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치는 첫번째 편지
인도 행 비행기를 타기 전, 목사님들 및 용돈을 보내주신 몇몇 집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한 집사님께선, 너희 아버지가 선교하러 간다셨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니가 간다니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며 우셨습니다. 교회에서의 마지막 일요일에 한 석달치의 눈물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어떤 권사님께선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면부지의 관계임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이. 지체들이 있다는 것의 충만함을 마음껏 느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펼친 성경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구절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였습니다. 다정하지도 온화하지도 않은 그 일방적인 말씀이 가슴에 사무쳐 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비행은 너무나 길고 지루했습니다. 새벽에 인천공항에 오느라 네 시간 동안 버스를 탄 후에 시작된 비행이라 더 고되었습니다. 대여섯시간 후 경유지 홍콩에 도착해 거의 세 시간을 내리지도 못하고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맛이라곤 없는 기내식을 먹고 또 여섯 시간 가까이를 가니 그제야 인도였습니다. 긴 시간 입국심사대에 머물다가 부목사님과 인도인목사님을 만나 또 한 시간을 차를 타고서야 제가 살 집에 도착했습니다. 향후 80년간은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인도의 겨울. 한국에 비해서는 꽤 따듯합니다. 칼바람이나 영하의 온도도 없구요. 그러나 실내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고로 난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굉장히 춥습니다. 두툼한 슬리퍼와 난로 없이는, 늘 발이 얼어서 견디기 힘들어요.
모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요. 처음엔 혼자 악악 비명을 질러대며 두꺼운 책을 던지며 잡았는데, 장난감처럼 생긴 전기충격 베트민턴 라켓을 휘두르면 깨끗하고 간편하게 처치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곤 해도 매일 기본 일곱 마리의 모기와 조우(!)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에요. 다리들은 얼마나 혐오스럽게 긴지. 얼마 전엔 잡아도 잡아도 화수분 속에 넣어둔 마냥 무한 증식하는 모기들 때문에 한 시간 단위로 잠에서 깼다가, 새벽 여섯시가 되었을 때 천장에 붙어있는 스무 마리의 모기를 보고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다음날 허겁지겁 모기장을 침대 주변에 설치했는데 일요일 아침, 모기장을 들추고 비몽사몽 나오다가 발등에 노트북을 떨어뜨려 지금까지 절뚝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이곳은 동물과 벌레의 천국입니다. 욕실에서 쓸 새 비누의 포장을 뜯었더니 죽은 바퀴벌레가 붙어있어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구요. 심지어 욕실의 더운물은 3분 정도밖에 안 나와서, 샤워를 하다가 온몸의 살들이 얼어붙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도로에 차를 타고 가다보면 소는 기본이요 개, 양, 버팔로, 염소, 돼지, 다람쥐 등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2주가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모든 가격이 정찰제인 이곳은 물가도 한국과 거의 비슷합니다. 인도 하면 오지, 후진국 등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물가도 싸리라고 생각들을 하는데요 전혀 아닙니다. 사과 작은 거 일곱 알에 약 8천원, 우유가 1천 5백원, 샴푸가 8천원… 왜 이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인도목사님께서 인도에 싼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심에는 아파트와 쇼핑몰이 흔하게 널려 있어요. 그 도심의 도로엔 위에서 말씀드린 동물들이 거닐구요.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나라가 바로 인도가 아닐까 합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인도음식이 입에 맞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기름에 쩔어 있거나 짜거나 독특한 맛이 나거나 하지만 즐겁게 잘 먹습니다. 고기를 잘 먹을 수가 없어 허덕허덕거립니다. 처음 한 주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고 허기가 지더라구요. 그게 고기를 안 먹기 때문이라고 한 선교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잘 맞았다’라고 과거형을 쓴 것은 어제부터 슬슬 물리기 시작한 탓입니다. 칼국수와 삼겹살과 떡볶이 생각이 간절합니다. 인도음식이 체질이라고 까불었더니 혹시나가 역시나였습니다. ㅠㅠ
아무튼, 저는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건 말씀도 못 드렸는데 벌써 지면의 끝이 보이네요. 인도에 있는 동안은 영화나 책을 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현지 선교에 대한 보고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에세이 형식의 칼럼으로 1년 간 진행하고자 합니다. 걱정하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다음 신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