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8-03-19 19:4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니체가 느낀 욕망: 서양 기독교가 날조하려는 본능!


“5) 질문되었던 것 : 어떤 행위들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장 강하게 긍정하는가? 그런 행위(성욕, 소유욕, 지배욕, 잔인함 등)의 둘레에 파문, 증오, 경멸이 쌓였다 ; 자기위주적인 모든 충동은 비난받았으며, 자기위주적이지 않은 충동이 요구되었다. 6) 이 일들의 결과 : 무엇이 행해졌던가? 가장 강력하고 자연스러운 충동, 더 나아가 유일하게 실재적인 충동이 파문당했다-한 행위가 칭찬할 만하다고 계속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에 이러한 충동이 있다는 것이 부정되어야만 했다. 심리적 사항에서의 끔찍한 허위.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KGW VIII 2, ‘원칙들과 미리 말하는 숙고들 외’, 10(57), 백승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05, 180~181쪽. 강조는 저자에 의함.)

앞의 인용은 인간이 조작한 최악의 허구가 ‘도덕’ (특히 서양 기독교의 도덕)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니체의 말이다. 니체는 선과 악의 가치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이 조작한 결과라고 본다. 조작된 선과 악의 결과를 도덕이라고 보는 니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른바 갖가지 욕망을 스스로 강하게 억압할 때라고 한다. 자신에 대해 혹은 타인에 대해 성적 욕구와 소유욕 혹은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 내지 독기(毒氣)를 품고 잔인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을 증오하고 경멸함으로 인간은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자 하는 생존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인간 내면에 본래 선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성적 충동을 발산하지 않거나 타인의 소유물을 함부로 빼앗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과 충동을 강하게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선한 ‘자아(自我)’가 있는 것처럼 자신에게 최면을 걸게 된다는 것이 니체가 지적하는 바다.

인간 본능 그야말로 욕망, 의지, 충동, 열정, 탐욕, 이기심 등이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근본 요소들이다. 이것이 없다면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니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이러한 온갖 충동과 욕망과 열망의 의지를 인위적으로 ‘선’과 ‘악’으로 나누어 놓는 일을 서양 기독교가 만행에 가깝도록 조작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 대표적인 인물을 신약성경 절반을 쓴 바울 사도라고 한다. 니체에 의하면 예수님은 유대교의 선과 악을 파괴하여 자유로운 새로운 종교를 만들고자 했으나, 바울 사도가 법을 만들고 제도화를 획책하여 기독교 윤리를 선과 악으로 조작했다고 본다. 니체가 보기에 인간 생존의 가장 근본적인 자연적 충동과 욕망을 선과 악의 대립구조로 날조한 인물이 바로 바울 사도다. 앞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니체는 바울 사도 이후 역사 속에서 고통 받았던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고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 철학자들이 함께 유대인에 동조하면서 기독교적 선과 악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온 유럽에 역병(疫病)처럼 유포시켰다고 한다. 니체를 이를 서양역사에서 일어난 ‘심리적 사항에서의 끔찍한 허위’로 규정한다.

이렇게 조작된 선과 악의 구도에서는 자기중심적 모든 충동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이기심을 버리려는 의지와 욕구는 칭찬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 인간 삶의 근본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자연스러운 충동은 억압과 억제, 통제와 파문의 칼날을 항상 받아야 한다. 조작한 ‘선(善)한 행위’가 지속적으로 칭찬할 만 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잔인하게 짓눌려야 하는 대상을 항상 조작하고 날조해야 한다.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서양 기독교가 날조한 선과 악의 도덕이며 서양 문화를 병들게 한 악성 종양이다.

1900년에 죽은 니체가 현대 문화를 점점 더 지배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현대 철학자들과 종교철학자들이 니체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에서 본 니체 글의 일부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답을 짐작할 수 있다. 니체가 예고한 대로 한 세기가 흘러가야 자신의 글을 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너무 일찍 왔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다양한 개성과 무수한 이질적 문화들이 점점 그 지배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지구촌에는 분명 니체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 본능의 지배, 욕망과 충동, 열정과 탐욕의 예측 불가능한 무한한 욕망은 잠들어 있던 상태에서 마지막 기지개를 켜고 더욱 분출할 것이 틀림없는 현실이다. 자기 억제, 이기심 절제, 이타적 희생이 날조되어 온 것이라는 니체의 고발은 어쩌면 이제까지는 진군의 대열을 정비한 정도에 그쳤을 수도 있다. 이제부터 현대인의 전 문화에 걸쳐 겉잡을 수 없는 본능의 자기혁명적인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래야 니체가 선언한 ‘신의 죽음’이 현실화하는 종말의 문화가 보편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니체가 그토록 증오한 바울 사도의 고백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4~31).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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