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7-12-20 21:3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역사비평학(성서고등비평학) 비판


본 연재는 <한국크리스천신문> 특별기획 심층 좌담회를 지면으로 옮긴 것으로,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역사비평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여 성경신학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교계에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는 2017년 11월 21일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과 성경신학 학술원 연구생 다수와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참여하였다.

객원기자 
올 한 해 동안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대담을 통해 개혁파 교회의 과제였던 성경권위 회복의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 주신 것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시작하는 심층좌담회는 ‘한국크리스천신문’특별기획으로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역사비평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여 성경신학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교계에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지난 한 해 동안 『교회개혁론』(진리의말씀사, 2016) 발간을 통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해에 맞추어 개혁파 교회의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신학계와 교계의 많은 선후배 동역자들의 공감과 격려와 함께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이 교회개혁의 대안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성경권위를 확인한 성경신학이 교회개혁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단지 구호로 끝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 개신교 내에 전체적으로 성경권위는 추락해 있습니다. 이 특별심층좌담회에 임하는 저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개혁을 제도적으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성경권위를 성도 스스로 확립하지 못한다면 진리의 전당인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누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비평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권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 역사비평학의 전제부터 주장까지 확실하게 비판해야 하며, 그 후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으로 성경권위를 어떻게 확정하고 있는지 올바른 성경해석으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P 연구생
 사실 현대신학은 역사비평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교수들과 목회자들도 성경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성경계시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재의 개신교 신학과 교회의 참담한 상황에서 역사비평학에 대한 비판 특별기획으로 좌담회를 갖게 된 것은 시기로 보면 늦었지만 2014년 성경신학총서 발간을 기준으로 보면 시의적절(時宜適切)하다고 보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역사비평학은 누구보다 성도들이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번 특별기획을 통해 한국 교회 성도의 의식개혁을 고취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겨울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여든 살을 눈앞에 두고도 근래에 독감으로 큰 고생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비유이긴 하지만 역사비평학에 대한 비판은 성도들에게 ‘독감 예방주사’와 같다고 봅니다. 역사비평학 혹은 성서고등비평학은 세계 유수의 신학대학들을 이미 망쳐놓았습니다.
『교회개혁론』을 쓰고 올해를 지나는 동안 ‘진리 투쟁’이라는 말을 자꾸 떠올렸습니다. 개혁론의 결실은 결국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거짓과 이단들을 척결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길 소원했습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성경신학(The Bible Theology)은 ‘기독교지도자협의회’의 각 지교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서 확정되고, 그 성경진리와 성경권위 위에서 체제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역사비평학이라는 거짓진리의 실체를 향해 싸우는 과정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성경적인 종교개혁의 구체적인 마무리는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역사비평학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 그 결실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J 연구생
  성경신학총서 완결 이후 성경신학은 그야말로 세계 신학계를 향한 투쟁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덮어놓고 읽는다고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방법, 해석하는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987년 처음으로 성경신학총서를 발간했을 때부터 문서설 혹은 역사비평학에 대한 투쟁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네, 저는 70~80년대를 지나면서 신학교를 십여 년 이상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제 신앙의 바탕은 사회운동 중심으로 향하는 기독교 장로교였습니다. 그리고 신비주의로 몰입했으며 그다음은 복음주의 계열의 경건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로교 합동 측 총신대학 신학연구원과 개혁 측 총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그 지난 과정이 모두 성경신학총서를 완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당동 총신의 마지막 학기를 끝내면서, 저는 확신과 각오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신학도 성경에 토대를 두지 않으면 인간적 상념에 불과하다’그리고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리로 반드시 확증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목회하면서 1987년부터 2014년까지 27년 동안,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연구를 통해 성경만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한 무한한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개혁파 교회를 무너뜨린 자유주의 신학이나 역사비평학을 향해 포문을 열고,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하면서 성경권위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건전하게 지키는 것뿐입니다.   

S 연구생 
네. 지난 20여 년 이상 장안중앙교회에서 원로의 강의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바로 문서설 혹은 역사비평학을 비판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됩니다. 그냥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했던 과정이 역사비평학의 허구를 드러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계와 신학계에 확고하게 세우는 준비과정이었다는 사실에서 사명감까지 느껴집니다. 우리의 투쟁 대상이 이제는 구체화되었습니다. 단순히 부패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교회들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나 좌경신학의 선두주자인 역사비평학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운동이 무너지는 세계 개신교와 한국 교회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하나 더 강조하자면 저는 우리의 투쟁이 두 곳에서 동시에 일어나길 바랍니다. 하나는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성경신학을 통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모들이 반드시 가르쳐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힘들이 모여 진리의 토대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진리투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P 연구생
 사실 한국의 개혁파 교회는 전통적으로 축자영감설과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면서 성경권위를 강조해 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부터 좌경화된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유학생들이 한국의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개혁파 교회의 구호로만 외치던 성경무오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무조건 성경을 암기하다시피 한다고 해도 역사비평학자들의 주장을 접하게 되면 속수무책이 되고 맙니다. 또한, 일점일획도 폐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문자주의에 노예가 될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경신학학술원 원로께서 1987년에 발간한 『의미분석을 중심으로 한 성경개론』(이후 2005년 3차 개정판에서는 『의미분석 성경개론』)은 역사비평학과 문자주의를 넘어서는 데 있어서 매우 탁월한 성경해석의 방향을 제시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현재 성경은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신 원문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사본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본 상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역사비평학은 사본학 비판을 통해 성경권위를 문제 삼으면서 성경본문 비평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문자주의에 얽매여 있던 독자들은 성경 내용의 차이와 나아가 모순이 발생하는 내용 앞에서 한순간에 성경권위를 부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현재 한국의 신학교와 목사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리 보존과 목회 성공을 위해 다 아는 사실을 숨기면서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다’고 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현재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는 자들이 무수합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므로 내가 읽고 내가 실천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주관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의미분석’은 성경에 접근하는 근본 자세부터 다릅니다. 사본이나 번역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권위 있는 사본은 모두 동일한 사건을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록된 내용과 사건의 ‘통일된 의미’에 대해 우선 물어야 합니다. 곧 ‘왜’ 창조 사건이 나오고, ‘왜’인류 시조에게 복주는 사건이 나오고, ‘왜’ 선악과 금식령을 주고, 나아가 ‘왜’그렇게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러한 사건들이 나오며 그 통일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물어야만 한다고 봅니다. 

