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Luther의 神學 사상에 대한 성경신학적 검토
Martin Luther의 神學 사상에 대한 성경신학적 검토
Ⅰ.서론
Ⅱ.루터 신학의 주제와 목표
Ⅲ.역사적 개관
Ⅳ.루터 신학의 쟁점
Ⅴ.종합적 평가
Ⅰ.서론
1. 問題提起
루터 신학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구원으로 요약된다.
즉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섭리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루터의 신학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첫째, 인간의 구속이 섭리의 목적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목적이 달성된 하나님의 섭리 사역은 끝난 것인가?
둘째,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의 구속을 목적으로 섭리 하셨다면 섭리 역사의 주체가 인간이란 말인가?
셋째, 타락이 인간 자신의 의지결정에 따른 결과라면 하나님의 절대의지에 대한 관념은 타당성이 있겠는가?
넷째,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하나님의 섭리목적은 변경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성경신학적으로 규명되지 못한다면, 구속사 신학은 마땅히 폐기 처분되어야 할 것이다.
2. 硏究目的
16세기 종교 개혁의 기수였던 루터의 신학 사상을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면밀하게 검토 하고자 한다.
첫째, 루터 신학의 업적과 신학적 문제점을 분석한다.
둘째, 구속사 신학의 틀을 형성하게 된 사상적 배경과 신학적 주제들을 검토한다.
셋째, 자유주의 신학 사상의 초석이 된 신학적 주제들을 추적 확인한다.
이러한 연구 작업을 통하여 루터 신학의 근원적 구조적인 문제점을 확인하고 성경신학의 절대성과 진리성에 대한 재인식을 근본적인 목적으로 설정한다.
3. 神學의 論議 目的
1) 어거스틴의 신학 : 교회론적 은총론을 통한 교회의 권위 - 신앙의 의식화
2) 아퀴나스의 신학 : 성례론적 은총론을 통한 교황의 권위 - 신앙의 교권화
3) 루터의 신학 : 칭의론적 은총론을 통한 인간의 구원 - 신앙의 맹목화
4) 칼빈의 신학 : 섭리론적 예정론을 통한 하나님 절대주권 - 신앙의 경건화
5) 자유주의 신학 : 도덕론적 구원론을 통한 인간의 윤리 - 신앙의 도덕화
6) 성경신학 : 언약성취사적 계시론을 통한 神 존재증명 - 신앙의 신학화
Ⅱ.루터 신학의 주제와 목표
1. 主題
루터는 자신의 신학적 기초가 되는 주제를 시편51편에 대한 자신의 강의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밝힌다. “신학의 적절한 주제는 죄를 범하여 저주 받은 인간과 죄인된 인간을 의롭게 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이 주제를 벗어나서 신학에서 논의되거나 질문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오류이며 독약이다” 라고 말했다. 루터는 어떤 특정한 개념들을 그의 칭의론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정립해 나갔다. 이처럼 특수한 그의 신학 방식은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신학적 주제로 설정한다.
