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19-10-29 19:43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공자의 인물관 (2)


子貢問曰賜也何如 子曰女器也 曰何器也 曰瑚璉也
자공문왈사야하여 자왈여기야 왈하기야 왈호연야.

或曰 雍也仁而不侫 子曰焉用侫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侫
혹왈 옹야인이불녕 자왈언용녕 어인이구급 루중어인 부지기인 언용녕.
논어 5장 공야장의 계속이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어보았다. “저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너는 그릇이다.” “어떤 종류의 그릇입니까?” “호.연(과 같은 인물)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옹은 어질기는 하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다른 사람을 말 잘하는 것으로 막아서 남들에게 자주 미움을 받을 뿐이다. 옹이 어진지는 알지 못하겠다만 말재주를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자공은 공자의 제자다. 그가 스스로 공자에게 자기가 어떤 유의 사람인지를 물었다. 공자는 ‘그릇’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릇은 쓰임이 있는 완성된 재질(제품)이다. 호(瑚)와 연(璉)은 종묘에서 기장(黍)과 서직(稷)을 담아 놓는 옥으로 된 귀하고 화려한 그릇이다.

자공이 이 질문을 하기 바로 전에 공자가 자천에 대하여 진정한 군자라고 평한 바가 있었다. 아마도 자공이 자천과 함께 있었는데 공자가 자천에 대해서 좋게 평하는 것을 듣고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릇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만들어진 용도에 맞게 사용되는 한정(계)을 갖는다. 군자라면 이렇게 한 부분의 용도에만 쓰이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어느 곳, 어느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군자답게 열려 있어야 한다. 공자는 자공이 보물을 담아둘 수 있는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영역을 넘어서서 널리 통용되는 군자의 경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옹(雍) 역시 공자의 제자다. 성은 염(冉)이고 자는 중궁(仲弓)이다. 녕(佞)은 말재주(口才)다. 옹은 덕으로는 뛰어났지만 언변 내지 자신을 표현하는 언사는 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옹의 덕은 칭찬하면서도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을 흠으로 여긴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옹이 어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 잘하는 재주는 별로 쓸모가 없다는 점을 교훈하고 있다. 아마도 공자가 인(仁)하다고 한 제자는 안연한 사람이었다. 공자는 옹이 인(仁)에 있어서 안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대체로 사람이 말을 잘하거나 말하기를 좋아하다 보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주 발언하게 되고, 이러다 보면 다른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도 중간에 끼어들기 십상이다. 어(御)는 남의 말을 막고 응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말에 끼어들기가 자주 반복되면 실수도 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을 상하게도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말로만 할 뿐 실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래서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덕을 지니고 있기를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제자 옹이 정말 어진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공자에게 말만 잘하는 것은 그 사람의 덕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공자는 옹이 훌륭한 덕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말로만 떠벌리지 않는 실천적인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을 통해 보면, 공자는 비록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지만 훌륭한 점은 칭찬하고 좀 모자라는 점은 모자란 대로 그대로 평하고 있다. 그는 자공에 대해서는 사람됨이 당시 가장 중요한 사회규례였던 제례에 쓰이는 곡식을 담아두는 호와 연과 같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아직 활연관통 수준의 깨우침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자 옹에 대해서는 인(仁)의 극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출중한 덕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공자는 무엇보다도 말재주만 가진 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말재주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자의 제자에 대한 생각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참고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부족하더라도 상을 주시고 칭찬해 주실 것으로 일방적으로 기대한다. 이런 오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인간의 죄를 속량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속사역에 대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하시는 영역이 이 부분이다. 그리스도를 믿고 헌신하느냐에 의해 하나님의 평가가 달라진다. 

하나님은 결코 도매금으로 우리의 마음이나 행실을 두루뭉술하게 평가하지 않으신다. 누구라도 죄지은 것이 있으면 죄라 하시고 허물이 있으면 허물을 그대로 평가하신다. 그 평가대로 반드시 보상과 징계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평가는 오직 그 또는 그녀가 그리스도를 믿느냐의 여부와 관련될 뿐이다. 그 결과에 따라 형제로 대하느냐 이방인으로 대하느냐로 다르게 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사랑해 주실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은 정말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것을 평가하신다. 십일조를 바치거나, 주일학교 교사를 하거나, 집사나 장로거나, 혹은 목사거나 등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로부터 선한 자로 평가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그리스도를 믿고 죽도록 헌신하는 일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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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종교개혁 이후 세속 정치에 대한 이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