객원기자
 사실 지금까지 제가 확인한 바로는 원로께서 말씀하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 대해 ‘왜’라는 질문으로 접근한 ‘의미분석’중심의 성경해석학자는 없었다고 봅니다. 성경해석의 원칙은 그 내용과 사건에 담긴 ‘의미’, 더 정확히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춘 계시구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이 일차적이라고 봅니다. 결국 역사비평학이 저렇게 난동을 부리는 것도 성경에 나타난 통일성 있는 진리 체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 중심의 철학적 방법으로 성경연구에 몰두하다 성경권위에 걸려 넘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학문 방법으로 접근하면 성경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 지금 세계 개신교 신학계에 내려진 하나님의 경고라도 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사실 모든 성도는 성경대로 살고자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그 모든 내용을 내가 알 수 있고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이며, 성경을 자기 인격도야의 수단으로 삼는 정말이지 이방종교의 지식으로 던져버리는 위험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살아 보려고 하면 분명 살아지질 않습니다. 더욱 잘 믿어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지치고 더 힘들고 결국 지옥으로 갈까 두렵고, 대안 없는 상황에서 사악한 이단이나 거짓 목사에게 먹잇감이 되어 인생 전체를 망치게 됩니다. 정말로 한국 교회 성도들이 성경신학을 통해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당당한 백성으로 양육 받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K 연구생 
사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는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무수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잔인하게 비춰지는 내용이 참으로 많습니다. 맹목적으로 문자주의에 빠져 살던 성도들은 역사비평학을 접하면서 막연하게 알았던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 의심과 불신에 사로잡힙니다. 역사비평학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하나님 중심으로 이해하지 않고 절대자 하나님을 도덕적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상대적 이성을 통해  하나님을 평가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잔인하다’는 평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성경은 결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역사비평학에 물든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천국이나 영원한 생명의 차원에 눈이 먼 자들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평안해야 하고, 이 세상에 성경을 맞추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서 행하시는 섭리,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일’이 발생하거나 악한 자들을 통해 ‘하게 하시는 섭리’의 ‘궁극적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은 이 세상에 유익을 주는 책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극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짧은 명제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 감동으로 기록하고 보존하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하나님 존재와 속성 중심으로, 여호와의 계시 섭리로 해석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의미중심’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악의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제가 정리한 『율법과 죄 그리고 은혜』를 참조하셔도 좋으리라 봅니다. 

객원기자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로를 통해 정립하도록 하신 '성경신학(The Bible Theolody)'을 통해서 왜 이 시대에 역사비평학과 투쟁을 하게 하시는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성경을 본다는 것으로는 하나님 존재와 여호와 계시 중심의 올바른 신앙의 토대를 놓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봅니다. 저는 원로께서 평소에 ‘학교 같은 교회’를 주장하신 이유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이 좌담회를 하면서 신학교 교육의 대안이 성경신학에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기독교지도자협의회’가 차세대 성경과 신학 교육을 어떻게 해야 역사비평학에 제대로 맞설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지를 큰 방향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좌담회와 함께 차세대에게 바른 성경 교육을 어떻게 할지 더 깊이 생각하고 대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제가 70년대 총신을 다닐 때 박형룡 박사님의 보수주의 신학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이 다가올 무렵에 총신에는 이미 문서설 교수가 들어왔습니다. 박형룡 박사와 한경진 목사 또는 김재준 목사의 시대를 거치면서, 성경관은 개혁파 보수 신학을 통째로 흔들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신학교가 분열하고 교회들이 분리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역사비평학이 마치 진리추구의 방법론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무렵에 박윤선 박사의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이 개혁파의 성경관을 보수하는 역할을 했지만 역사비평학에 철저하게 대응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유리의 한신, 광나루의 장신, 사당동의 총신은 역사비평학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상징적 증거들이라고 봅니다. 더욱이 성경권위 보수는 뒷전이고 어마어마한 재산에 한국 교회는 더욱 성경진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진리 사수에 함께 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성경을 공부시킬 때 무조건 강요하지 않길 바랍니다. 자녀들의 눈높이에서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을 흥미 있게 전달하고 질문을 소중하게 받아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데 다른 어떤 책과 비교할 수 없는 안내서임을 일찍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역사비평학에 대한 비판을 진행하면서 가정교회 혹은 자녀에 대한 성경 교육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토론하면서 각자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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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황제와 빌라도 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