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0-10-21 13:55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공자의 사람 보는 눈


子曰伯夷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자왈백이숙제 불념구악 원시용희.

子曰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鄰而與之
자왈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논어 공야장의 내용으로 그 해석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옛날의 악행을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원망하는 자가 적었다.”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를 곧은 사람이라 했는가. 누군가가 그에게 (식)초를 요구하니까 그의 이웃에게 구걸해서 갖다 주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 왕의 두 아들이다. 맹자에 따르면 이들은 악인의 왕조(상나라 주왕)에서 벼슬하지 않았고, 악인들과 협의하지 않으며, 마을 사람(일반인들)과 대화할 때도 그 사람이 갓을 제대로 쓰고 있지 않으면 황망히 떠나갈 정도로 청결하게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이 정도로 강직하면 오히려 그 강직함 때문에 자칫 다른 사람의 원성을 사기 쉽다. 강직한 사람은 남의 사정을 배려하는 부드러움이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이와 숙제는 악을 행하던 사람이 그 악을 고치면 곧바로 미워하는 일을 중지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강직한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들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적을 수 있었다.
미생고는 미생이 성이고 고가 이름이다. 그는 노나라 사람으로 평소에 곧은 사람으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가 보니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식)초를 달라고 하니까 이웃집에 가서 그것을 빌려다가 그에게 주는 것이었다. 미생고가 곧은 사람이라면 (식)초가 집에 없으면 없다고 하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부탁한 사람을 위해 자신에게 없는 데도 남의 귀한 것을 빌려 와서라도 그에게 생색을 내는 것은 곧은 일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이 공자가 미생고를 곧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의심한 이유다.
백이와 숙제는 강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거나 원망을 받지 않는 자세를 증험해 주었다. 미생고는 없는 것을 없다고 하지 않고 남에게 빌려서라도 자신의 체면을 내세우고 타인에게 아부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의 행위는 칭찬했지만 미생고의 행위는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공자가 사람을 보는 눈은 이처럼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을 파악한 것이었다.

두 사례가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백이와 숙제처럼 불의한 사람과 익숙하게 지내거나 불의한 일이나 사태 등에 굴종하고 떠나지 않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을 미워하다가도 그 사람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악행을 버리고 거기에서 떠난다면 또한 그 사람을 용납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악을 미워하되 악을 후회하고 고친다면 얼마든지 그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미생고의 경우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없는 것은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남의 것을 빌려서라도 자신을 화려하게 보이려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다른 이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나 소중한 것들을 나의 출세를 위해 빌어 와서 나의 것인 양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화려함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진정한 인간성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도를 보는 눈이나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보는 눈, 목회자가 목회자를 보는 눈, 성도가 성도를 보는 눈들이 정말로 상대의 내면에 있는 진정한 인간성을 이해할 수 있는 성능(?)을 지녔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대한의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진정으로 타인의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고 용납하고 관계하는 진실하고 살아 있는 영의 눈을 뜨자. 그런 눈을 소유하자.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리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16세기 서남아시아의 로마 가톨릭과 조선
플라톤의 영혼불멸설 1: 스승의 죽음을 제물로 삼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