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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2-15 10: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한국조직신학회, 제63차 신진학자 학술발표회 개최


김동진·조천권·조현우 박사 논문 발제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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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직신학회(회장 이오갑)는 지난달 14일 제63차 신진학자 학술발표회를 서울시 성북구 소재 덕수교회(김만준 목사)에서 신학 학자의 3편의 논문 발제로 개최했다.
이날 첫 번째 발제자 김동진 박사(University of St. Michael's College–Toronto)는 ‘21세기 한국 교회의 방향을 위한 20세기 민중 신학과 에큐메니컬 운동 연구’ 주제로 발제했다. 김동진 박사는 “20세기의 에큐메니컬 선교적 교회론에서 민중 신학은 1970년 초기에 발생하였다. 그때 이후로 현대적 한국의 개혁적 성향으로 사회적 민중운동과 함께 연계하면서 한국 사회에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그 운동은 민중 그들 자신이 통치하는 그룹에 빼앗긴 그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얻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재적인 군사 정권 아래에서는 모든 시민이 행동, 생각, 여행에 제한을 받았고 미디어와 출판물 역시 통치를 받았다”라고 하면서, “많은 보수주의적인 교회들이 통치하는 정부를 방어하고 지지하였을지라도 진보적인 교회들과 민중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들은 사회운동가들과 고난 겪는 학생들을 도왔고 민중 신학을 한국 교회와 사회 안으로 가져왔다”라고 했다.
김 박사는 이번 연구 논문이 하나님의 미션으로서 ▲한국 교회는 민중의 고통받는 장소에서 무엇을 하였는가 ▲교회는 한국의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였는가 ▲교회는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무엇을 이바지했는가를 분석했다고 하면서, 추가적으로 한국 교회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생산하고 있는 21세기의 한국 교회는 어려운 문제들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탐구하였고, 한국 교회는 찰스 펜샴이 말하는—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교회의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고, 21세기 선교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펜샴에 의한 저들 질문들을 가지고 민중 신학으로부터 해결점에 중점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적인 변화와 성스러운 예식과 함께, 교회의 자유와 평화의 미션은 전체 사회와 세계를 위하여 실행되어야 한다. 전체 구원을 위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은 사회의 중심으로 와야 한다. 반면에 부한 사람들과 통치하는 그룹은 변두리로 가야 한다. 그 전환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재창조하는 방법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자유적인 교회나 보수적인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과 비기독교인들조차 연합해야 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에 대하여 대화를 통하여 나누어야 한다. 나는 이 운동이 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이고 거룩한 성령의 재창조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천권 박사(Ph.D., 케이씨대학교)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황과 복음-자끄 엘륄의 관점에서’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조 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사는 궁극적인 디지털형 인간은 인간과 기계의 융합으로 향상된 능력을 갖는 포스트휴먼(posthuman) 내지 트랜스휴먼(transhuman)으로 예상된다. 포스트휴먼과 같은 디지털형 인간의 대두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과의 경계를 근거로 형성된 휴머니즘적 인간 이해의 종말을 예고한다. 휴머니즘의 종말은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의 종료를 의미하므로 인간의 삶과 의미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기술에 대한 입장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것과는 관계없이, 기술이 인간에게 기회와 문제를 함께 일으키는 중대한 존재라는 것에는 인식을 같이한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제기하는 인문사회학적 상황은 새로운 신학적 과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4차 산업혁명을 앞에 두고 희망과 불안이 혼재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복음의 의미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그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속적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의 복음이라는 신학적 영역을 종합적으로 통찰해야 할 것이라면서 연구를 위해서 자끄 엘륄(Jacques Ellul: 1912-1994)의 기술철학과 신학사상의 관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의 상황과 복음을 엘륄의 관점에서 밝혀가는 과정에서 이 글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자동화를 중심으로 드러내려고 한다. 다음에는 엘륄의 기술철학과 신학을 형성하는 인지적 틀(cognitive map)을 그의 변증법과 자유사상의 측면에서 설명할 것이다”라며, “엘륄의 관점을 4차 산업혁명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히고, 4차 산업혁명으로 제기되는 문제 해결을 엘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전망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연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상황에서 요청되는 복음의 의미와 내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고도의 기술문명과 세속화의 경향에서 성도의 신앙을 돕고 교회의 사역을 전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박사는 발제 결론에서 “4차 산업혁명에서 예상되는 문제의 본질은 그것이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효율성의 확대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목적이 인간이 아닌 물질이고, 희망을 전하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물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은 인간이 아닌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는 고도한 기술문명의 시대적 정황에 있는 것”이라며 “신학적으로 이러한 상황은 물질과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을 제공하는 기술을 신성화하여 우상으로 섬기는 현상으로 통찰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고도의 기술문명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자각하고 보존할 새로운 복음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술문명 속에 사는 인간과 세계를 보존하심으로 해방하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엘륄의 복음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복음과 교회의 사역을 모색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발제자 조현우 박사(한국침례신학대학교)는 ‘Slavoj Zizek의 유물론적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 중심성 고찰’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조 박사는 논문 발제의 목적은 슬라보예 지젝의 사유를 전체적으로 구조화하고, 그의 사유 안에서 유물론적 신학의 역할을 고찰하는 것이고, 이러한 고찰의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그의 유물론적 사유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핵심적인 중요성을 담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일견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상황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 논리적 구조를 밝히는 데 있다고 했다.
이어서 조 박사는 “기독교 신학이 유물론적 무신론자인 지젝의 사유를 고찰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기독교 밖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주장한다는데 있다”라고 하면서 “지젝이 ‘기독교의 전복적 핵심은 오로지 유물론적 접근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으며, 역으로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경험을 거쳐야 한다’는 것에 단언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젝의 방대한 사유를 너무 과도하게 요약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그의 사유의 개요를 그려보았다며, 지젝의 사유의 출발점과 방향성과 목표 지점을 라깡 정신분석학이라는 개념 장치를 통해 그려보면서 그의 사유와 실천이 주체를 거세하고 억압하는 대타자를 거슬러 새로운 주체적 가능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고 했다.
또한 “독자들이 지젝의 책을 읽을 때는 거의 언제나 그의 설명들이 가야 할 곳을 일직선으로 향하지 않고 마치 어떤 지점의 주위를 에두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는 어떤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법이 거의 없고, 마치 어떤 공백(Void)의 주위를 반복적으로 돌면서 그 둘레를 표지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그러한 지젝의 서술은 명료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영화나 오페라와 같은 대중문화에 대한 서술들과 다양한 유머들이 없었다면 아마 일반 독자들이 지젝에게 이렇게 환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설명 A와 설명 B 중 무엇이 옳으냐가 아니라, 두 관점 사이의 균열과 틈새를 통해 지젝이 드러내고자 하는 실재의 일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실재의 공백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죽음 충동적 반복 강박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지젝의 독자들이 유념해야 할 사실은 여기에 나오는 지젝에 대한 규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보다는 지젝의 글을 반복적으로 읽어내려가면서 그때마다 튀어나오는 어떤 잉여의 과잉이나 결여의 공백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라면서 “바로 거기서 우리는 지젝이 탐닉하고 있는 그 충동에 동참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지젝을 바르게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지젝을 이해하기 위한 파편일 뿐임을 고백한다”라고 했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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