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9-06-19 19: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존 칼빈에게 전해진 지혜(소피아)와 명철 <1>


존 칼빈에게 전해진 지혜(소피아)와 명철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위의 본문에는 기독교를 소개하는 핵심 개념들이 꽉 차 있다. 여호와 경외와 지혜, 거룩하신 자의 지식과 명철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명제의 나열보다 훨씬 중요한 면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인간 지식의 관계 문제다. 상대적 관계가 아니라 절대적 관계이며,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이고, 평등 관계가 아니라 주종(主從) 관계이다. 다시 말해 피조물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는 여호와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 경외를 하는 주체가 표면적으로 보면 피조물처럼 보이지만, 근본은 여호와께서 피조물에게 지혜를 주셔야 여호와 경외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거룩하신 자 즉 이 세상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창조주를 알 수 있는 것을 명철(明哲)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도 거룩하신 자 여호와께서 자신을 거룩한 자로 알게 해 주셔야 피조물에게 명철이 싹튼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위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근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거나 그를 아는 것의 ‘근본’이 피조물에게 있지 않고 전적으로 여호와에게 있으며 우리가 그를 경외하며 그를 아는 것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어쩌면 기독교인에게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한 셈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분명하게 꽃 피었던 지역과 그곳의 한 사람을 정확하게 소개하기 위해 앞의 본문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500여 년 전 1517년 서유럽에서 성경적 소피아(지혜)의 전 세계적 확산을 시작하셨다. 독일 중북부에서 시작했던 이 지혜의 대이동은 이제 프랑스 남부를 지나 스위스에 잠시 뿌리를 내리게 하신다.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의 운동력(히 4:12)으로 제네바에서 칼빈(John Calvin, 1509-1564)과 그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성경적 지혜가 뿌리도 내리고 가지도 뻗어나가게 하셨다. 이 지면을 통해서는 칼빈 관련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을 건너 태평양을 횡단하여 동방으로 성경적 지혜가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잠시 살피고, 그 핵심이 무엇인지 강조하려고 한다.

먼저 칼빈에게 전달된 매우 중요한 성경적 지혜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관련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인용을 우선 보도록 하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거의 모든 지혜, 즉 참되고 거룩되고 건전한 지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 칼빈에 의하면 두 가지 지혜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비롯하는 지혜가 있고,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에서 비롯하는 지혜가 있다. 우리는 앞서 잠언 9장 10절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의 관계를 지적한 바 있다. 칼빈의 신학 사상을 취급할 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앞의 칼빈의 인용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 지식은 수평적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칼빈은 두 가지 지식의 우선순위를 성경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고려하면서 중세의 인간 중심적인 스콜라 신학을 넘어서고자 했던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칼빈에게 뿌리 내린 두 가지 지식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명확하게 성경을 통해서 확고하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칼빈 이후의 서구 종교개혁 방향도 달라진다. 그만큼 신지식과 인간 지식의 관계는 유럽 개혁파 교회를 평가함에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한국에 입성한 개혁파 신학을 평가할 때도 두 지식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학의 방향은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앞으로 이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적 지혜의 대이동을 살펴보고자 하다. 먼저 칼빈의 경우를 좀 더 살핀 후 그의 계승자들의 주장도 살펴볼 것이다.


<178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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