2. 目表
루터는 속죄권 매매와 관련을 가진 전통적인 회개의 개념에 반대하였다. 그는 교황의 사죄능력, 죽은 자를 위한 속죄권의 효력, 마리아와 성자들의 공덕이 그리스도의 공적을 보충한다는 로마 교회의 이론과 헌금으로 사죄의 근거를 삼는 것 등을 공박하였다. 루터의 주된 관심은 “내가 어떻게 은총의 하나님을 찾을 것인가?”에 모아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신학의 사변적인 문제 보다는 자신의 체험과 회개의 개념에 입각하여 죄와 죽음에 관한 문제 즉 구원의 은총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는 어거스틴과 같이 하나님의 은총에 신학의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Ⅲ.역사적 개관
1. 시대적 배경
물물교환 체제에서 화폐신용의 경제체제로 전환됨으로써 교황청은 국제적인 화폐 중심지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납세제도와 속죄권 판매등의 여러 가지 수단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도덕적 파멸과 유럽의 국가적 복리를 파멸에 몰아넣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사회적으로 교황청에 대한 반대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 되었고 민족적 자각운동이 일어났으며, 종교적으론 오캄(Ockham)의 교황지상주의에 대한 대항을 출발점으로 위클리프(Wyclif),부스(Hus) 등이 국가적 교회를 지향하는 개혁운동을 전개한다. 이 운동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로 확산되어 파리대학 교수인 마르실리우스(Marsilius of Padua: AD1275-1342)는 그의 저작 ‘평화의 수호자’(Defensar Pacis 1324) 에서 교회와 국가의 주권이 민중에게 있다는 원리를 제시하며 교권주의적 로마 카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교황은 더욱 거침없이 권세를 휘두르며 국가들을 장악한다.이에 대항한 하류계급에서는 염세주의가 풍미하게 되고 묵시 문학적 기대와 함께 미신이 횡행하며 혁명적인 공산주의 이념이 타오르게 되며, 상류계급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Renaissance)운동(AD 1300-1500)이 확산된다. 이 운동은 희랍, 로마 문명의 철학적, 문화적 관념의 재생운동이며 그 원동력은 인간 본성의 본유적인 권리와 가치를 선양(宣揚)하고 향유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르네상스는 문학과 예술의 분야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종교적으로 反기독교적 경향을 나타낸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는 종교를 이교사상과 융합시켜 세계를 새롭게 함으로써 심미적 합리주의를 통하여 기독교 교리를 아주 제거해 버리거나, 초자연적 요소를 제거하여 종교를 도덕주의화 시킴으로서 기독교를 개혁하고자 시도한 운동이다. 이에 발맞추어 과학문명이 발달하게 되었고 망원경,현미경,나침판,시계,화약,인쇄술이 발명되기 시작하였다.1454년 구텐베르크(John Guteberg of Mayence)는 인쇄술을 발명하여 성경과 종교개혁의 서적들을 유럽에 널리 확산시켰다. 뿐만 아니라 유럽 도처에 1000여개의 인쇄소가 생겨났고 유럽 여러 나라에 대학이 많이 세워졌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시작된 것이다.
2.사상적 배경
1) 어거스틴 (Augustine 4C) : 은총의 신학
2) 토마스 아퀴나스 (Th.Aquinas 13C): 공적의 신학. 보편주의적 실재론
3) 둔스.스코투스 (Duns.Scotus 14C) : 실천과학신학 유명론
4) 오캄 (Ockham 14C) : 오캄주의적 근대주의 <유명론(唯名論)>
5) 비엘 (G.Biel 1495) : 오캄주의 신학
6) 종교적 주관주의의 확산 (15-16C) : 경험주의적 신비주의 운동
3.교회개혁의 필요성
1) 중세 말기의 교회부패 : 교황지상주의
2) 르네상스와 인문주의 운동 : 중세적 주지주의에 반하여 양심과 의지를 강조
3) 식민지와 제국간의 불안한 공존
4) 제국의 경제적 재편성
5) 분출하는 사회 변화의 과정 (15C후반부터 시작하여 농민전쟁 때는 절정에 도달)
4.당시 루터 신학의 영향력
1) 루터의 결정적인 복음주의 신학 논문인 “노예의지론”이 르네상스(Renaissance)인문주의의 대가인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을 반박함으로써, 르네상스의 산물인 인문주의를 일소해 버 렸다.
2) 성경을 합리주의적 교회 체계의 기반으로 삼고자 한 소시너스주의(Socinianism)를 배격했다.
3) 재세례파의 형태로 나타난 심령주의를 일소해 버렸다.
