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1-10-20 10:4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말씀이 육신이 됨(4) 죄인 예수의 무죄성: 순종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2, § 15. 계시의 비밀(Das Geheimnis der Offenbarung) 2. Wahrer Gott und wahrer Mensch “참 사람과 참 사람”에서 두 번째 내용, “말씀이 육신이 됨”을 GG 189쪽에서 시작한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선 일반적으로 그것이 인간이, 그것도 참되고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으며, 인간적 본질과 현 존재 바로 그 자체에, 인간적 본성과 형제 그 자체에, 또한 우리들이 소유하는 역사성 그 자체에 참여하였음을 뜻한다(GG 189, 신준호)를 제시하였다. 2 문항에서는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성(die Wirklichkeit Jesu Christi)으로서 “우리와 피조물로서 같은 인간(Er ist ein Mensch wie wir, uns gleich als Geschöpf)”이라는 것으로 규정한다(GG., 195). 3 문항에서는 2 문항에서 규정한 “우리와 같은 인간”에 이어서, 죄(die Sünde), 죄에서 출생하고 죄 자체가 되어 살았다고 규정하였다(GG., 200). 4. 문항에서는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죄 있는 인간으로 예수의 무죄성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바르트는 아담의 불순종과 2 아담의 순종을 대조시켰는데, 문제는 아담은 죄 없는 상태에서 불순종한 것이고 2 아담은 죄 있는 상태에서 순종한 것이 되는 것이 되는 것에는 착안하지 못한 것 같다.

4.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동일한 존재가 되셨는데, 또한 그분은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동일한 존재가 되셨다”(GG., 200). 바르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참 인간이며 참 하나님인 것을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화해로 규정하였다(GG., 200). 한 인간을 하나님이 취하여 그러한 일을 한 것이다. 바르트는 참 인간이 참 하나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규정하였다. 즉 바르트가 예수를 참 하나님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신이 기뻐하는” 수준 안에서 참 하나님이다. 아리우스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규정하였는데, 영원에서 피조된 하나님으로 규정하였다. 바르트는 예수를 참 하나님으로 규정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는 수준에서 참 하나님이다. 아리우스가 규정하는 예수의 하나님 됨과 바르트가 규정하는 예수의 하나님 됨의 수준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바르트가 예수를 참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는”이라는 조건 안에서 참 하나님이다. 시간(역사) 안에서 참 하나님에 불과하다. 바르트가 성육신을 언어 사건으로 규정한 것처럼, 예수가 참 하나님인 것은 역사 안에서 언어 사건으로 발생한 것이 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예수는 죄가 배제된 성화 상태가 제시된다(GG., 200). 바르트가 “하나님 자신의 주체”를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초절 상태에서 인간에게 발생되는 신적 계시 사건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두 체계가 공존하는 역설이 된다. 그것은 1930년대에 발생한 양자역학의 질문, 코펜하겐 해석과 슈뢰딩거의 고양이 논리 구조이다. 1930년대 뉴톤의 사고 체계에서 양자 역학의 세계로 진입하였다. 양자 역학 구조는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측에 따라 값이 변화되어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며, 두 대립된 체계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바르트 사유의 방대함은 당대의 모든 사유 체계를 종합하여 융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바르트는 루터적 개념을 많이 사용하는데, “낯선 말씀(fremdes Wort)”이라는 어휘도 그렇다(alien righteousness).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성도 함께 제시한다. 그런데 바르트가 사용한 fremdes는 foreign, strange 개념이 우선하고, alien 개념이 뒤에 있다. 영역에서는 alien (word)으로 번역하였지만, foreign의 개념과 좀 다르다. 자기와 다른 성격의 말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한 자기와 다른 이질적인 말이 자기 안에 취해지고 수용되는 사건을 육화로 이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르트가 인간 존재를 “거룩하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수용되면서 성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제시하였다.
그런데 무죄성(Sündlosigkeit),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GG., 202). 그 이유는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도덕적 이상향으로 서술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도덕적 이상적 인간으로 그려졌다면 영지주의적 이상향이라고 제시하였다. 바르트는 예수를 “오직 이 하나, 곧 육체 안의 하나님,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져야 하는 짐을 나르시는 하나님이 되고자 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로 제시하였다(GG., 202).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이라는 테마로 규정하였다.

바르트는 예수에게 죄 없음(Jesu Sündlosigkeit)을 규정하는데, 그 이유는 순종(Gehorsan, obedience)이다. 예수는 제2 아담(second Adam)인데, 첫째 아담과 다르게 하나님이 되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에 순종하려고 한 것이다. 2 아담은 자기 제한들과 결과들을 스스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이다(GG., 203). He does not a void the burden of this state and position but takes the conditions and consequences upon Himself.

바르트는 그것을 계시라고 규정하였다. Das ist die Offenbarung Gottes in Jesus Christus. 즉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한 사실이 계시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성육신이 된다. 예수는 모든 인류를 위한 심판의 운명까지 수용하며 순종하였다. 그것이 아담의 옛 죄의 반란(der Aufruhr der Sünde)을 회복시키는 사건이었다.

바르트는 ‘순종’이 죄를 회복시키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제한과 결과를 수용” 즉 순종으로 말하였다. 이 개념은 김세윤 교수에게서 잘 나타났다. 김세윤은 죄를 무한한 자원이 아닌 제한된 자원에 의존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바르트의 개념과 유사하다. 

바르트는 ‘예수의 무죄성’을 말하는데, 그것은 ‘순종’으로 규정하였다. 우리는 앞에서 아담의 반역(불순종)과 예수의 순종의 차이를 말했다. 무죄성이 필요한 이유는 완전한 대속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르트의 무죄성은 순종을 강조하는 수준에 있다. 바르트에게 “예수는 죄가 있는 인간이지만 순종으로 무죄한 인간이고, 모든 인류를 위한 심판의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한 유일한 인간”이다. 예수가 죄가 없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순종의 죽음”이다. 그것에 대한 비논리성에 대해서 증거 된 계시의 비밀(beseugte Geheimnis der Offenbarung)이라고 규정하여 함몰시켰다. 결국 인류를 위해서 오직 한 사람이 심판받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 예수는 무죄하다. 바르트는 특이하게 “그리스도의 무죄성”이 아닌 “예수의 무죄성”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의 무죄성”,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부활”로 길이 진행시킨다.

바르트는 예수를 죄 자체로 규정하면서 무죄성을 밝혔다. 그리고 예수가 무죄인 근거는 순종이다. 정통신학에서 무죄성은 성령으로 잉태된 무죄, 존재론적 무흠, 무죄이다. 예수의 순종은 조건이 아닌 속죄제사의 정당성이며 자기 백성을 위한 체휼이고 위로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주기도에서의 성경체계
나라와 권세와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