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09-11-26 04: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8,교회생활 및 운영의 문제점과 대안<1>


1. 서언: 진리에 입각한 내적 성숙의 부재

  한국교회 성도들의 교회 생활은 자유롭고도 성숙을 향한 치열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교회생활은 본래 의와 희락으로 특징짓는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는 것인데 그런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교회 강단은 심도있고 은혜로운 복음 진리가 전파되기 보다는 성도생활을 닦달하는 교훈조 설교들로 채워진다. 그 결과 교회생활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온다.
  교회의 직분을 맡는 것이 세속적인 명예직 혹은 권세 있는 자리로 둔갑하여 교회 직분의 거룩성이 퇴색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를 섬기는 직분이 경직되고 성도들 간의 진솔하고 진지한 교제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직분 수행이 즐거운 봉사이기 보다는 의무감에 의한 일로 수행되면서 내적 부담과 외적 갈등의 요인이 된다.
  교회가 말씀 자체의 원동력 보다는 점차 조직의 생리에 의해 운영된다. 영적 진리의 권위가 약화되면 모여든 성도들을 이끌어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적 조직자체의 체계를 강화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교회를 영적 체질과 성숙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부터 한국교회의 문제를 진단하면서 진리와 생활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거론해 왔다. 생활이 열매라면, 진리는 뿌리이다. 어떤 진리의 가르침이 왜곡되면서 교회 생활에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지 그 심층적 원인을 검토하면서 대안적인 해결 방향을 찾고자 한다. 
 
 2. 교회생활의 문제점과 대안

  한국 교회 성도의 교회 생활의 문제점은 크게 보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 보인다. 첫째 율법주의적 가르침에 의해 부자유하고 의무감에 시달리는 교회생활이다. 이는 구약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승화시켜 가르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다. 둘째 교회와 세상을 거룩과 속됨이라는 영역적 차원으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적 가르침에 의해 교회당 생활에 과도하게 치우친 문제점이다. 이 때문에 삶의 전 영역에서 이루어져야할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 중심의 올바른 세계관 정립의 부재로 말미암는다. 셋째 교회생활의 의식주의화 혹은 직분의 계급화로 말미암는 경직화이다. 이는 올바른 말씀으로 말미암는 신령한 교회생활의 의미를 누리지 못하고 또한 봉사직으로서의 직분의 이해가 결여되면서부터 기인한다.
 
    1)율법주의적 교회생활의 문제점과 대안

  율법주의적 가르침, 즉 구약의 율법을 신약 성도의 직접적인 생활규범으로 가르치는 것이 말씀 증거의 바탕을 형성하게 되면 한마디로 말해 성도들의 교회생활이 즐겁지 않다. 당위적인 규범 앞에 서 있는 인생은 결코 즐거운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교회 일이 즐거운 사랑의 짐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즉 율법적인 규범이 지배하는 교회의 분위기는 성도의 “내적인 기쁨과 성숙”보다는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방식”이 강박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교회가 진정한 쉼과 누림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되면 언제나 외형적인 일중심의 교회를 만들게 된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자신의 의 혹은 공로가 되며, 반대로 그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에는 죄책감에 눌리게 된다. 이런 교회생활은 복음의 은혜에 근거하는 쉼과 평안이 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 공로주의가 기생하고 더 심각한 경우 속과 겉이 다른 외식주의가 자리 잡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는 성도의 자신에 대한 그릇된 자아상을 갖게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닦달하는 완고한 도덕 교사의 이미지처럼 등장하는 율법주의적인 가르침이 지배하게 되면, 성도는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즉 자신이 율법 앞에서 죄인 됨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 의인으로 살아가려는 발버둥이 있게 된다. 이는 성도들 간의 교제의 방식에 그대로 반영된다. 즉 타인을 이해하는데 문제를 발생시킨다. 타인에 대해서도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정죄하게 된다. 이것이 성도들 간의 인간관계를 소원하게 하고 어렵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게 되면 성도들은 자신의 실수와 허물된 삶을 개방하기 어렵게 된다. 솔직한 자기 개방이 없이는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가 친밀해 질수가 없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는 점차 경색되거나 형식화된다. 죄인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며 따라서 각자의 실수와 허물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인정되고 덮어지는 곳이 교회가 아닌가!
  그러나 오늘날 율법주의적인 가르침이 존재하는 한 한국교회는 자연스럽고도 편안한 교제가 점차 퇴색해 간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의 어려움과 마음을 나누는 친밀한 교제는 없어지고 있다. 성도 간에 갈등이 발생하면 화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되어간다. 교회내 갈등은 사회에서도 문제화되고 있다.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은 교회의 지도자가 세상의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훈계를 듣는 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서로 정죄하고 파당을 이루는 것은 옛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로운 자아가 살아나는 진정한 경험을 못했다는 뚜렷한 증거이다.   
  율법주의적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구약 율법을 언약성취사적 맥락을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언약의 말씀, 즉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보여주시는 신학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해석하지 못하고 구약의 언약적 맥락에서 분리시켜 곧바로 신약 시대 성도들의 규범으로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경 해석의 오류이다. 이렇게 되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원리로 삼는 복음적인 생활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항과 규제가 성도의 삶을 묶게 된다. 그것은 복음의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의와 능력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것은 실제 영혼의 부자유와 억압을 느끼게 된다. 
  원래 모든 인생은 아담 타락이후 율법의 저주와 정죄아래 놓여 있는 죄인이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지 못할 때는 모든 인생은 율법아래 놓인바 되고 죄와 사망의 법아래 놓여 있게 된다. 하나님이 구약시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것은 그것을 잘 지켜 의롭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의 규범 앞에 자신이 지킬 수 없는 죄인 됨을 깨닫게 하고 제사 제도를 통해 의롭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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