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개혁을 제창한다 (1)
한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가 충분히 이루어져 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을 찾아 개혁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데도 합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찾는다 해도 해결할 방안을 구축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의 개혁교회가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처방법을 여러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으나 지엽적인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가 무너져 내리는 현장을 보면서 의아해 할 뿐 속수무책이다. 집이 무너지는 것은 낡거나 기초가 약하지 않으면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이다. 그 어느 경우라도 무너지는 집을 그대로 일으켜 세울 수 없다.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서 해결한 다음, 정석대로 새롭게 지어야 하는 길 밖에 없다.
삼년 전에 본 연구소는 교회체제 개혁을 제창한 바 있다. 이어서 이제는 교회교육개혁을 제창한다. 교육개혁이 체제개혁보다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개혁의 순위가 뒤바뀐 듯 싶다. 그런데 기존의 체제로는 교육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교회는 교육에 의해 교회체제를 이루어가야 올바로 세워진다. 앞서 단행한 교회체제개혁은 교회교육개혁을 위한 상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교회교육개혁 없이 건전한 교회를 기대할 수 없다. 늦어지면 늦어지는 만큼 무너짐의 상처가 커질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는 구교를 비롯한 세속주의의 도전을 받으며 온갖 시련 속에 명맥을 겨우 이어왔다. 거짓된 사교집단(邪敎集團)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융성하고 있다. 진리를 지켜야 할 개혁교회는 폭풍 앞에 꺼져가는 등불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절대로 좌절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꺼져가는 등불을 마저 꺼버리지 아니하신다. 비록 낡은 교회가 무너진다 해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고 조금이라도 남겨 놓으신다. 그리고 무너뜨리신 후에 반드시 다시 세우셔서 능력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고 드러나는 교회의 온갖 치부를 들추고 싶지는 않다. 치부를 들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므로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잘못된 진리를 수수방관하게 하지 아니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거짓된 교회가 흥한다고 해서 그것을 방관하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인내가 방관하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교회가 잘못된 길을 가서 무너질 때나, 옳은 길을 가며 흥할 때나 모든 경우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외형적으로 흥하고 패하는 것으로 진위를 분간할 수 없다.
개혁교회는 성경적 기초가 너무 부실했던 점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타락한 세계의 온갖 시련을 통해 세워져 간다. 교회 완성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함께 완전하게 세워진다. 몇 십 년이나 몇 세기만에 세우시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성급하게 세우면 반석이 아닌 모래 위에 세우는 꼴이 된다. 서구교회가 바로 그 선례를 보여주었으며, 현재의 한국교회가 그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말씀의 기초 위에 세우신다. 인위적으로 세운 교회는 당연히 무너지게 되어 있다. 기초가 부실하면 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무너지는 근본 원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간과하면 교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놓치게 된다.
여기에 교회교육개혁을 제창하는 이유가 있다. 교회교육은 교회설립의 근간(根幹)이다. 교회교육은 교회의 터를 견고히 다지는 기초공사이다. 그리고 교회를 세울 재목을 가다듬는 작업이다. 이를 간과하면 모래 위에 부실한 재목으로 세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개혁교회 위기의 원인이 교회교육의 총체적 부실함에 있다. 세계교회는 물론이며 한국교회 역시 그러하다. 곧 교육내용을 비롯하여 성경교사와 교육방법 등이 모두 성경적 기초에 철저하지 못하다. 여기에 개혁교회 위기의 근본 원인이 집중되어 있다.
현대의 개혁교회는 성경이 아닌 철학적인 교리에 치중하여 가르쳐 왔다. 개혁신학이 지금까지 성경 전체의 참 뜻을 밝혀내지 못한 결과이다. 교리는 성경에 근간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 성경을 모르고 만들어진 교리는 철학이 신학의 옷으로 변장한 인본주의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의 근본 뜻을 모르는데 건전한 교리 및 신학이 있을 수 없다. 교회 교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다.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신학이 성경보다 우월한 학문으로 착각하게 한다. 교회를 세우는 유일한 계시진리인 성경이 푸대접을 받는다.
성경 진리와는 상관없이 목사들은 자의적으로 가르치며 교회를 세운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아도 외형상 교회라는 모습에 대해 온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구교의 교리를 가르쳐도 되고 장로교나 감리교 교리를 무분별하게 가르쳐도 된다. 오순절 교리는 물론 성경과 동떨어진 사적인 견해를 가르쳐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 성경을 가르치면 들으려하지 않는다. 세속적인 말을 더 재미있어 하고 세상에 관한 잡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 목사 이름으로 노래만 잘 불러도 소위 은혜가 충만하다. 코미디언 출신의 목사가 웃기기만 잘해도 교회가 부흥된다. 그리고 헌금이 많이 모여 교회는 큰 사교(社交) 집단을 형성한다. 이를 성공한 교회라고 인식하여 허다한 교회들이 답습한다. 이는 모두 교회 교육의 부실함에 기인한 결과이다. 이제는 그와 같은 치졸한 인위적 방법이 별무소용인 시대가 되었다. 잘못된 것임을 신학자들도 알고 목회자들은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성도들과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지고 있다. 허다한 무리가 속았다는 사실에 큰 허탈감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여기에 교회교육개혁의 당위성과 시급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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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재)성경신학연구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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