IV.루터 신학의 爭點
1.인식론(認識論)
루터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며 영생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지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세적 지식은 이성으로 가능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영적 지식은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그의 [탁상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하고 새로 태어날 때까지 신앙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자연적인 지혜는 신령한 것에 관해서는 혹암이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회개하고 교화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올바르고 영광스런 도구이고 하나님의 役事이다”라고 기술한다. 그리고 신앙의 절대성은 이사야 7장을 인용하여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분별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리라”고 말하면서 이성을 신앙에 복종시키는 신앙지상주의를 주장한다. 이와 같은 루터의 계시관은 자연적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영적 지식은 무조건 믿어야 이해 할 수 있다는 맹목적 신앙에 의한 인식론을 전개하게 된다. 이러한 맹신적인 루터의 계시관은 현재 개혁신학의 인식론으로 수정 비판없이 채택되어 고착화되었다. 또한
루터는 스콜라주의자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신학적 작업에 접근했다. 그러나 자연적 신지식의 문제에 대한 루터의 대답은 불투명하다. 그는 이성이 비록 신성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존재 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선하심, 진노 의로움에 대하여 어떤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이성은 하나님이 모든 것 가운데서 모든 일을 행하시며 모든 것을 예정하신다는 것도 안다. 그러한 지식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성은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것도 이해하거나 알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이성을 의지하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하나님으로 부터 더욱 멀어진다.” 이와 같이 루터는 이중적인 진리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상호대립과 상호공존의 모호한 주장을 한다. 루터는 결국 후대의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구분한 것처럼 자연인의 이성과 중생한 사람의 이성을 구별하지 못했다.
2.성경관(聖經觀)
1) 성경의 구분
루터는 성경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구약을 계명으로 신약을 약속으로 설정하여 구분한다. 구약이 계명이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계명을 통해 인간은 그가 선을 행하는데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의 능력에 절망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또한 신약이 약속이 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계명이 요구하는 것을 주며 율법이 용구하는 것을 충족시켜 준다. 그래서 그것이 계명이든지 계명의 충족이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만 오도록 한다. 그만이 명령하시고 또한 그만이 충족하신다.”이것이 신약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루터의 구분법은 구속사 신학의 전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왜냐하면 구약을 율법서로 이해하여 인간의 타락과 죄성을 알게 하는 율법의 정죄 기능을 부각시킴으로써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고, 하나님의 약속이며 은총인 신약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성경 전체의 맥락이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2) 성경의 권위성
스콜라주의가 성경을 경멸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전통과 성경을 동일시하며 교황의 권위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하여 루터는 성경의 절대 권위를 주장하며 “오직성경”만 이라는 원리를 주창한다. 그러나 16세기 후반의 초기 정통주의 신학자들과는 달리 성경의 축자적 영감설을 전개하지는 않는다.
2) 성경의 명료성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말하기를 한 구절의 내용이 신앙,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등의 중심적인 원리를 증거 하느냐에 따라서 그 명료성을 측정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의 “오직성경”이라는 원리는 “오직신앙” “오직예수”라는 원리를 첨부할 때 바로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루터는 성경의 명료성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구속사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성경을 구속사와 연관된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3) 성경의 가치성
루터는 성경간의 가치를 차등 비교한다. 4복음서 중에서도 요한복음은 예수의 생애보다는 예수에 대한 설교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다른 세 복음보다 훨씬 뛰어나며 선호되어야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예수를 보여주는 내용이 희박한 것은 특히 야고보서 같은 것은 지푸라기 문서로 취급한다. 따라서 루터가 주장한 오직 성경이라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발언은 재고되어야 한다.
4) 성경의 해석방법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은유적, 상징적 해석에 반박하면서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문자적 해석 방법을 채택한다. 그리고 성경은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며 예수의 증언으로 읽으려는 노력을 철저하게 시도한다. 이러한 루터의 해석방법은 성경 비평학의 관문이 된 것은 물론이며, 산상수훈에 대한 해석 방법만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루터는 산상수훈의 내용을 그리스도에 대한 성취적 계시로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윤리의 표준으로 적용 해석함으로써 신앙의 도덕화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3.신관(神觀)
1) 이원론적(二元論的) 구조에 기초한 보상적 신관이다.
