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0-03-01 08:5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행동이 말을 앞서야 한다


子曰 始吾 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자왈 시오 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 改是.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어여여 개시.
『논어』 「공야장」의 계속이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을 듣고서 그의 행동(그가 말대로 행할)을 믿었었다. 오늘부터(재여가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평가할 때) 그의 말을 들어도, 그 사람의 행동을 볼 것이다. (내가) 재여에게서부터 이렇게(이것을) 바꾸었다.”

공자는 재여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제자들이 먼저 말을 하면 그대로 행할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재여의 낮잠이 공자의 생각을 바꾸게 하였다. 아마도 재여는 공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말을 잘한 것으로 보인다. 재여가 낮잠을 잔 것은 그가 평소에 하던 소신 있는 말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게 되었고, 이에 공자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예부터 군자의 공부는 죽어야만 끝이 나는 일이다. 군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늘 자신이 하는 말대로 미치지 못할 수 있음을 두려워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군자가 피곤하고 힘이 든다고 해서 마음을 푹 놓아버리고 나태해지면 세상을 바르게 다스릴 자가 없어지게 된다. 공자는 낮잠을 자는 것을 군자로서 스스로 포기하는 자세로 읽었다. 나태는 자기포기다. 군자는 게으르고 심적으로 황량해지지 않을까를 늘 염려해야 한다. 온 힘을 쏟으며 깊이 생각하면서 하늘의 굳건함을 배워서 자신의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 태양이 말없이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땅이 말없이 온 만물을 거두고 기르는 역할을 군자는 본받아 그대로 실천하려 해야 한다.
사람이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은 말과 행동에서다. 사람의 됨됨이는 어떻게 말하고 그 말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의해서 닦여져 간다. 말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행동은 입에서 말이 되어 떠나자마자 그 말대로 실천해 내야 한다. 심사숙고해서 말하고 그렇게 말한 일을 즉시 실행으로 옮기는 공부를 반복하다 보면 의연하고 굳센 인간이 되어 가는 것이다.
말이 없는 행함은 그나마 있을 수 있지만 행함이 없는 말은 거짓이요 위선이다. 행함이 없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먼저 행동을 보이고 그 후에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 군자의 평소 생활이 이래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공자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하는 말이 그 말의 실천보다 앞서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믿음의 행동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믿는다고 말하기는 비교적 쉽다. 믿는다는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믿음의 실천행위를 다른 사람이 해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하는 말을 자신이 실천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를 책임질 뿐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자신이 믿음으로 한 말을 그 믿음으로 실천하느냐를 자신에 대하여 따져 묻고 책임져야 한다. 다른 이의 실천 여부는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들을 것을 권유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이것이 야고보 사도의 당부다. 듣는다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듣는 사람은 말을 먼저 할 수 없다.
들은 후에 말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곤란한 일들을 듣고서 교묘히 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말을 더디 하는 것은 성내기도 더디 하기 위해서다. 성내기의 본질은 어떤 일이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는데 자기에게 맞지 않으니까 취하는 행동이 성내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더디 하다 보면 성내기도 더디 하게 된다. 

늘 겸손과 온화함으로 들으면 말에 허물이 없고 성내기에도 허물이 없게 된다. 진심으로 듣고 진심으로 말하면 성내기가 설 자리가 없다. 참 그리스도인이여 평안과 꿈을 품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우리의 말하기를 더디 하고 성내기를 더디 하자.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일들을 게을리하지 말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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