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1-08-09 21: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중도에 그만두지도, 한계를 정하지도 말라


冉求曰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畫
염구왈비불열자지도 역부족야  자왈역부족자  중도이폐 금여획

『논어』 「옹야」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염구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제)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간쯤 길에서 그만두는 것이니, 지금 너는 한계를 긋고 있다.”

‘說’은 ‘설’, ‘열’, ‘세’ 등으로 읽힌다. ‘설’은 ‘설명하다’, ‘말하다’의 뜻이고, ‘열’, ‘기뻐하다’, ‘즐거워하다’의 뜻이며, ‘세’는 연설이나 유세 등의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에서는 ‘열’로 읽어야 한다.
염구는 스승인 공자의 도를 기뻐하였다. 공자의 인의 사상과 천의 사상 등을 존숭한 것이다. 하지만 염구가 스승의 이치를 깨달아 알고 그 경지로 나아가는 데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고 느낀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이 대화를 하기 전에 안회를 칭찬하였다. 안회가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에 들어서서 배우는 기쁨을 바꾸지 않았다고 칭찬한 것이다. 염구도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배움의 즐거움을 안회만큼은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만은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자질이 부족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또는 뛰어난 사람의 경지로까지 나아갈 수 없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열심히 한다면 그런 사람은 언젠가는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염구는 나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공자가 염구에게 “지금 너는 한계를 정하고 있다(今女劃)”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주지하다시피 염구는 후에 공자의 추천에 의해서 계씨 가의 가신으로 들어갔다. 그는 화술이 뛰어났고 군사에 상당한 식견을 지닌 장군이었다. 그는 비록 이로 인해 공자의 미움과 토벌을 받기까지 하였지만, 세금을 거두는 술수를 이용해서 계씨를 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염구는 그 자신이 말하는 대로 자질이 없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예(藝)에 뛰어난 사람이었다. 즉 그는 공자의 인과 예 등의 배움을 사랑한 대신에 처세적인 요소에 욕망이 있었고 이러한 분야로 자신을 계발해 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호씨(胡氏)는 만일 사람들이 고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염구가 선생의 도를 좋아하기만 했다면 필히 온 힘을 다해서 전진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고 평가하였다.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서 안 된다거나 할 수 없다고 하면 마침내는 퇴보하게 되고 스스로 그 한계에 갇히게 될 뿐이다. 염구가 안빈낙도의 학자의 길을 버리고 자신을 이속의 일들에 국한시켜서 계씨 가문의 가신으로 종사하고 말았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염구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역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권능을 축소시킬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의 증언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빌 4:13). 하나님의 도를 기뻐한다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은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모순이자 어리석음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하나님은 창세 이래로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면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무엇이든지 그의 이름으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얻고 찾는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니 힘이 부족하다 생각되면 하나님께 매달리면 된다. 앞이 보이지 않으면 성령님의 인도를 기대하면 된다. 나아갈 곳이 없고 의탁할 곳이 없을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우리에게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은 인정하자. 하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다. 무슨 일이든지 그분에게 맡기고 중도에 그만두지 말자. 고난의 길에서든 즐거움의 길에서든 희생이든 사랑이든 탄식이든 그것들의 한계를 정하지 말자. 우리의 인생길을 포기하지도 한계를 정하지도 말고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님과 함께 영원히 동행하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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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