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9-06-19 19:1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피조물 화해자, 그 안에서 인식되는 창조자


우리는 앞에서 바르트가 인간 예수이지만 계시중보자인(계시자가 아닌) 한 존재양식으로 제시한 것을 보았다. 필자는 그것을 바르트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근거하는 존재양식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즉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실체(homoousion)가 아닌, “아버지 됨을 계시하는 존재양식으로 화해자”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아들을 옛 동양에서 시행하는 왕(王)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제시했다(GG., 514). 바르트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을 계시하면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GG., 521). 결국 바르트는 finitum non capax infiniti를 파기했다(aufgehoben, 박순경은 ‘지양(止揚)’으로 번역함, 영역(英譯) abrogated). Und gerade das ja in keiner Weise selbstverständlich, sondern das ist wunderbar, und zwar nicht nur und nicht in erster Linie als Allmachtswunder, als das Mysterium, in welchem der Satz finitum non capax infiniti aufgehoben wird(KD., 427, GG., 522, CD., 407).
바르트는 finitum non capax infiniti 파기를 선언하며,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할 수 없다(Homo peccator non capax verbi divini)”는 명제도 파기했다(KD., 427, GG., 522, CD., 407). 즉 죄인이 finitum capax infiniti 할 수 있는 구조로 신학 체계를 전환시킨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 인식하는 것이 기적이다. 이 기적, 이 신비를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었기 때문에 화해자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가 나사렛 예수가 된다. 나사렛 예수도 결국 죄인인 인간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도를 이해한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아버지의 참뜻을 죽음으로 밝혀 인류의 화해자가 된 것이다.
가치평가에 의해서 신성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주의, 슐라이어마허가 만든 전형이다. 서철원 박사는 그러한 유형을 아래로부터 위로의 신학(상승기독론, Christology from below)이라고 제시하며 거부했다. 인간 예수에서 시작하는 기독론이 부당한 이유이다. 인간 예수는 자연상태의 인간이고 완전한 인간, 순수 인간은 죄인이 가장 순수한 인간이다. 그 상태를 후대가 경이롭게 평가를 하기 때문에 신적 가치가 있다는 예수 이해는 기독교 예수 이해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이해는 불트만 다음 세대에 간접기독론(indirect or implicit Christology)으로 체계화되었다.
바르트는 예수 이해에서 자유주의 전형을 충실하게 밟고 있다. 바르트가 슐라이어마허의 구도를 개혁신학 용어로 재편했다고 평가해도 될 것이다. 바르트는 죄인이 하나님과 마주 설 수 있는 관계를 설정했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들음(dennoch Horen), 하나님 말씀 들음이 가능하다(KD., 429, GG., 524, CD., 409). 바르트는 개인이 들음이 주관적이지만, 예수의 화해에 근거해서 객관이 된다고 주장한다(KD., 429~430, GG., 524~525, CD., 409~410). 바르트가 말하는 화해(Versöhnung)는 하나님이 죄인과 화해하는 것이다. 예수는 죄인으로 진리를 파악한 유일자로서 계시중보자이다.
바르트는 화해가 계시와 잘 부합하지만, 구속, 구원, 속죄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제시했다(GG., 525). 예수가 확립한 화해는 하나님이 죄인을 향해서 적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화해자 아들에게 적대감을 해소하는 방편이다. 이는 신약성경에서 한 사람을 죽여 모든 사람을 구원하자는 모의와 같다(요 18:13~14). 그런데 이런 유형을 규범화해서 르네 지라르(Rene Girard, 1923~2015)는 미메시스 이론(Mimesis, 모방 이론), 인류의 폭력성으로 분석했다. 미메시스와 모방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처음 등장했다. 바르트도 문화의 전형을 따라서 한 사람 죽이고 평화를 얻는 구조, 즉 예수를 죽이고 화해를 획득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바르트는 화해의 능력을 사람이 신이 되는 신성화 문제로 가는 것을 지양했다. 바르트는 예수가 화해한 성격을 세계 내적인 수준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 만연한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바르트는 세계 안에 있던 예수가 창조자 하나님을 계시한 것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고 제시했다(GG., 528). 타락한 세계 안에서 일어난 기적인 것이다. 예수의 화해는 계시내용과 계시자가 일치하는 사건이다. 바르트는 그 통일성을 아들 됨으로 평가했다. 아버지를 정확하게 계시하는 내용, 그 계시내용을 말하는 계시자의 통일성, 예수는 아버지의 계시이고, 아버지의 계시는 예수이다(GG., 529). 통일성, 이때 ‘이다(ist)’가 된다. 바르트에게 ‘ist’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르트에게는 존재(Sein)가 아닌 행동(Tat)과 되다(werden)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르트에게 ist는 술어적인 의미뿐이다. 술어적 의미는 언어 속에 있는 것이고, 바르트는 그러한 것을 신적 행동으로 규정한다.
예수는 아버지의 계시이고(ist), 아버지의 계시는 예수이다(ist)는 바르트의 문장은 창조와 화해의 동일성으로 전개된다. 바르트는 세계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화해는 창조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창조된 세계가 창조주에게 적대감을 가지며 상실되었는데 화해자 예수가 화해를 시켰다. 세계 내 존재는 창조주의 적대감을 파악할 수 없는데, 창조주의 적대감을 화해시킨 화해자를 인식할 수 있다. 이때 화해자는 십자가와 부활로 화해 행위를 진행했다(GG., 529). 바르트는 창조자와 화해자의 종속 관계를 분명하게 확립했다(GG., 530). 바르트는 창조와 화해에 동등한 신적 가치를 두었는데 자기 독단이다. 바르트의 사상은 바르트의 독단으로 가득하다. 바르트를 읽는 독자는 그것을 잘 인지해야 한다. 바르트의 독단은 개인적이고 자유주의와 철학자들의 견해를 반복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화해자인 예수가 창조자 아버지에 선행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GG., 520). 이것은 삼위일체 교리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이다. 니케아 신경(The Nicean Creed, 325년)에서는 “그러나 그가 계시지 않았던 때나, 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없었다거나, 그가 없었을 때가 있었다거나, 그가 다른 실체, 본질이거나, 창조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변화가 가능하거나, 가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거룩한 공교회와 사도적 교회에서 저주한다”고 선언했다. 바르트는 예수가 하나님 전에 없었다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니케아 신경에 의거하면 거룩한 공회에서 파문해야 한다. 그런데도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칼 바르트를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극찬했다. 바르티안은 자신들을 “정통주의의 회복자”라고 하지 않고, “신정통주의”라고 밝힌다. 필자는 칼빈은 정통신학을 질식시킨 교황주의에서 정통신학을 회복한 신학자로 평가한다.
바르트는 창조자와 화해자를 분명하게 구별하지만, 또한 창조자와 화해자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필자는 그것을 “창조 세계에서 태어난 화해자”, “화해자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창조자”의 관계로 이해해 보았다. 바르트는 이러한 구조를 파악하게 하는 화해자에게 아버지와 동일한 존재양식, 즉 무한한 참된 신성(unrestrictedly true deity)을 부여했다. Hier ist also Sohnschaft so gut wie Vaterschaft, in und mit der damit ausgesprochenen &Uuml;ber - und Unter - ordnung der Seinsweisen als uneingeschr&auml;nkt wahre Gottheit zu verstehen(KD., 435, GG., 531, CD., 414).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여호와의 영광
선지자요 왕이신 제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