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3-08 10:0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효과적인 가르침


子曰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자왈중인이상  가이어상야  중인이하 불가이어상야


“공자가 말했다. 중간 이상의 사람은 위의 것을 말해 주어도 가능하지만 중간 이하의 사람은 위의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어(語)’는 고(告)해주는 것, 곧 가르쳐서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상’은 고상한 수준의 내용이다. 이 두 낱말에 교육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자질이나 상황이 아직 고상한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가 아닌데 그것을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염려한 말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을 고려해 가면서 쉽게 말해주어 그것을 잘 받아들이게 할 때 건성건성 다음 단계(躐等, 엽등)로 나아가는 폐단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스스로 가르치는 수준 자체를 낮게 해서 이중적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스승의 가르침은 늘 가지런하고 목표가 모두에 대해 한결같아야 한다. 다만 가르치는 자의 목적을 따라 일방적으로 빨리 내달리면서 높은 수준의 것을 가르쳐주게 되면(驟而語之太高, 취이어지태고) 배우는 사람이 이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어 건성건성 등급을 뛰어넘어가게 된다. 이러한 가르침과 배움은 마침내는 양자 모두에게 해를 가져올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자질이나 준비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간절하게 묻게 하고 가까운 것으로부터 생각해보기 시작하여 서서히 고상한 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就其所及而語之, 是乃所以使之切問近思 而漸進於高遠也, 취기소급이어지, 시내소이사지절문근사 이점진어고원야).

문제라면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 기준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있다. 스승이 자신의 전공을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잣대로 학생을 차별해 버리면 교육에서 이것처럼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다. 학생의 자질을 고려하지 않고 스승이 자신의 잘난 맛으로 고상한 지식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자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스승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가르침의 정도를 잘 조절해서 제자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스승이 학생들의 자질을 잘 구별하는 데서부터 가르침이 시작된다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모든 가르침에 대한 책임이 일차적으로 스승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려 하였다.

모든 가르침의 수준은 스승에게 달려 있다. 스승은 반드시 기본적 내용을 충실하게 익히고 실천하는 훈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가르침의 내용이 아무리 어려워도 배우는 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스승은 늘 학생의 성장과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제자들이 스승의 수준에 도달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르침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가르침의 기본이다.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의 참교육은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하나님과 성경을 진정으로 믿어야 한다. 어린이를 가르칠 때나 성인을 가르칠 때나, 무식한 사람을 가르칠 때나 유식한 사람을 가르칠 때나, 그리스도인 교사는 마음가짐이 늘 같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교사가 자신도 모르는 가르침을 하려 해서는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높은 내용의 것들을 상대와 상관없이 가르치려 들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가르침은 교회 내에서든 학교에서든 동일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고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참된 교사가 되자. 참 교사의 길이 성경 안에 제시되어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돼라.”(고전 11:1) 그리스도인 교사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천하는 것을 통하여 배우는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방법대로 따라 살아가게 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참된 삶으로 가르치고자 힘쓰는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신학(神學)은 충동의 산물:세계를 지배하는 목적은 없다!
마흔 하나. 민중신학과 오순절주의의 대립, 인간중심주의로 퇴락한 기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