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9-03-30 08:2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예수 앞에 놓이는 말


‘예수’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성경의 중심에 있는 핵심어이다. 예수는 신약성경에만 나온다. 신약성경을 통하여 구약성경을 보면, 구약성경에는 예수의 의미로 뭉쳐 있다. 신약성경 없는 구약성경과 구약성경 없는 신약성경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이렇게 깊고 중요한 성경에 대한 관점을 지지해 주는 양대 기둥과 같은 것이 바로 여호와와 예수다. 구약성경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는 바로 예수로 계시(revelation)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의 핵심어로서의 여호와는 신약성경에 인용될 때 “주(Lord)”로 표기되었다. 성경의 핵심어로서의 여호와는 그 무게감이 대단하다. 이 무게감은 바로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여호와 앞에 놓이는 말들은 한정되어 있다. 여호와 앞에 오는 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만군(萬軍)의”이다. 이 “만군의”는 대부분이 학개서와 스가랴서와 말라기서에 집약되어 있다. 이 세 선지서는 구약성경의 결론부로서 그 논리적인 구성은 참으로 놀랄만하다. ‘만군(hosts)’은 선민과 이방을 포괄하며 특히 모든 선지자들과 왕들과 제사장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호와 앞에 오는 말 즉 여호와를 수식(修飾)하는 어구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대부분은 시편에 보인다.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예수로 계시되어, 요한계시록의 끝에는 “주 예수”로 매듭지어진다. 성경은 통째로 여호와 하나님을 계시하여 이러한 중심을 절대 놓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예수 앞에 놓이는 말만을 확인해 보아도 확인된다. 놀랍게도 여호와 앞에 다양한 말들이 올 수 없는 것처럼 예수 바로 앞에도 올 수 있는 말들 곧 수식어들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 아마 “나사렛 예수(행 2:22)”를 제외하면, 그 대부분이 “주”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세 용어를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간략히 분석을 시도한다.


1) 主와 그리스도

예수 앞에 주가 놓인 “주 예수”는 성경의 최종적인 끝말이다. 신약성경은 시작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구약성경 전체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예수를 소개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성경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아브라함과 다윗 중에서 더 중요한 인물은 다윗이다. 요한계시록에서(22장) 예수께서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라고 직접 소개하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 앞에 놓이는 “주(主)”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매우 간단하게나마 그 이유를 제시하고 싶다. 위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구약성경 전체를 요약하여 예수로 연결시킨 점을 부각시켰다. 구약성경 전체의 핵심어인 “여호와 하나님”을 “주 예수”에서의 “주”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분리시키는 순간에 성경의 논리는 산산조각이 나기 때문이다. 이 점 하나만을 제시하고 예수 앞에 위치하는 “그리스도”에게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위에서 말라기서 앞에 자리 잡은 스가랴서를 가볍게 언급하였다(자세한 것은 필자의 성경의 언어<117> ‘의미심장한 66권의 위치’를 참고할 것). 여기서는 자리 잡은 위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를 예수 앞에 놓아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면, 그리스도를 강조하려 한다는 점을 대개 익히 알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내용들은 대개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들과 연계되어 있다. “그리스도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단어의 도치(倒置)에만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신약성경의 논리를 점검할 때, 그 표현들은 각각 얼마나 중요할까! 


2) 하나님의 아들

예수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되면,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 강조된 것이다. 4복음서에는 각각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강조된 부분이 있다. 사도행전에도 성령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음진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되어 있다. 마태복음의 끝에 나오는 표현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그 뒤의 마가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기차게 연계되고 있다. 예수 앞에 너무도 힘 있게 자리 잡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성경의 논리를 검토하는 것과 함께 그 중요성을 확증한다면, 성경은 점점 더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아버지를 목표로 하는 신학”은 부당하다
가능성에서 발견한 완전한 영원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