루터는 신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중적 구조로서 접근한다. 그는 궁극적 의지와 현상적 의지로 구분하여, 궁극적 의지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hidden will)로서 신비의 범주에 예속시키고, 현상적 의지는 하나님의 계시된 의지(revealed will)로서 인간의 관심 대상이며 이해 가능한 범주로 설정한다. 이러한 주장의 토대는 이원론적 구조에 의한 신인식의 결과이다. 루터가 이러한 논리를 전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유의지에 따른 죄의 책임 때문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숨겨진 의지를 통하여 악의근원, 죄의 주관자에 대한 근원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로 채택하여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하여는 신비요, 계시된 이상의 것을 추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므로 계시된 의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계시된 의지를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으로 수납하여 그 명령을 어긴 인간이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려한다. 결국 루터는 자유의지의 有無와 그 책임에 있어서 분명한 입장과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인간에게 악을 행할 의지가 있고 선을 행할 의지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른 악행의 책임은 당연히 인간에게 부과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루터의 신관은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신관을 형성하여 신앙의 맹목성을 탈피하지 못하며,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를 도덕적 신관으로 이해하여 신앙의 도덕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루터 신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惡에대한 성경적 관념을 정립하지 못한데 있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어거스틴과 같은 입장이며, 결국 이원론적(二元論的) 논리 체계를 형성 하게 된다. 이러한 루터의 신관은 현세와 내세에 관하여 “이제와 세상 끝까지 그의 모든 사역은 無,즉 가티없고, 멸시받고, 비참하고, 죽은 것에서 부터 귀중하고, 영예롭고, 축복되고 살아있는 것을 만드는 사역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현세에서는 고난, 핍박, 가난이 주어지지만 참고 견디면 내세에서는 견줄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이 보상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루터의 이원론적 사고는 종말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현실 부정적이며 내세지향적인 타세주의적 종말관을 형성하게 된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역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경외하려 하심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곤고한 날도 주시고평탄한 날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주어지는 현실의 삶은 모3든 것이 아름다울 뿐이다. 왜냐하면 현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고, 깨달은 만큼 하나님을 찬송하는 천국의 삶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2) 구속사 신학에 기초한 은총적 신관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속성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철저하게 구속사 중심의 신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신지식을 일반적 지식과 특별한 지식으로 분류한다. 즉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일반적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 사실창조, 심판에 대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구속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한 특별한 지식은 인간이 죄와 사망에서 구속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시고, 뜻하시고, 무엇을 주시고, 행하실 것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지식인 것이다. 이것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참지식이라고 주장한다.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 역사의 영역에 계시된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구원에 관계된 하나님만을 아는 것이 참지식이라는 루터의 주장은 하나님의 속성을 축소시켜 은총적 자비의 속성만을 강조하게 되는 편협된 신관을 형성하게 된다.
3) 맹목적 인식에 기초한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신관이다.
루터의 구속사 신학의 한계는 몇 가지 명제에 의ㅐ해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와 해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사변을 금하고 있다.“왜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도 하시고 강팍하게 하시는 지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은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정에 관해서도 토론을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토론이 시작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유혹이 불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예정을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찬양하는 것을 멈추고 모독하지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정에 대한 탐구보다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을 갖고 살 것을 당부한다. 루터는 섭리의 목적을 인간의 구속에만 편중시켜 이해한 결과 깨달아야할 섭리의 근본적인 목적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이 섭리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이루는 섭리 방법의 기초가 하나님의 예정이다. 이처럼 중요한 원리들을 이해하지 못한 루터에게 있어서 예정론은 난해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루터는 원천적인 봉쇄를 위한 수단으로 “신비”라는 방패 막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은 근원적인 치유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결국 루터 자신에게 있어서도 불가지론적 신관에 의한 맹목적 신앙을 형성하게 된다.
4.인간관(人間觀)
루터의 인간관은 그의 노예 의지론에서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에게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주장한다. 이에 대한 루터의 주장은 사람들의 자유는 이 세상일들에 관계해서만 적용되는 것이지,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문제들의 관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루터는 “두 종류의 필연에 대한 스콜라주의적인 구분을 사용한다. 절대적 필연(결과를 가져 오는 자의 필연성)과 조건적 필연(결과 되어 진 것의 필연성)이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이 만물의 원인이라는 이해와 하나님이 일으킨 일들의 하나가 결정 내리는 인간의 자유라는 이해를 다 유지하기위한 구상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결정론의 위험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루터는 자유의지와 속박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가롯 유다의 예를 인용한다. 유다가 필연적으로 예수의 배신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그런 식의 행동을 강제에 의해서 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의지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자유의지를 반박하면서도 결정론에 따른 책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원론적(二元論的) 모순에 빠져들게 된다.
