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치는 두 번째 편지
매일 그리고 매주 마다 갖고 있던 느낌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해서, 다음 달에 쓸 내용을 미리 구상해두었던 게 시쳇말로 ‘삽질’이었던 것 같아 조금은 힘이 빠집니다. 충만한 성령의 기운(!)으로 그 때 그 때 쓸 말을 생각나게 해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은 일단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저는 두 교회의 ‘간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거창하지요? ^^ 저는 아직도 제가 애 같고 고로 철이 없는 데다 덤벙대기까지 하여 영 미덥지가 못한데 이곳 사람들은 저를 간사님, 혹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저를 불러줍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꺅!’ 소리를 지릅니다. ㅋㅋㅋ
인도 임마누엘 교회는 델리와 구르가운이라는 두 지역에 자리해 있습니다. 제 동선을 따라 말씀드리자면, 일단 아침 8시쯤 집을 나와 한 시간 정도를 차를 타면 델리에 도착합니다. 그 곳에서 교사들을 위한 1부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대예배 시간인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약 사십 여명 가량의 초등학생을 가르칩니다. 점심을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먹고 난 후, 12시부터 1시까지 중고등부를 가르칩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를 타고 1시간가량 이동하여 또 초등부 80분, 중등부 60분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오후 4시 30분 쯤 제 모든 일정이 끝나고, 또 두 시간 차를 타고 돌아오면 일요일이 거의 저뭅니다. 물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인사불성이 되어 목이 이리 저리 꺾이며 곯아떨어지지요. 즉 일요일 하루에 차를 타는 시간이 총 4시간, 가르치는 시간이 거의 5시간 정도 된다는 겁니다 으흐흑.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몸은 그렇게 고되어도 가르치는 순간만큼은 신이 나고 즐겁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겠다며 걱정스러워 하셨는데 그 때 엄살을 좀 부려볼 걸, 팔팔하니 걱정 마시라고 너무나 듬직하게 대답했더랬습니다.
초등부 고학년 아이의 학부모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 나는 성경에 그런 얘기들이 있는지 몰랐다? 너무나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한다고. 아이가 무척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오늘까지 직접 다섯 분 정도에게 들었습니다. 저 잘하고 있는 거지요?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어찌됐건 저는 말씀운동에서 파송을 받아 대표로 왔고, 제 뒤에는 말씀운동과 성경신학, 박용기 목사님 그리고 아빠, 동산교회… 줄줄이 줄줄이 따라오는 게 많다고 (혼자) 부담을 갖고 있었거든요. 행여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안 좋은 말이 나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습니다. 저 혼자면 괜찮다지만 말씀운동 가문에 먹칠이라니 불미스럽잖아요.
사실 아이들에게 이 ‘진리’의 말씀을 명징하게 심어주기 위한 초반 작업이 좀 힘들었거든요. 배우는 학생들은 그들대로 자기가 배워왔던 것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갖고 있고, 저는 저대로 진짜 진리를 심어놓기 위해 사명을 갖고 있고. 이 둘이 충돌하고 깨어지고 부서지다 조금씩 섞이기 시작하는 과정이 가장 조심스럽고 애가 탔습니다.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 인정하고 이해해주면서 그들의 울타리로 내 것을 힘 있게 밀고 들어가는 일.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입술이 바짝 바짝 마르더라구요. 결과를 보니 성공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언약대로 이루시는 분 여호와. 여호와라는 이름과, 그 이름을 증거하는 성경을 가르치면서 저는 참 많은 ‘소름’을 경험했습니다. 꼬박꼬박 말대꾸 하고 농치기 바쁜 시끄러운 꼬마 녀석들이 어느 순간 빨려들듯 집중할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를 필기하겠답시고 바쁘게 펜을 움직일 때. 시큰둥하고 예민하던 사춘기 학생들이 깔깔 웃으며 강의를 듣고, 속사포처럼 질문들을 던져 올 때. 그러나 가장 크고 무서운 ‘소름’은, 이 녀석들이 제 질문에 대해 ‘언약과 성취’(초등부는 ‘약속대로 이루심’)의 논리에 맞추어 대답할 때 입니다. 그것이 그냥 자동적이고 형식적인 대답이 아니라, 여태껏 가르쳐준 흐름과 맥에 따라 스스로 유추해냈다는 것이 더 큰 감동입니다. 이 전율과 희열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아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두루뭉술하고 뿌옇기만 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이 성경이라는 책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성경의 내용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진리가 되고, 어떻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 희박한 수에 저를 넣어주시고 이렇게 써주시는 것,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