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학술

 
작성일 : 24-10-22 10:36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역사적 인간의 세 가지 불치의 병 II : 기념비적 역사


익숙한 것과 예로부터 존경받아온 것을 고수하려는 자는 골동품적 역사가로서 (……) 충성과 사랑으로 자신이 태어나 자라난 곳을 뒤돌아보는 보존하고 존경하는 자 (……) 이런 경건함으로 그는 자신의 현존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는 예로부터 있어 온 것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돌보면서 자신이 생겨난 조건을 자기 뒤에 올 이들을 위해 보존하려 한다-그런 식으로 그는 삶에 봉사한다.


니체는 과거가 지배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 결코 고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세 가지 병을 분류한다. 니체의 의도는 그 역사를 제대로 분석하고 분류하여 삶을 병들게 하는 폐습을 극복하려는 데 있을 것이다. 지난 호(261호)에서 우리는 니체가 분류한 기념적 역사가 무엇이며 실존을 병들게 하고 파괴하는 기념비적 역사관의 위험성도 따라가 보았다. 이어서 두 번째 역사관은 ‘골동품적 역사관’이다. 앞의 인용문에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골동품적 역사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키려는 태도를 지닌 자다. 정의감으로서 충성심과 도덕적 감정으로 사랑까지 보태면서 자신의 현존을 가능하게 했던 환경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보존하려고 한다. 실존에 대한 태도는 감사하는 마음이 지배적이며 과거의 전통을 조심스럽게 관리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잘 보존하는 것을 생존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자신의 역사적 태도가 인류의 삶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확신한다.

과거의 유물들을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영혼’까지 투사(投射)하는 골동품적 역사가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은 역사적-골동품적 존경의 감정이다.”(310) 이러한 역사가에게 과거에 대한 존경과 유지는 과거의 가치를 통해 현재의 생존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이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속감과 연대감의 토대가 된다. 이러한 태도로 볼 때 ‘역사적 가치는 곧 정신적 유산이다.’ 과거에 대한 분석과 비판보다는 과거에 대한 깊은 존경과 숭배가 현재의 삶을 정당화하고 자기 삶의 안정감과 연속성의 조건을 마련해 준다. 니체는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자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이렇게 정리한다. “상속인으로서 꽃과 과실로서 과거로부터 성장하여 그로써 자신의 실존에 대한 해명을 얻고 정당성을 얻는 행복감”(311)이다.

하지만 니체는 골동품적 역사가들이 가장 정당한 실존이라고 확신하고 행복감에 젖어 있는 그 지점을 허구라고 지적한다. 허구일 뿐 아니라 삶의 창조적 생산력을 감소시키거나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존경은 현재 삶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과거에 대한 맹목적 존경은 창조를 향한 의지마저 마비시킬 위험성이 다분하다. 역사에 대한 자기 확신에 대해 니체는 이러한 전제를 제시하면서 그 위험성을 경계한다. “한 인간이나 한 도시 공동체 또는 전체 민족의 골동품적 감각은 항상 제한된 시야를 가진다.”(312) 이 제한된 시야 내에서 과거의 사물과 사건들을 지나치게 존경하고 숭배하므로 새로운 창조 계기인 “생성 중에 있는 새로운 것은 거부당하고 적대시된다.”(312) 이는 과거가 현재의 양분(養分)이 되기는커녕 생존의 지속성을 위협하고 고차원적 삶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창조 의지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창조력 곧 생성의 동력을 하찮게 여길 우려가 매우 농후한 골동품적 역사는 “삶을 보존할 뿐 생산할 줄 모른다. (……) 왜냐하면 생성하는 것을 어떤 것인지 탐지해내는 본능이 골동품적 역사에는 없기 때문이다.”(313)

이렇게 역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삶의 생산력을 얼마나 고양할 수 있느냐와 관련된다. 보존하는 삶과 이에 맞서는 생산하려는 삶은 현실을 전혀 다르게 접근한다. 생산은 엄격히 말하면 부정이며 파괴며 소멸이다. 즉 생산은 곧 새로운 가치의 창출로서 반드시 과거를 파괴해야 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도 파멸의 대상으로 개방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수용해야 한다. 가령 니체가 골동품적 역사가가 “새로운 것에 대한 힘찬 결단을 방해하며, 행위자로서 항상 경건함을 손상하거나 손상할 수밖에 없는 행위자를 마비시킨다”(313)고 할 때, 이는 골동품적 역사가가 역사적 유산을 지킨다는 이름으로 결국 현실 역사를 부정하고 역사의 운동력을 파괴하는 범법자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과거 숭배는 새로운 결단과 새로운 가치 창출에 필요한 능동성과 창조적 에너지를 감소시킨다. 과거 유산에 대한 존경과 숭배는 본질상 과거라는 권위에 억압당하는 경우다. 이러한 틀 속에서는 혁신적인 창조적 발상은 반역으로 간주된다. 과거 유산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이다. 과거에 대한 경외감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창조적 의지를 통제하고 과거에 묶어 버림으로 미래를 위한 결단을 범죄로 간주하겠다는 사악한 발상이다. 이와 같이 골동품적 역사는 창조적 사고와 행위를 억제하며, 결국 미래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현재 삶에 적대적인 반(反)역사적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헛된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의미 있는 삶의 현장이 되려면 인생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영원한 지식이 임할 때 가능함을 지혜자 솔로몬의 충고를 통해 다시 상기해 본다.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 1:13-14)

<265호에서 계속>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박홍기 박사 (주필 철학박사 미국 오이코스대학교 교수)
이메일 : jayou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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