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22-07-13 19:4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욥기부터 시편까지


구약성경은 역사섭리와 시가들과 그리고 선지들의 예언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지식은 신약성경을 보는 데 필수적이다. 모든 방면에나 여러 분야에서 기초적인 지식이 없어서 낭패(狼狽)를 만나며 보게 된다. 창세기부터 에스더서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 가지 언약을 이루시는 역사섭리이다. 이 역사섭리는 역사를 시작하시고 주관하시어 마무리하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힘은 한 마디로 역사의 힘이다. 개인사나 세계사에는 모두 이러한 역사의 힘이 들어 있다. 이러한 역사의 힘은 노하우(know-how)와 밀접하다. 이 시대는 밀레니엄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 활동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 엄청난 힘의 실체를 맛보고도 그 맛의 속뜻을 음미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 속뜻이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1000년이 본질상 하루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힘을 가지기를 갈구한다. 섭리의 이면에만 진정한 힘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집중적으로 예언한 것이 바로 선지서이다. 이사야서부터 나라를 때리시고 싸매심이 집중적으로 증거 되고 있다. 말라기에 이르러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절정에 다다른다. 여기서는 시가서의 서론이자 결론이 될 수 있는 욥기부터 시편까지를 비교하여 분석해 본다. 그 비교 분석의 기준이나 핵심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1) 하나님이 많은 욥기

성경 66권 모두가 그러하듯이 논리의 발견은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면에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 논리의 발견과 직결되어 있다. 욥기에는 세 차례의 논쟁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이 기록되었다. 이런 논리나 명제를 대개 인정을 한다. 막상 구체적인 성경의 부분에 들어가면, 근본이나 기초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이해하고 해석을 함이 매우 심각하다. 세 차례의 논쟁에 어떤 논리가 존재할까? 이 질문을 강조하여 던져놓고 싶다. 좋은 문제는 논리력이나 사고력 등을 진작(振作)시킬 수 있다. 논리력이나 사고력 등을 고려하고 논할 때, 성경을 배제하고 가능할까? 이 세상에서 책(冊)의 본질은 성경(The book)이기 때문이다. 욥기에는 여호와가 단지 30회에 불과하다. 반면에 하나님은 200회 정도이다. 이것에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 없이 가능할까? 욥기의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성이다. 그 전능성이 욥의 고난을 통해 잘 찬양되고 표현되었다. 욥은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분의 예표이다. 욥의 육신은 성전(聖殿)이신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예표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성은 욥의 육신이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것을 통하여 온전히 노래되고 찬양되었다. 성전이신 그리스도가 음부까지 내려가듯이 욥은 초주검이 되었다가 다시 회복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성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에서 전능성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연관되고 연결되어 있다.

2) 여호와가 많은 시편

시편의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실(신실)성이다. 시편에는 여호와가 거의 1000회 정도에 다다른다. 성령의 의도적인 감동이 개입되지 않고서 가능한 일인가? 위에서 욥기의 논리를 강조해 놓았기 때문에, 시편의 논리와 연계하여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욥기의 질문이나 토론을 중심적으로 정리하여 그것들을 시편과 연계하여 답변의 성격으로 간단히 보고자 한다. 욥기의 논리나 시편의 논리는 원리 면에서 동일하다. 욥과 세 친구들이 변론한 중심은 진리의 문제이다. 그 진리는 왕(king)과 집중적으로 관계된다. 이 진리와 관계된 문제들은 욥기를 통하여 더 자세하게 시편에 서술되어 있다. 이제 욥기와 시편에서 크게 세 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연결시켜 마무리 짓는다.
첫째, 근거(원)에 대한 것이다. 시편 150편에는 이 문제와 관계된 것들이 허다하다.
둘째, 주관에 대한 것이다. 시편에는 주관자로서 여호와이신 “주”를 깊이깊이 찬양하고 있다.
셋째, 목숨(생명)에 관한 것이다. 위의 호흡이 있는 자는 목숨이 붙어 있는 자가 아닌가? 여호와가 시편에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주제인 성실성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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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를 수용할 공간과 장소로서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한 실존 안에서 성령과 대면하는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