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특별기획

 
작성일 : 16-02-21 21:4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승진? 안 해도 좋아!


선생님께.

평소 살갑지 않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지만, 글로나마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선생님을 뵌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군요. 제가 인사발령을 받아 선생님이 계셨던 학교에 방문하자마자 맞아주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낯선 사람임에도 학교의 구석구석 안내해 주시고 잔잔한 미소로 응대하셨지요. 남성미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목소리도 작아 좀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학교는 농촌 소재 학교라서 모두들 승진에 목을 맨 분들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되네요. 어느 조직이든 경쟁이란 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은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이 새로운 분이 기존에 있었던 선생님의 소위 승진점수가 되는 업무를 가져가고 또 다른 분은 부장이라는 타이틀도 앗아가려 암암리 공작활동에 참여했었지요.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마치 신선처럼 요동치 않았었지요. 주변에서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기도 했지만 저는 선생님이 안타깝고도 내공이 느껴지는 묘한 감정을 갖곤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함께 보낸 후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떠났고 저 역시 무심하게도 연락을 취하지 않고 지냈었습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제가 마쳐야 할 학업이 있었고 휴직도 하면서 주변과 담을 쌓고 지낸 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묘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될지 예상치 못했던 거지요. 발령을 받아 들어선 학교에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오래전처럼 선생님이 현관 앞에 서 계셨고 수년 전의 똑같은 되풀이 과정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그렇게 3년을 같이 근무하면서 선생님은 과거와 한 치도 다르지 않더군요. 늘, 말없이 자기 일을 완벽히 처리했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말이 거의 없었고 일 처리는 여전히 꼼꼼하여 빈틈이 없었으며 각종 법규 등을 완벽히 소화해서 마치 자동응답기 같았습니다. 그 학교에 먼저 근무했던 한 교사는 선생님을 모범적 교사상으로 치켜세우고 늘 곁에 있고자 했지요. 하지만 근무하는 내내 학교장으로부터 비난과 모욕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인격적인 부분까지 거론하고 학부모들 앞에서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볼 때마다 모든 교사들이 분개했었지요. 그런데 알잖습니까. 학교에서의 교장은 황제라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라며 그것에 미치지 못했을 때 파급되는 어려움을 말입니다. 선생님은 늘 교사로서의 원칙을 지켰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분명히 선을 그었지요. 그럼에도 곁에서 지켜볼 때 답답한 구석이 있긴 했습니다. 학교폭력 유공교원을 선정하는 문제에서 선생님은 충분한 자격을 가지셨고 그 점수만 있으면 바로 승진을 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사람이 당할 불이익을 먼저 생각하셨으니까요. 학교폭력 유공교원 가산점은 많은 교사가 원하고 그것을 양보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포기를 안 한다고 하니, 내가 포기하겠습니다. 만약 이런 다툼이 교육청에까지 알려지면 다른 사람들도 불이익을 받을 텐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바보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좀 더 어린 분이 포기하면서 잘 해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선생님이 보여주신 넉넉함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제 교감승진 명단에 선생님 이름을 발견했을 때 저는 제 이름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어쩌면 바보 같고 답답한 인생처럼 양보의 양보를 거듭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선생님이 평교사로 명퇴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다수는 머리를 짜내 멋진 계획을 세워 실천하려 노력하지만, 선생님은 물결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놓고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는 성격이셨습니다. 때로는 바보, 답답함으로 통했지만, 묵묵히 걸어갔던 선생님은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를 안겨주셨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승진? 안 해도 좋아!”라며 쿨했던 모습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됩니다. 마음도 평안해지셨고 좀 더 여유로워지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감으로 발령이 나면 저도 그 학교에서 세 번째 만남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따뜻한 멋진 교감선생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6년 2월 후배가 드립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김진희 집사 (장안중앙교회)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책, 다름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