5.구원관(救援觀)
루터는 롬1:17을 근거로 하여 구원론을 구축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직 신앙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 義는 전가된 義이며, 종말론적인 義요, 구원론적인 義요, 절대적인 은총이다. 루터의 구원관은 철저한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러나 그의 논문「교회의 바벨론 감금」을 통하여 또 다른 내용을 기술한다. 그는 세례를 하나님의 약속으로 간주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16:16)고 하는 것이다. 이 약속은 행위, 서약, 수도단 및 인간이 만들어낸 일체의 모든 화려함 보다도 훨씬 위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구원이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일단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루터의 세례관은 로마 카톨릭의 세례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자신의 이론을 무색케 하고 있는 것이다.
6.율법관(律法觀)
루터의 율법관은 구원의 확증이요 성도생활(生活)의 표준이라고 말한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죄를 더할 뿐이다.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율법의 요구들을 감당할 수 있고 율법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을 갖게 되며 두려움이나 강제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고 그의 「로마서 서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롬7:14에서 바울은 율법을 영적(靈的)으로 부른다. 율법이 구체적이고 그러한 마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며 그 영(靈)은 우리로 하여금 율법의 요구들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든다.” 이와 같은 루터의 주장은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켜야 되며, 지킬 수 있다는 논리적 모순으로 귀결된다. 또한 율법을 통한 선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공박한다.“믿음은 행해야 할 선행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질문이 던져지기 전에 선행을 이미 행하고 계속해서 선행을 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활동적이 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그의 율법을 통한 선행관은 산상수훈에 대한 해석에서 확신에 찬 주장을 피력한다. 그는 먼저 산상수훈에 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해석과-이 세상 가운-데서 사는 동안은 산상 수훈의 내용을 완성할 수 없다. -재세례파의 해석 “산상수훈과 현실적 삶은 서로 대립되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정면으로 거부한다. 루터는 산상수훈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성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루터의 율법관은 율법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율법을 성도 생활의 규범적 표준으로 설정하는데 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하여 극단적인 이해를 하게 된다.율법은 정죄 기능을 부각시켰고 복음은 사죄 기능을 부각시킴으로서 율법과 복음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성경 신학적 관점에서 율법은 복음의 모형이며, 복음은 율법의 실체인 것이며 율법의 기능 속에는 정죄와 사죄의 기능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율법관은 율법은 복음과 반대적 개념이고 또한 생활의 표준적 규범이며, 복음은 구속의 방편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수정 없이 무비판적으로 흡수됨으로써 개혁 신학에 결정적인 오류를 초래했다.
7.교회관(敎會觀)
루터의 로마 카톨릭에 대한 철저한 반박중의 하나가 그의 교회관이다. 그는 1519년 일곱 성례전을 세 성례전-세례, 회개, 성찬-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복음)과 신앙에 근거하여 성례전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개에 관해서는 로마 카톨릭의 고해성사를 행위에 의한 義요, 괴로운 양심을 고문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해성사란 사제가 용서의 말씀을 베풀고 복음의 은혜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때 복음을 듣고 받아들임이 곧 신앙적 참 회개이다. 그리고 신앙으로 인한 죄의 용서를 확실히 믿어야 한다. 이처럼 은혜는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적인 관계의 개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로마 카톨릭의 교회관을 공박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성경 신학적 입장에서 검토해 본다면, 루터의 세례관, 성찬관은 논박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세례관에 있어서도 구원의 효능이 실제로 세례를 통하여 발휘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또한 성만찬에 있어서도 루터는 로마 카톨릭의 화체설은 반대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봉헌된 요소들 안에 현존하신다고 가르쳤다. 이와 같은 주장은 그리스도의 편재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편재성을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이 연합된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특정한 위치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교황의 속죄권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만인 평등권을-만인제사장-주장했으며, 국가관에서도 영적 정부의 권위를 세속정부가 타파하기를 외치면서 정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는 개혁의 참신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제 2 장 본론 : 비판적 검토
제 1 절 계시와 성경
1.계시
루터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며 영생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지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세적 지식은 이성으로 가능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영적 지식은 신앙으로만 가능한 것이라고 그의 「탁상담화」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중생하고 새로 태어날 때까지 신앙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자연적인 지혜는 신령한 것에 관해서는 흑암이요, 아무것 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 회개하고 교화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올바르고 영광스런 도구이고 하나님의 役事이다.”(P49)라고 기술한다. 그리고 신앙의 절대성은 이사야 7장을 인용하여 “만일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분별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리라.”고(P48) 말하면서 이성을 신앙에 복종시키는 신앙지상주의를 주장한다. 이와 같은 루터의 계시관은 자연적 이성으로 알 수없는 영적 지식은 무조건 믿어야 이해 할 수 있다는 맹목적 신앙에 의한 인식론을 전개하게 된다. 이러한 맹신적인 루터의 계시관은 현재 개혁신학의 인식론으로 수정 비판 없이 채택되어 고착화되었다.
