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01-31 22:14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말라기서 뒤의 마태복음


구약성경의 마무리인 말라기서를 보면 구약성경의 본질을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의 끝인 요한계시록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하여 잘 볼 수 있다면, 성경 전체의 목적도 알 수 있다. 그 목적은 바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이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북극의 한파가 한반도에도 온다. 이것을 짚어보는 의미는 빅데이터 시대의 본질을 성경에 근거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음이다. 마찬가지로 2000년을 맞이한 21C에는 밀레니엄이라는 시간을 지났다. 여기서 공간과 시간의 불가분성을 거듭 확인하면서, 성경의 기록 기간인 1600여 년을 가벼이 볼 수 없다. 구약성경의 기록 기간은 1500여 년이고, 신약성경의 기록 기간은 겨우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이러한 것도 이제 21C에는 빅데이터와 함께 어우러져 모든 생활의 전반들이 더욱 분명한 근거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다.
일반적인 과학은 이처럼 최첨단으로 앞서가고 있는데, 신앙이나 신학적인 측면도 과연 그러한가? 이러한 문제의 제기는 모두 근본적으로 성경관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알파고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더욱 공고히 해주었다. 수많은 경험과 통계 등을 단번에 더욱더 정확하게 확인하여 확증하는 관점을 던져준 셈이다. 여기서 성경관을 거론하여 성경을 보는 관점과 시각과 시야 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이러한 강조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입체로 연결하여 그 본질을 하나로 잘 정리하여 확증함이다. 신앙과 이런 강조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사실이다. 진리를 확인하여 확증하려고 하면서 머리카락을 세듯이 일일이 하나하나에 치중되어 있다면 참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질에 좀 더 쉽고도 재미있게 다가가고자 구약성경의 끝과 신약성경의 처음을 연결해 보고자 한다.

1) 구약성경을 정리한 결론 

구약성경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여 정리한 곳은 바로 말라기서이다. 무엇을 정리하면서 중요한 요소는 묶기와 연결 등이다. 이미 구약성경이 개괄적으로 잘 정리되어 눈과 손으로 만지며 볼 수 있다(박용기, 성경개론, 2005). 이런 기존 자료를 잘 사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각 개인에게 달려 있다. 말라기서는 12소선지서 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붙어 있다. 앞의 학개서와 스가랴서에 연결되어 전 제사 시대에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역사서와 시가서와 선지서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아무렇게나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소선지서의 이 세 부분도 마음대로 분리할 수 없다. 그 내용을 관찰하고 분석해 보면, 스가랴서 1장~6장은 뒤의 7장~14장과 잘 연결되고 있다. 뒤의 연결과 마찬가지로 앞의 학개서와도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제 학개서의 시작 부분과 말라기서의 끝부분만을 봄으로, 말라기서가 구약성경의 결론 격인 성질을 지니고 있음을 제의해 보고자 한다. 학개서 1장 1절의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는 구약성경 전체가 여호와의 언약이라는 것과 아주 강하게 연결된다.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의 논리적인 체계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매우 중요하다. 말라기서는 앞의 세 가지 중에서 제사장과 아주 밀접하다. 학개서와 스가랴서가 선지자와 왕이 어떻게 관계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말라기서의 끝부분은 율법을 요약하고 세례요한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2) 신약성경을 포석한 서론

마태복음이 신약성경의 완성을 위하여 제일 앞에 있다. 이것으로도 마가복음이 사복음서의 근본이라고 주장하는 비평학자들의 주장에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의 구조(박용기, 『성경개론』, 2005)만을 보더라도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마태복음 1~4장은 신약성경의 서론 중의 서론이다. 마태복음 5~28장은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 직임에 의한 성취이다. 이러한 논리적인 체계는 요한계시록까지 지속적으로 관계되고 있다. 사복음서인 마가·누가·요한복음의 신분·사역·본성에 의한 성취에도 여전히 관계되고 있다. 로마서의 의(義)의 성질에도 선지자적인 성질부터 제사장적인 성질까지 분명히 관계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 승리를 말씀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앞부분에는 그리스도의 선지자로서의 승리부터 제사장으로서의 승리까지 매우 강하게 증언한다. 마태복음이 신약성경의 제일 앞에 위치하여 왜 신약성경의 서론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대신한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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