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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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작성일 : 18-02-27 21:49  글자크기 크게글자크기 작게 기사 출력하기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역사비평학(성서고등비평학) 비판
본 연재는 <한국크리스천신문> 특별기획 심층 좌담회를 지면으로 옮긴 것으로,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역사비평학을 구체적으로 비판하여 성경신학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교계에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는 박용기 원로연구원(성경신학학술원,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 저자)과 박홍기 박사(성경신학학술원 연구원), 성경신학 학술원 연구생 다수와 배윤리(한국크리스천신문 객원기자) 권사가 참여하였다.


1. ‘역사적 예수 연구’의 의도는 무엇인가?

객원기자  현재 역사비평학이 성경에 대하여 취하는 입장을 다른 말로 하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에는 대전제가 숨어 있어요.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전통 개혁파 교회가 성경권위에 의존해서 고백했던 예수의 신성(神聖)을 애초부터 부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은 그 시대의 교회들이 그때마다 필요에 따라 종교회의를 통해 선포한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초대 교회 역사에서 수립했던 사도신경(使徒信經)이나 니케아신경(信經)이 종교회의를 거듭하면서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처럼,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기록내용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가공한 종교적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나사렛 예수 연구’라고 하여 마치 실존적 인물로서 신성이 본성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전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역사적으로 나사렛 출신의 한 유다 청년 예수가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남다른 행동은 그 이후에 그의 제자들이 조작하고 부풀려서 예수를 신성화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감동받아 기록된 절대 진리의 말씀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홍기 연구원  기자님이 정리하신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성경신학(Park's The Bible Theology)이 맞서 싸워야 하는 영적 투쟁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지적했다고 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성경권위에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뿌리부터 없애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논리적이지 않은 일반 문서보다 못한 문서 조각에 불과하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의도와 동일합니다. 말로는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예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예수가 인간일 뿐이며 십자가 죽음 이후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주검을 훔쳐서 마치 부활한 것처럼 조작했으며, 그리고 부활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결과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허위 사실은 성경기록을 전면 부정해야만 가능합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절대 진리로 확증하거나 확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 예수 연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더욱 참담한 사실은 한국 개혁파 신학의 전통을 따르는 각 교단의 총회신학교 교수들과 그들로부터 배운 많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의식’을 강조하지만 이미 성경의 절대권위를 버린 지 오래입니다. 한국 교회는 성경진리 사수(死守)라는 교회의 절대적 사명에는 관심이 없고, 성경과 교회와 성도들을 적절하게 이용해 세속적인 이익(자리 보존, 세습, 퇴임 후 미래 보장, 더 낳은 대우 등)을 챙기며  얼마 전 거행했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고 봅니다.

P 연구생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나 그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에 저도 동의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역사적 예수 연구는 성경권위를 훼손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세전부터 존재하는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역사적 진실과 객관적 진리를 찾겠다고 하지만 가장 객관적인 성경진리의 절대성을 확보하지 않고 어떻게 객관적 진리를 찾을 수 있겠어요. 한국 교회에서 성경권위를 부정하면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하고 사악한 짓들을 보면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악의적 행동과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느낌도 들어요. 정황만 가지고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역사적 예수 연구가 한국 교회를 점점 성경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아닌가 하는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점점 커지네요.

2. ‘역사적 예수 연구’의 치명적 오류는 무엇인가?

