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6-01-12 20:38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대학 시절 지방의 모 선교단체 소식지의 편집부장을 맡은 적이 있다. 원고를 청탁하고 교정하며 인쇄소에 맡겨 결실을 얻어내는 과정은 제법 쏠쏠한 기쁨이었다. 동료들과 편집방향을 협의하고 적절한 주제를 정한 후 이루어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문서선교라는 사명감 때문에 가능했다. 힘들었던 것을 세 가지 들라면 첫째가 원고청탁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읍소를 통해 얻어낸 원고가 주제에 어긋나거나 내용이 부실할 때였다. 글쓴이에게 재차 또는 삼차 수정요구를 하기도 했는데 고역이었다. 감정이 상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가장 힘든 일은 원고 마감일을 넘기고도 태연하거나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요구를 할 때다. 신문사 편집부의 고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처음 신문원고 청탁을 받은 이후 4년째로 접어든다. 교사가 된 후, 몇 차례 문학이나 교육, 종교계간지 등에 기고를 한 적이 있지만, 정기적 글은 여기가 처음이다. 사실, 한국크리스천신문 원고청탁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집사람이었다. 집사람은 정중히 거절하며 나를 추천했다. 

처음 청탁을 받고 몇 차례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만 3년을 지나 4년째 접어들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주제를 다뤘고 평소 생각한 바를 자유롭게 피력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게 되니 소회가 새롭다. 

첫째, 꾸준히 글을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은퇴하며 한 이야기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다. 단지, 피만 말리면 된다.” 몸이 아프거나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때 원고 기일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이상하리만큼 쉽게 써졌다. 

둘째, 글을 쓰는 습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서 침묵형이다. ‘침묵은 금’이어서가 아니라 말로는 소신과 철학을 표현하기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장 부러운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대신 하나님은 끄적이는 습관을 주셨다. 일기도 꽤 오래 썼고 편지도 즐겨 썼다. 글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좋았다. 음미할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려볼 수 있는 사색의 여지도 있었다. 그래서 원고에 대한 부담은 그리 크지 않았다. 

셋째, 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직업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교사로서의 삶을 꿈꾸어 보지 않았기에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남아 있다. 하나님은 왜 나를 교사로 살게 하셨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글을 통해 반성의 기회를 얻고 충실한 삶을 다짐하곤 한다.

아쉬움도 있다.

여기에서 주제로 다룬 공교육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적이다. 공교육이 추구하는 인성교육이나 학생중심교육, 다양성을 추구하는 교육 등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 등이 제안되고 행해지고 평가되며 어떤 것은 도태된다. 말하자면 공교육은 특정 철학적 원리를 근거로 적절한 방법을 찾고 또 찾는 과정인 셈이다.

필자는 공교육의 일선에 있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기에 정보 제공 측면에서 글을 전개한다. 때로는 의견을 피력하고 성경적 측면에서 고찰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글은 현상에 관한 것이다. 짧은 지면에 교육현상을 압축해야 하니 내용 소개하기에도 벅차다. 오로지 그것을 성경적 측면에서 고찰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공교육의 이념과 목적이 홍익인간이나 자아실현과 같은 휴머니즘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바울이 신사라고 칭찬했던 베뢰아 사람처럼 글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2016년 새해다. 내게 어떤 길을 가게 하실지,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그 과정에서 어떤 자비와 긍휼로 위로하실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2,23)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책, 다름의 미학
세상은 다툼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