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교육개혁을 제창한다 (2)
현대 교회 교육내용의 세속화를 단호히 경계한다. 현대 교회는 교단에서 가르치는 교육내용이 성경 중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일부는 성경보다 철학에 가까운 신조나 교리에 관한 교육에 치중하는가 하면, 인륜적인 도덕이나 상식적인 교훈에 치우쳐 교육하기도 한다. 조금 심하게는 사회정의를 외치며 가르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신령하다고 자처하는 교회는 신비적 체험이나 인위적 카리스마에 의한 맹신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지금까지 성경의 참뜻을 모르는 결과로 빚어진 부산물이다. 절대불변의 진리인 성경의 참뜻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묘연한 상태이다. 다만 다양한 견해가 난무할 뿐이다. 심하게는 신화나 여러 고대 문서들을 편집해 놓은 것이라는 문서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성인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가하면 성경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단정하는 자들도 있다. 급기야 각자가 알아서 해석해도 무방한 것처럼 방관하기도 한다. 때로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내용 중에 하나인 교리는 반드시 성경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교리 형성과정을 보면, 먼저 성경을 바르게 깨닫게 되면 믿어지게 된다. 그 믿음의 조항들을 신조(信條)라고 하며, 그 신조에 의해 교리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교리에 따라 논리적으로 조직화한 이론을 교의신학이라 일컫는다. 따라서 성경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형성된 교리나 교의신학은 건전하지 못하며 모순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서구에서는 이미 교리에 의한 교의신학의 한계를 느끼고 일찍부터 폐기처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한 지역에서 아직도 부실한 교의신학을 중시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성경 교사를 양성해야 하는 전문교육기관에서 부실한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로 인해 신학은 고상한 학문이고, 성경은 초보적인 학문으로 착각하게 한다. 부실한 신학만을 배운 자가 성경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확실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내용의 하나인 도덕은 인간의 보편적 상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편적 상식은 절대적 진리와 차별화된다. 따라서 도덕은 시대나 지역 또는 문화적 여건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절대자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과는 판이하게 차별화 된다. 도덕이 인간의 상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라면,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다. 상대적 기준에 의한 도덕적 내용을 교회교육의 내용으로 삼는 것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우며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교육내용 가운데 사회정의 역시 인간세계의 보편적인 사회적 이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회적 이념은 시대나 지역 또는 민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공산주의이념이나 자본주의이념 역시 그러하다. 모두가 인간의 처지와 성향에 따라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적 사회정의와 혼돈될 수 없으며 절대적으로 차별화된다. 그러기에 사회정의는 건전한 교회의 교육내용으로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교회는 가변적인 사회정의를 외치거나 가르쳐서도 안 된다.
끝으로 신비적 체험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비적 체험을 중시하는 신비주의는 그 동기와 원인 및 결과에 대한 견해가 분명하지 않다. 따라서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신비적 체험을 중시하는 신비주의자들의 경험에 의한 주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닌 것을 교육내용으로 삼게 되면 생각의 혼란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행동의 무질서를 초래하게 되어 파멸에 이르게 된다.
현대 교회는 부실한 교리나 도덕 및 사회정의 또는 신비적 체험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절대권위를 지닌 성경진리 터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자처한다. 주초를 금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믿는 자로 여긴다. 교회의 모든 집회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를 잘하며 목사님의 지도에 잘 따르면 믿음이 좋다고 인정받는다. 도리어 대부분의 이단 교주들은 성경을 빙자한 이론으로 커다란 사교집단을 형성한다. 한국 교회는 사교집단의 공격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다.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 무리를 져서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성경진리 터 위에 세워지지 아니한 당연한 결과이다.
앙상한 교리나 도덕 및 사회정의 또는 신비적 체험 등을 가르치는 신학전문기관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제라도 현대 교회는 제사의식을 집례하려고 꾸며놓은 제단(祭壇)을 성경을 가르치는 교단(敎壇)으로 바꿔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기 위한 교회당을 제사를 수행하는 제단으로 변조해서는 안 된다. 교회당은 주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며 믿는 것과 아는 것으로 하나 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처소일 뿐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신전과 같은 특정한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성경을 깨달은 자라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라도 가능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세 사람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도 그 곳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계시하려고 언약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신 섭리내용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언약대로 이루시는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시려고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언약하신 내용이다. 그리고 신약은 언약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어 성취해주신 것을 계시하신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신·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신 내용이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고 경외하며 찬양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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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재)성경신학연구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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