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8-10-07 21:5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Die Einheit in der Dreiheit: 셋을 하나로 융합함


§ 9.1. Die Einheit in der Dreiheit는 번역이 어렵다. 일단 1. unity in Trinity라는 영어 번역부터 혼선을 제공한다. 우리는 바르트에게 Trinity 어휘가 제거되어야 할 항목임을 주장하고 이해하고 있다. 영어에서 Trinity로 번역한 독일어는 Dreiheit이다. Dreiheits는 Trinity로 번역하는데, 독일어에 Trinitat, Dreifaltigkeit, Dreieinigkeit가 있다. 삼위일체 한 단어에 여러 단어가 있는 것은 좀 당혹스럽다. 세 단어의 차이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경우를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필자는 “Trinitat”만을 “삼위일체”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영역(英譯)에서 Dreiheit를 Trinity로, Dreieinigkeit는 Triunity로 번역했다. 박순경 교수는 Dreiheit를 “삼위성”으로, Dreieinigkeit는 “삼위일체성”으로 번역했다. 철학계에서 Dreiheit는 삼지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박순경 교수는 Einheit는 “일위성”이 아닌 “통일성”으로 번역했다. “셋 안에 하나(Die Einheit in der Dreiheit)”로, “하나 안에 셋(Dreiheit in der Einheit)”으로 번역한 연구자도 있다.
바르트는 계시의 주체(dem Subjekt der Offenbarung)에 대해서 규정하려고 한다(GG., 450). 계시의 주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전개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바르트는 바로 Die Lehre der Dreieinigkeit Gottes(박순경-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한 교의, 영역-The doctrine of the triunity of God)를 전개한다. 박순경은 § 9 Gottes Dreieinigkeit를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이라고 번역했는데, 몇 줄 아래 있는 Die Lehre der Dreieinigkeit Gottes의 Dreieinigkeit는 삼위일체라고 번역했다. 영역(英譯)은 Triunity로 동일하게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ehre도 론(論)과 교의(敎義)로 번역했다. 그래서 GG를 읽을 때 독자에게 적지 않은 혼선을 일으킬 것이다. 영역은 어휘에 일관적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바르트가 바꾼 개념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르트가 매우 중요한 문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이해 없이 단순 번역을 진행했다. 번역가들은 축자번역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문체계는 축자번역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서양 학문을 소화시킬 우리 학문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00여 년이 되지 못하게 한글로 학문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주의를 갖고 서양 학문을 접해야 한다.
바르트가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한다고 생각된 것은 KD I/1., 369(GG 452, CD 349)에 있는 것이다. 중요 내용은 신성과 신격의 단어를 융합시키겠다는 선언으로 필자는 이해했다. 신론에서 신성과 신격을 구분해야만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다.

Wir konnen den Begriff der Herrschaft Gottes, auf den wir den ganzen biblischen Offenbarungsbegriff bezogen fanden, unbedenklich mit dem gleichsetzen, was in der altkirchlichen Sprache das Wesen Gottes, die deitas oder divinitas, die gottliche ουσια, essentia, natura oder substantia heißt. Das Wesen Gottes ist das Sein Gottes als gottliches Sein. Das Wesen Gottes ist die Gottheit Gottes.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성경적 계시개념이 주권개념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로 사용했던 옛 교회 용어를 나열시켰다. 바르트는 옛 용어라고 규정하고, 그 용어들을 한 언어로 융합시키려는 것이다. 바르트가 제시한 옛 교회의 용어들은 deitas oder divinitas, die gottliche ουσια, essentia, natura oder substantia 등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용어가 Wesen과 Sein이다. 박순경은 본질과 존재로, 영역은 essence와 being으로 번역했다. Wesen은 “본질”로 번역할 수 있고, Sein는 “있음”으로 번역해야 한다. 존재(存在)와 있음은 동의어이지만, 우리는 본질(本質)과 존재(存在)의 차이를 빠르게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는 존재를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동을 사색한 학문 특성이 있다. 행동에 익숙한 우리 사고에서 존재를 사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양철학은 Sein에서 Dasein과 Sosein으로 구분해서 사색하고 있다. 존재(存在)는 항존(恒存), 상존(常存), 현존(現存), 실존(實存) 등의 어휘로 시간적인 개념이 있다. 재(在)는 재직(在職), 현재(現在), 잠재(潛在) 등의 장소적인 개념이 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존재라고 표현했던 deitas oder divinitas, die gottliche ουσια, essentia, natura oder substantia를 “하나님의 하나님 됨(die Gottheit Gottes)”으로 통합시켰다. 우리는 deitas와 divinitas를 반드시 구분한다. deitas와 divinitas를 구분해서 번역하는 것은 번역에 일치가 없다. 그만큼 분별이 어려운 어휘이다. 바르트는 모든 단어, 그리고 deitas와 divinitas의 구분을 제거했다. 구분하지 않으면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설명할 수 없고, 성령의 내주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deitas(divine nature, Godhead)와 divinitas(the quality of being God)는 신성과 신격으로 제시한다.
참고로 박순경 교수는 번역에서 한 문장을 번역하지 않았다. Drei Gegenstande des Glaubens mußte ja heißen: drei Gotter. Die drei sog “Personen” in Gott seind aber auf keinen Fall drei Gotter(369)인데 “신앙의 세 대상들이란 실로 세 신들을 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452)라고 번역했다. 영역은 Three objects of faith would mean three gods. But the so-colled “persons” in God are in no sense three gods(349)이다. 바르트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 세 신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이시고, 아들이 주이시고, 성령이 주이며, 주는 셋이 아니라 한 주라는 퀴쿰케(Quicumque, Pseudo-Athanasian Creed)의 문장을 이용했다. 바르트는 자신이 세 신을 섬기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인격”이 “세 신”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르트는 “한 신(神)이 있다(存在)”가 아니고, “한 신이 행동한다”이다(김성삼, “행동하시는 하나님, 존재하시는 하나님: 바르트와 칼빈의 하나님론”, 총신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5). 그것을 위해서 옛 교회의 하나님의 존재 개념을 한 개념, “한 신성(einen Gottheit)”으로 융합시켰다. 정통신학은 한 신성에 세 위격을 주장했다(갑바도기아 교부들). 김광채 박사는 위격(υποστασιζ)과 실체(ουσια)을 사용한다. 서철원 박사는 대 바실이 ‘위격’에 대해서 ‘실체’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밝혔다(『교리사』, 336).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 형람서원)
이메일 : ktyhbg@hanmail.net

여호와부터 주 예수까지
삼중일신(Gottes Dreieinigk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