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2-06-20 22:4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군자는 어리석지 않다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井有人焉 其從之也.
재아문왈 인자 수고지왈정유인언 기종지야
子曰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자왈하위기연야 군자가서야  불가함야 가기야 불가망야


논어 옹야장의 계속이다. 그 해석은 이렇다.

「재아가 물었다. “군자는 비록 누군가가 (그에게) ‘우물에 사람이 있다(빠졌다)’라고 알려주면 그것(그 사람의 말)을 좇아 (사람을 건지러) 우물에 들어갈 것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가 (우물까지) 갈 수는 있겠지만 함정에 빠지게 할 수는 없으며, (이치 있는 말로) 속임을 당할 수는 있겠지만, (터무니없이) 속일 수는 없다.”」

“종”은 ‘우물로 따라 들어가서 구하는 것(隨之於井而救之, 수지어정이구지)’이다. 재아가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지 못해서 인을 행하다가 해로움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여(優爲仁之陷害, 우위인지함해) 공자에게 물은 것이었다. “서(逝)”는 ‘군자로 하여금 가서 구하게 하는 것(使之往救, 사지왕구)’이다. “함(陷)”은 ‘우물에 들어가는 것(陷之於井, 함지어정)’이다. “기(欺)”는 ‘이치가 있는 것으로써 속이는 것(誑之以理之所有, 광지이이지소유)’이고, “망(罔)”은 ‘이치가 없는 것으로서 몽매하게 하는 것(昧之以理之所無, 매지이이지소무)’을 말한다.

본문의 내용은 그 발단이 공자의 제자인 재아가 인을 행하라는 가르침에 대하여 불신한 데서 비롯되었다. 재아는 사람이 어질어야 하는데 무조건적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베푼다면 자칫 누군가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을 염려한 것이다.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는 것은 당연히 구해 주어야 할 이치가 있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군자라면 당연히 우물로 향한다. 그러나 우물에 도착해 보면 그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드러난다. 그때 가서 우물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비록 군자(어진 사람)를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말로 일정 정도는 속일 수 있겠지만 참 군자라면 결코 끝까지 그 속임에 빠져들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말을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그 누구라도 어느 정도의 이치가 있는 말로는 군자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을 믿게 하거나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런 이치의 말도 판명을 받게 됨을 말하고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가지고는 군자는커녕 보통의 사람도 속일 수도 없고 더더욱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어찌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 역시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말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자마자 거짓으로 판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의심의 눈초리를 두면서 거짓된 이나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아니다. 일단은 조건 없이 다른 이의 말을 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선한 사람으로 용납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마음의 자세를 아무런 비교나 평가도 없이 줄곧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등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평가해 보아야 한다. 일방적으로 사람의 말을 듣고 신뢰하고 무턱대고 수용하기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일 수 없다. 마침내 사탄에게 속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속임을 당할지언정 누군가를 속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실 때 그의 제자들로부터 받은 대접은 그분을 실망되게 할 만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리스도는 제자들로부터 속임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지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곤경으로 몰아넣은 적이 없다. 오늘 우리도 그러하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결코 곤경에 빠트리시지 않는다. 성경이 이 사실을 여전히 증언하고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이여! 세상을 살면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속임을 당하자. 그리고 다른 이를 속여서 어려움에 빠지게 하지 말자. 매사를 믿고 받아들이되 늘 말씀에 비추며 되새기자. 우리의 영혼이 사탄과 죄로 인해 망가질 때까지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성하고 깨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함을 지키며 살아가자.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문태순 (교육학 박사 백석대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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