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신학

 
작성일 : 11-03-05 13:41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겨자씨와 합환채


이스라엘에 역사탐사 오는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식물 가운데 겨자씨 비유에 나오는 겨자나무(?)가 있다. 그런데 막상 겨자나무를 보면 가장 큰 실망을 하고 충격(?)을 받는다. 눈 앞에 펼쳐진 갈릴리 호수를 보면서 가장 큰 은혜를 받고 그 주변에 볼품없이 잡초처럼 자란 겨자풀을 가리키면서 “자, 저게 겨자씨 비유에 나오는 겨자나무입니다”라고 하면, 십중팔구 “아니 저게 무슨 겨자나무에요? 저게 어떻게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가 그 가지에 깃들지요? 혹시 잘못 아신 것 아녜요?”라고 되묻는다.

겨자나무에 대한 많은 성도들의 충격적인 반응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들이 1세기의 유대인 예수와 이를듣던 유대인 청중들의 시각과는 달리 현대적 문화와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는 정도가 무척 심각함을 깨닫게 되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널린 겨자풀이 겨자씨 비유의 겨자나무라는 것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성경을 우리 식으로 잘못 이해하고 설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에 비유하는 것은 절대로 ‘겨자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 정도의 큰 나무가 된다’는 말에 그 초점이 있지 않다.

그러면 한 알의 겨자씨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비유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겨자풀은 들에 널려 있는 ‘잡초’라는 것이다. 둘째로 이런 잡초의 씨 한 알을 하나님이 자기 ‘채전’ 즉 정원에 갖다 심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불품없는 잡초를 자기의 정원에 갖다 심어 애지중지 가꾸는 사람은 없다. 겨자풀은 결코 정원에 갖다 심을 만큼 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향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원수로는 전혀 맞지않는 그야말로 잡초 중의 잡초이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 가장 큰 적은 이런 잡초들이다. 잡초는 정원에 심는게 아니라 전부 뽑아 주어야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이 잡초의 운명이 아니던가?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시던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은 2월경이 되면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잡초’처럼 만발한 겨자풀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드시면서, 이런 잡초의 씨앗을 자기 정원에 심어서 정성껏 가꾸어 새들이 깃들은 큰 나무로 자라게 하신다는 말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로마의 압제를 받으면서, 특히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사회에서 벗어나 ‘이방의 갈릴리’로 멸시받고 천대받으면서 ‘잡초’처럼 눌려 있던 것이 당시 갈릴리에 살던 주민들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런 잡초의 씨앗을 하나님께서 자기 정원에 심어서 큰 나무가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이 바로 이런 잡초와 같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잡초처럼 들판에 널려 있는 겨자풀을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자기 정원에 심어 정성껏 가꾸어 새들이 깃드는 거목으로 자라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들이 실제로 그 밑에서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인류의 ‘거목’으로 자라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실제로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잡초처럼 버려진 인생들을 집중적으로 찾으시고 심방하셨다. 세리, 창기, 문둥병자 등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의공동체와 가장을 중심으로 한 씨족 공동체에서 벗어나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겨자씨 비유와 그대로 일치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세상의 인권 운동가와 달랐고 가르침 그대로 실천하신 분이셨다.

합환채는 고대로부터 불임여성을 위한 최음제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사람의 형상을 닮은 합환채의 뿌리로 인해 신비한 마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합환채는 히브리어로 ‘두다임’이라고 하는데, 이에대한 해석을 두고 몇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love’를 뜻하는 ‘도딤’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two’를 뜻하는 ‘두’와 관련이 있다는 것과, ‘lover’를 뜻하는 ‘다임’과의 관련설이 그것이다. 어쨌든 모든 의견이 남녀의 사랑과 관련이 있는 것을 보면 최음제로서의 합환채의 명성을 가히 짐작할 만 하다. 합환채는 노랑 열매가 초여름에 맺히는데, 열매의 강력하고 달콤한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진다.

불임여성을 치료한다는 합환채의 효능에 대한 랍비들의 지상토론도 유명하다. 랍비 아브라함 이븐 에즈라는 합환채의 성질이 무척 찬 약이므로 불임여성에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했고, 합환채의 효능을 단순히 공상적인 허무맹랑한 치료라고 공박했다. 이러한 인식은 한의학의 불임치료와 비슷해서 대단히 흥미롭다. 대부분의 불임 치료제들이 자궁을 따뜻하게 뎁혀주는 더운 약들이기 때문이다.

들에서 합환채를 본 야곱의 장남 르우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머니 레아를 위해 선물로 드렸다. 그러나 이를 본 라헬이 합환채를 두고 언니인 레아와 쟁탈전이 벌어지는 풍경은 성서시대에 합환채에 대한 여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결국 라헬은 레아로부터 합환채를 사고 그 값으로 남편 야곱이 언니와 동침할 것을 허락해 준다. 야곱은 합환채의 값으로 레아에게 들어가고 그 값으로 태어난 아들이 잇사갈이다.
또한 합환채는 유대인들에게 눈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인식되어 왔다. 이와관련된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창 29:17)

오누이인 리브가와 라반은 각각 두 아들과 두딸을 낳았는데,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라반은 레아와 라헬을 얻었다. 리브가와 라반은 첫째는 첫째끼리, 둘째는 둘째끼리 결혼시키기로 했는데, 이를알고 레아는 에서와 결혼할까봐 매일매일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력이 약해졌다’고 하는데…

성경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해당하는 유대인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미드라쉬는 게중에 무릎이 쳐지는 탁월한 해설도 있고 때로는 허무맹랑한 해설도 있는데, 성서 해석을 위해 참고할만한 자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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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나무, 상수리나무 이야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종려나무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