J 연구생  성경권위를 훼손하는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의 악의적 의도에 몹시 흥분됩니다. 우리 성경신학 연구생들은 성경신학(Park's The Bible Theology) 즉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 20권을 통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내용과 수천 가지의 사건들이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시 증거로, 구약 전체가 메시야(그리스도) 언약이므로 신약 전체는 메시야(그리스도) 성취임을 확인했고 재차 확인하고 있습니다. 좀 전에 우리가 이렇게 좌담회를 갖는 모임의 성격이 영적 투쟁이라고 했는데,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엄격히 말하면 연구가 아니라고 봅니다. 연구란 진리를 전제로 하며 그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확인하고 그 연구결과를 보는 사람들이 유익할 때 정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 관한 지식이 연구가 되려면 신약의 복음서에 나타난 모든 기록을 진리로써 확증할 수 있을 때 저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특정한 누군가를 매도하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닙니다. 앞서 역사적 예수 연구가 성경의 통일성과 객관성을 애초부터 부정하고 시작한다는 말에 대해 연구의 기본 상식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앞서 말씀하신 여러분들의 논의에 깊이 공감합니다. 성경신학(Park's The Bible Theology)을 말하면 제 자랑이 될 것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을 삼갈 때가 많아요. 그런데 제 자랑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염려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온당한 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성경신학이 맞서야 하는 영적 투쟁이며 진리 싸움이 맞아요. 제가 30년 전에 사당동 총회신학대학교 연구원을 졸업할 때, 벌써 그 신학교 안에 역사적 예수 연구는 문서설 주장으로 이미 들어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뭔가 결론을 내려야 했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그러한 마음의 결심을 하도록 섭리하셨다고 봐요. 만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기록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각오로 적어도 지난 2014년까지 40여 년을 같은 각오로 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성경신학총서(The Bible Theology Series)가 2014년에 완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함께 자유주의 신학과 문서설 그리고 역사비평학과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언론매체와 비교될 수 없는 작은 신문사 좌담회라고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속임수입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실존 인물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아가 복음서를 절대 진리인 성경말씀으로 믿는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예수님을 도덕 선생으로, 성경은 무수한 오류가 있는 인간 문서로 봅니다. 앞으로 더욱 정교하게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성경을 통해 비판해갈 수 있다고 봅니다.

J 연구생  그러니까 역사적 예수 연구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이유는 진리의 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네요. 오히려 복음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증하지 못한 결과이며 또한 복음서가 나사렛 출신인 예수가 유대 땅에 와서 여러 가지 행한 행적들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작해서 예수를 숭배나 예배 대상으로 만들어 놓은 인간 문서라는 말이 되겠군요. 성경신학을 통해 제가 확인한바 사복음서는 다양한 기록으로 각각 다른 주제로 예수가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가 독일의 18~19세기 자유주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은 유럽에서 확증하지 못한 결과로 인해 복음서는 문서로 전락해 버렸으며, 이러한 흐름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며 현재는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옷을 입고 진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성도들을 점점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진리를 모르는 성도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이러한 점을 악용해서 성경을 통해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이 밉기도 하네요. 그러나 진리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리라 확신합니다.

박홍기 연구원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해 조금 더 첨가해 볼까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일단 실존 인물로 보고 당시의 역사적 현장과 다양한 생활환경에 주목해서 성경도 평가하고 예수님도 평가합니다. 그리고 사복음서 뿐 아니라 자기들의 기준대로 정체불명의 당시 많은 자료들을 임의로 수집하여 사복음서의 권위를 마치 가위로 자르듯 훼손합니다. 이러한 흔적을 우리는 요즘 서점에서 판매하는 성경을 보면 그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직접 화법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분만 색깔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의도가 담겨 있지요. 그다음 단계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도 다른 부분에 같이 등장하지 않거나 조금 다르게 기록된 부분은 권위가 없는 자료로 치부합니다. 이른바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는 말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내용을 발췌하여 임의로 배열하는 방법으로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의 저자되심을 부정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사렛 예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다.

3. ‘역사적 예수 연구’의 우매함을 극복하는 ‘성경신학’의 성경관 !

