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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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21 19: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4.11 총선과 기독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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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치뤄진 제19대 총선 결과 기독자유민주당(대표 김충립)이 정당득표율 1.2%(257,164표)를 기록해 국회 원내진입에 실패했다. 원내진입을 위해선 3%의 득표율이 필요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2% 이하를 득표한 정당은 해산해야 한다는 정당법에 따라 강제해산 절차도 밟게 될 전망이다. “교회의 모든 은행 대출이자 2% 인하”라는 공약을 내세우며 기독인의 단합을 호소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교회는 물론 지난 총선에서 지지를 보냈던 성도들로 부터도 외면을 당했다.

김충립 대표는 “60만 표는 나올 줄 알았는데, 납득할 수 없다”면서 “전광훈 목사(청교도영성수련원)의 애국 포럼에서 서명한 사람이 40만명이고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김삼환(명성교회) 김홍도(금란교회) 목사 등 우리를 지지한 목사의 교회 교인 수만 해도 30만이 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기독당이 정치 실험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부터. 당시 김준곤 조용기 김기수 목사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기독당은 22만표를 얻는데 그쳐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4년 후인 18대 총선에서는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사랑실천당이 44만표(2.59%)를 얻었다.

기독당의 실패 원인은 여러면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교회의 대표를 표방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았고, 한국교회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라는 부분에서도 동의를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의 정치참여가 과연 성경적인지, 성도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뉴스해설>

목회자의 정치(政治) 참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6~7)

  정치는 정치적인 은사가 있는 자가 하는 것이다. 즉, 정치를 전공한 자들이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는 직임이며 전문직이다. 한국정치는 인기 연예인도 하고, 대학교수도 하고, 법조인도 하고, 가정주부도 한다. 물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정치적인 은사가 있으며 각 분야의 전공자라야 바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같은 정치판에 목회자들이 끼어들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들을 만들더니 스스로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목회자가 아닌 자들이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정당을 만든다면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앞장서서 정당을 만들고, 정치참여를 선언한다면 문제가 있다. 하나님께서 목사는 가르치는 일에 주력하도록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목사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만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판에 들어섰다.

  정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기독교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란스러워도 목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본분에서 이탈하면 안된다. 굳이 정치를 하고 싶다면, 기성정당에 가입하던지 아니면 탈종교적인 정당을 창당하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빙자하거나 기독교인을 매도하는 기만정치는 종교적인 범죄이다. 팔백만 기독교인들이 좌시(坐視)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기독교인들을 통해서만 사역하지 않으시며, 나라 자체를 총괄해서 다스리신다. 기독교인이 대통령의 자리에 등극한다 해서 나라가 잘되고, 무신론자나 타 종교인이 통수권자가 된다 해서 나라가 잘못 되는 것은 아니다. 구약시대에도 유대인의 왕이 나라를 부패하게 했던 사례가 있고, 이방인에 의해서 나라가 회복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정통파 유다지파였으나 백성들을 경제적 혼란에 빠트렸고, 그 외에도 분열왕국시대에는 남쪽 유다지파 왕들의 부패에 의해서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반면 여호수아 시대에는 가나안 여자 기생 라합을 통해서 가나안 땅 정복에 기여하게 하셨고, 모압 여자 룻을 통해서는 몰락한 유다지파의 가문을 잇게 하였으며, 바벨론 제국시대에는 이방나라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해서 유다민족을 포로에서 해방시켰다. 나라의 통수권은 하나님께 있다. 어떤 사람이 지위에 오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라를 왜 그렇게 섭리하시느냐가 관건이다.

  기독교인들의 의식이 개(個)교회주의에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목사들이 기독교를 등에 업고 어드밴티지(Advantage)를 얻으려 한다면 비신사적인 행위이며, 비신앙적인 처사이다. 목사가 정치를 한다고 해서 정의가 구현된다고 장담할 수 없고, 목사는 종교와 관련된 직임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사역에만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목사’의 직임이나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고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정치참여는 무관할 것이다. 이제는 정치에 종교를 이용해서도 안되고 종교에 정치적인 색채를 가미해서도 안된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정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재차 확인됐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승일 목사/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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