민주주의의 현실이 대조되어 기가 꺾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학교민주주의는 평교사들의 로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학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교사들이 관리자들의 불합리한 행태 및 독선에 대해 가진 불만의 발로다. 지방교육 당국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민주적 리더십과 관련한 숱한 연수를 하거나 교사가 관리자를 평가하는 등의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변화의 실마리를 찾기 힘들다. 결국, 자치입법으로 돌파하려 하지만 낙관적이지 않다. 경기도에 앞서 광주광역시와 서울시에서 조례를 제정하였으나 교육부의 제지와 제소로 인해 막혀버린 것이다. 서울시의 조례안은 올해 초 위법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광주시 조례안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것이다. 대법원이 폭넓은 해석보다는 문구를 기계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답답하다. 사람이 변하기 쉽지 않으니 시스템으로 정교화하려 법적으로 다가선 것인데 현실은 모질다. 그래서 가끔은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실, 좀 부끄럽지만 솔직해지겠다.
위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쓰고 보니 자기합리화다. 고백컨대,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힘에 겨울 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것이 무책임하게 보여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주신 이성이란 놈을 내 감정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선까지 활용한 꼴이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던 것은 환경과 복잡한 여건으로 엮어 일탈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짓눌러 버리는 하나님의 의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제4의 길
민주, 시민, 자유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