2.성경
루터는 성경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구약을 계명으로 신약을 약속으로 설정하여 구분한다. 구약이 계명이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계명을 통해 인간은 그가 선을 행하는데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의 능력에 절망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P50)또한 신약이 약속이 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계명이 요구하는 것을 주며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충족시켜 준다. 그래서 그것이 계명이든지 계명의 충족이든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만 오도록 한다. 그만이 명령하시고, 또한 그만이 충족하신다.”(P51)이것이 신약이라고 주장한다 . 이러한 루터의 구분법은 구속사 신학의 전형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왜냐하면 구약을 율법서로 이해하여 인간의 타락과 죄성을 알게 하는 율법의 정죄 기능을 부각시킴으로써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삼고, 하나님의 약속이며 은총인 신약의 내용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성경 전체의 맥락이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 “성경은 성경에 의해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해석학의 기본적인 명제를 채택한다. 그러나 해석의 방법에 있어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독자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 방법을 반박하며 문법적, 문자적 해석방법을 채택한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성경을 문법적 역사적 신학적 방법에 의해서 해석하는 전통신학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치되게 된다.
제 2 절 하나님 (신(神)관념)
1. 구속사 신학에 기초한 은총적 신관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속성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철저하게 구속사 중심의 신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신지식을 일반적 지식과 특별한 지식으로 분류한다. 즉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일반적 지식은 하나님의 존재, 사실 창조, 심판에 대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구속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특별한 지식은 인간이 죄와 사망에서 구속 받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시고, 뜻하시고, 무엇을 주시고, 행하실 것에 대하여 알 수 있는 지식인 것이다. 이것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참지식이라고 주장한다.(P71) 올바른 지식은 하나님의 모든 섭리 역사의 영역에 계시된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구원에 관계된 하나님만을 아는 것이 참지식이라는 루터의 주장은 하나님의 속성을 축소시켜 은총적 자비의 속성만을 강조하게 되는 편협된 신관을 형성하게 된다.
2. 이원론적 구조에 기초한 보상적 신관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한 신관을 정립하는데 이원론적 구조로서 접근한다. “ 이제와 세상 끝까지 그의 모든 사역은 無, 즉 가치없고, 멸시받고, 비참하고, 죽은 것에서 부터 귀중하고, 영예롭고, 축복되고 살아있는 것을 만드는 사역이다.”(P77) 라고 말한다. 그래서 현세에서는 고난, 핍박, 가난이 주어지지만 참고 견디면 내세에서는 견줄 수 없는 영광과 축복이 보상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루터의 이원론적 사고는 종말관을 정립하는데 있어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현실 부정적이며 내세지향적인 타세주의적 종말관을 형성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경외하려 하심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곤고한 날도 주시고 평탄한 날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주어지는 현실의 삶은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이다. 왜냐하면 현실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우고, 깨달은 만큼 하나님을 찬송하는 천국의 삶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3.맹목적 인식에 기초한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신관이다.