G 연구생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성경 권위를 무시하기 때문에 성경을 꼼꼼하게 보기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성경이 아닌 다른 자료는 믿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것은 믿지 않으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깨닫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복음서 특히 누가복음의 진정성에 대해서 누가복음 1장 2절에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와 로마까지 함께 했던 누가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하고 그가 전해준 진리를 기록하려는 자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작이나 허구가 아닌 사실이란 것입니다. 또한 부활에 대해서도 나사렛 예수의 죽음 이후 시간이 꽤 지나서 만들어진 허구라고 합니다. 부활에 대해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서 사도들과 오백여 형제들이 목격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이런 기록도 모두 조작된 결과물로 봅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누락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나서 확인할 수 없다고 함부로 성경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부정하는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위의 본문에 보면 ‘전하여 준 그대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복음서 기자들이 임의대로 조작해서 썼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계 22:18~19의 약속처럼) 결코 그대로 두지 않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즉 복음서를 기록한 사도들은 자신의 상상이나 주관적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기록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라면 기록된 성경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이겠지요. 알게 하시는 것도 모르게 하시는 것도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역사적 예수 연구로 극성을 부리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라고 믿어집니다.

 성경신학학술원 원로  ‘역사적인 예수 연구’에 대한 여러분들의 지적을 보면서 우리가 진리투쟁시대에 있음이 실감납니다. 몰라서건 의도적이건, 성경권위를 부정하려는 자들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이라는 말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면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 보통 이스라엘 ‘역사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복음서를 예수님에 대한 ‘역사서’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에 대해 초대교회 ‘역사’라고 합니다. 역사서라고 해서 역사 자체의 기록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초점을 맞추면 성경해석에서 빗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중에 어느 것이 ‘역사적으로 진실이냐’로 접근하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험을 수십 년 동안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요. 가령 열왕기와 역대기에 기록된 내용은 그 역사적 사실이 반복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몰랐을까요? 의도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했어요. 왜 같은 내용을 반복했을까? 그러한 고민 결과(성경신학총서에 보면 알 수 있듯이)로 열왕기는 ‘이탈왕조의 멸망’, 그리고 역대기는 ‘다윗 왕조의 계승’이라는 ‘의미 중심’의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존재 증명을 위한 계시말씀임으로 무엇보다 ‘역사’라는 말에서도 인간이 주체가 되고 인간이 성경의 저자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 비평학자들 (가령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트 어만 같은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신빙성을 부정합니다. 누군가에 의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쓰여졌고, 이것을 제일 오래 살았던 요한이 참조해서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종합적으로 조작해 낸 것이 요한복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매우 취약하며 역사적 정황도 상식 수준에서 상상한 것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신학총서 20권(박용기 저, 진리의말씀사)에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을 ‘본성에 의한 성취’라는 의미로 주제를 정할 때 하나님의 기록 목적을 많이 고민했어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요한복음이 ‘나사렛 예수의 본성이 신성이다’는 주제는 좀 부족합니다. ‘본성에 의한 성취’라는 주제는 나사렛 예수의 본성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본성’이라는 말입니다.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함께 더 고민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순서상으로 요한복음이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 다음에 나오는 것은 성경이 인간 문서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의도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반복해서 강조하고 싶네요. 마태복음(예수의 직임), 마가복음(예수의 신분), 누가복음(예수의 사역) 그리고 요한복음(예수의 본성)은 정확·무오한 절대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신뢰성’은 시간적 배열이나 역사적 배경 설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썼다고 정확하고 나중에 썼다고 부정확하다는 것은 세상의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먼저 쓴 것이기 때문에 의도된 왜곡이 훨씬 더 많은 예는 우리나라 근대와 현대 역사에도 매우 많습니다. 역사적 순서가 아예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서설이나 역사비평학 혹은 역사적 예수 연구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신학을 통해 성경권위를 훼손하려는 세력들과 맞서기 위한 영적 투쟁의 전략을 분명하게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진리의 신뢰성은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3)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저자는 다양한 기록자들을 은혜와 주권으로 불러서 다양한 방법으로 절대진리를 기록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가복음 1장 2~3절과 베드로후서 3장 15~16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성경을 기록한 사도들도 서로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공유했기 때문에 진리가 더 진리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성령의 교통하심이 성경진리를 이해하는 데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60년 동안 고민하게 하시고 연구하게 하셔서 2014년까지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이 진리로 교통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진리투쟁의 현장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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