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05-23 19:50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치리의 주요한 내용


치리(治理)는 다스리는 것이며 통치이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권력자들이 다스리며 통치하는 것으로 대개 생각한다. 그것은 표면적이며 현상적인 것이다. 성경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 끝까지 지배하시며 통치하심을 일관되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좀 더 세밀히 찾아보고 확증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분의 영(靈)은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는 것은 모든 것에 간섭하시고 친히 주관해 간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창세기의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천지를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시작되어 얼마 가지 못하여 아담의 타락 문제와 자유의지라는 큰 장벽을 대하게 된다.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주관적인 통치에 엄청난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게 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큰 문제는 출애굽기의 바로의 강퍅함과 열왕기에서의 여로보암의 배반 등이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확인해 갈 때에 성경의 일관성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신약성경에서 가룟 유다의 배반이나 로마서에서의 아담의 타락과 바로의 강퍅함 등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확증해주고 있는 마귀인 사단의 정체를 창세기부터 예수님 당대에 나타났던 귀신(마귀) 등을 통하여 요한계시록까지 다각도에서 검증해보고 확증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만물과 만사를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며 주관하심을 엄하게 말씀하고 있다. 특히 잠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관하시며 모든 인간의 마음을 인도하며 주관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는 만사와 만물 가운데서 시간과 영혼을 중심으로 간단히 분석하고 확인해 보고자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손과 땅과 통치를 언약하시고 그림자적으로 이 세 가지를 성취하셨다(창세기~에스더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그림자의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구약성경 전체의 언약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이 세 가지의 언약과 성취에서 통치 언약의 성취는 특히 시간(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선정하게 되었다. 영혼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최고의 가치이다.

1) 시간

시간(time)은 성경의 시작 말씀인 “태초에”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다. 이 말씀이 쭉 펼쳐져서 룻기에 이른다. 룻기는 다윗 왕의 출생을 알려준다.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윗 왕이 다스리고 통치했다고 시편은 말씀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욥기에서부터 시편을 거쳐 말라기서까지 동물이나 식물은 물론이고 인간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장악하여 통치하심과 같이 이런 의미가 들어있지 않겠는가? 룻기는 시작하면서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라는 표현으로 이끌고 있다. 룻기 앞의 사사기 내용이 머리에 스칠 수 있다. 그 얼마나 비참하고 잔인한 일들이……. 이런 일들이 근본적으로 사사들이 치리한 결과일까? 성경진리는 증명의 문제이지 교리나 구절에 달려 있지 않다. 사무엘서 상·하부터 역대기의 상·하까지 그 분류나 내용이 시기(時期)와 시간에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울 시대와 다윗 시대 그리고 다윗 시대부터 솔로몬 시대 그 후까지 이 모든 시대를 누가 섭리하고 주관하셨단 말인가? 에스라서의 고레스 왕 시대와 아닥사스다 왕 시대 그리고 느헤미야서의 시작 말씀인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을 가벼이 볼 수 없다. 에스더서는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로 시작하고 있다. 전도서 3장에서 이때를 영원성의 기반에서 분명히 확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질 일들이 이 시간과 함께 정한 때와 조화되어 치밀하게 예언되고 있다.

2) 영혼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면서 교회를 위하여 또 교회를 중심으로 인도해 가고 있음을 선포한다. 육(肉)은 무익하고 영(spirit)만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존재이다. 육신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는 도구로서의 가치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이 생각의 직접적인 근거가 마음이 아니고 또 무엇인가? 이 인간들의 마음을 누가 붙들며 잡을 수 있는가?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지 않은가!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근호 목사 (논설위원, 중어중문학박사)
이메일 : yan8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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