루터의 구속사 신학의 한계는 몇 가지 명제에 의해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와 행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사변을 금하고 있다. “왜 하나님은 때때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도 하시고 강팍하게 하시는 지에 관하여 질문하는 것은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85)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정에 관해서도 토론을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토론이 시작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유혹이 불같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정을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찬양하는 것을 멈추고 모독하기 시작한다.”(P86)는 것이다. 그래서 예정에 대한 탐구보다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을 갖고 살 것을 당부한다. 루터는 섭리의 목적을 인간의 구속에만 편중시켜 이해한 결과 깨달아야할 섭리의 근본적인 목적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심이 섭리의 목적이며, 그 목적을 이루는 섭리 방법의 기초가 하나님의 예정이다. 이처럼 중요한 원리들을 이해하지 못한 루터에게 있어서 예정론은 난해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들 앞에서 루터는 원천적인 봉쇄를 위한 수단으로 “신비”라는 방패막을 사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처방은 근원적인 치유가 될 수도 없을뿐더러, 결국 루터 자신에게 있어서도 불가지론적 신관에 의한 맹목적 신앙을 형성하게 된다.
제 3 절 ː「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 」
1. 동기와 목적
AD1520년에 쓰여진 이 논문에서 루터는 특히 세속정부들로 하여금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는데 주도권을 취하도록 권유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영적 계급이 세속적 계급보다 더 우월하다는 중세적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문에 언급된 교회의 부패상에 대하여는 인문주의자들과 개혁자들에 의해 똑 같이 공격을 받았으며 사실 그것들 가운데 다수는 후대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도 반론되기도 했다. 특히 이 논문은 극도로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타락상에 대하여 본질적인 개혁의 요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 요약 및 평가
로마 카톨릭 교회는 교황 지상주의를 구축하고 실현해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세 가지 담 (城壁Mauer)을 쌓아놓고 자신들을 방어하며 정당화 시켜왔다. 고착화된 교황제는 부패의 원인이 되었으며 아무도 그들을 개혁 할 수 없었다. 그들이 구축해 놓은 세 가지 방어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는 영적 권위자들이 세속 권위자들 보다 우월하다.
둘째, 교황만이 최종적으로 성경을 해석 할 수 있다.
셋째, 교황이 교회의 회의들 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한 루터 역시 다양한 주제들을 세 개의 벽을 가진 그림으로 요약하였다.
첫째, 영적 계급(성직자들, 수도사들)이 세속계급(평신도들)보다 우월하다는 중세적 이층교회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모든 크리스찬들은 영적 계급에 속하며 그들 가운데는 직무상의 구별 외에 아무차등이 없다. 그리고 모든 세례를 받은 자는 제사장이라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창했다. 이와 같은 루터의 주장은 중세적 이층교회관을 반박하는데 기여 하였다.그러나 세례의 권위를 부각시키다가 교리적 혼선을 일으키게 된다.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 그리스도 공로와 세례를 함께 채택하며 동일한 신적 권위를 부여한다. 이와 같은 원인은 세례를 구원의 방편으로 오해 한데서 기인된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하는 의식적 표시에 불과한 세례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이와 같은 루터의 세례관은 어거스틴의 세례관과 일치되며, 전통신학과는 그 맥락을 달리한다.
둘째,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해석자인 교황은 신앙 문제에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성경에 대한 유일한 교사이며 권위자라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베드로에게 열쇠가 주어질 때 성경 해석의 권능도 함께 주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교황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하사한 열쇠는 교리나 통치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고 다만 죄를 매고 풀기위한 것이며, 그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 교중에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루터의 주장은 로마 카톨릭의 교황무오설과 성경해석권에 대항하는 개혁의 명분으로는 타당하지만 신학적 근거가 되기는 미흡한 것이다. 왜냐하면 열쇠에 대한 해석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이나 -교황의 무오성과 성경 해석권의 근거로 삼음- 죄를 매고 푸는 기능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루터의 주장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열쇠의 의미는 베드로가 고백한 “主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라는 내적 신앙의 고백을 지칭한 것이지 외형적, 가시적인 열쇠 자체에 권위를 부여한 것도 아니고, 열쇠가 죄를 정하고 사하는 기능을 소유했다는 뜻도 아닌 것이다.
셋째, 공의회를 소집하거나 질의를 확인하는 것이 홀로 교황에게만 속한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주장에 대하여 루터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을 제시하며 교황지상주의를 반박한다. 루터는 권위에 대한 설명을 위하여 고후 10:8“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위를 주신 것은 그리스교의 파멸을 위해서가 아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교황의 오만한 권위를 반박한다. 그러나 루터는 권위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법적 제도적, 정치적인 관념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적 권위의 개념은 인간 자체에게 부여된 법적 권위가 아니다. 바울은 말씀의 권위가 전제된, 말씀에 의한 말씀의 권위를 말하는 것이다. 루터는 세 가지의 담, 즉 만인 제사장권과 세례의 효능, 열쇠의 기능과 권위의 용도를 통하여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구축된 교황의 절대권, 해석권, 무오성을 허물어버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몇 가지의 신학적 문제가 아쉬움을 준다.
V.종합적 평가
1. 긍정적 평가
1).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적, 제도적, 권위적, 인위적인 종교관을 반박하고 말씀에 의한 개혁적, 비제도적, 평등적, 자의적인 복음적 신앙관을 확립했다.
2).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과 교황 권위를 반박하며 성경 자체의 권위를 주장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사용하는 문자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을 주신 것이므로 성경만으로도 충분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말로만 듣던 성경, 교권의 전유물이던 성경을 누구나 다 직접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루터의 공헌이다.
3).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의식과 제도에 길들여진 교회의 기능을 타파하고 말씀을 중심한 교회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 부정적 평가
1). 신학의 목표가 인간학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이어바흐(L.A.Feuerbach)는 이렇게 말한다.“신학은 오래 전 인간학이 되었다. 그것은 개신교 자체 특히 루터가 그것 자체로서의 신으로 부터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신으로 관심을 옮겨간 이후의 일이다” 이와 같은 이유는 루터 신학의 주제와 목적이 하나님의 계시와 신인식에서 이탈되어 인간의 구속에만 편중된 결과이다.
2). 루터의 미숙한 성경관은 비평학의 관문이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성경과 전통이라는 이중입장을 물리쳤지만, 성경의 저자에 관한 것이나 성경 각권 서로 사이에 가치의 차를 인정함으로서 비판학에 문을 열어 놓았다.18세기 중반부터 출현한 역사비평은 성경과 역사를 나란히 세워 도리어 역사의 권위를 가지고 성경을 심판하고 재편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20세기 신학의 위기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데 있다.즉 성경은 문서, 문헌, 설화, 문학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결정적인 단서를 루터가 제공하게 된 것이다.
3). 문자적 성경해석에 의한 은총적 구원관은 구속사 교리를 형성하게 된다.
루터의 신학은 타락한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총을 신학적 주제와 목표로 설정한다. 그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경의 모든 주제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건과 연관된 해석을 통해서 인간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다. 루터의 성경 접근 방식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 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어떻게 구속하였으며, 구속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인간 중심의 주관적 방식을 채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채택된 구속사 교리의 취약점은 첫째로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논리적, 체계적,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둘째로 계시의 목적보다는 계시의 방편에 치중함으로써 하나님존재의 확실성을 입증하기가 모호하며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신앙생활의 방식도 기형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첫째로 모든 만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움에 의미와 가치를 두지 않고, 현세 보다는 내세에 가치와 소망을 두는 타세주의적 경향을 나타낸다.둘째로 삶의 태도에 있어서, 성도의 윤리적 생활을 구원의 확증에 대한 잣대로 인식하여 과도한 열심과 극단적인 행태를 연출하게 된다. 이러한 루터의 신학은 개혁 신학의 신학적 정립을 체계화하는데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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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틴루터 (지원용 역) 종교개혁의 3대논문 컨 골 디 아 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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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전통과개혁 장 신 대 출 판 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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