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치는 네 번째 편지
우리나라의 선선한 봄 같았던 이곳의 겨울은, 4월과 함께 부드럽게 떠밀려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냉랭한 실내 온도 때문에 항상 챙겼던 얇은 카디건도 옷장 깊숙이 넣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직은 그 문턱에 머리를 디밀고 있는 정도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들려오는 말로는 인도의 여름 기온은 한국 찜질방의 온도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머리를 감고 나가면 5분도 채 안되어 바짝 마르고, 빨래 역시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 안에 옷감이 바삭거릴 정도로 건조되고, 후끈한 공기 인해 살갗이 아프며 체력이 훅 훅 떨어진다고 말입니다. 50도가 되면 공무원들에게 의무적으로 휴무를 제공해야 하기에 온도계를 조작하기도 한답니다. 한국에서는 집 안의 에어컨이 다소 사치일는지 모르지만 인도에서는 생존과 관련한 아이템입니다. 아직 이곳의 더위를 체험해보지 못한 저로써는 기대와 두려움 반반씩을 안고 있습니다. 무릎 건강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혹여 너무 더운 탓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요. 4월 초인 지금의 날씨엔 가정집의 대부분이 선풍기를 틉니다. 지난주엔 교회에서 에어컨을 틀었었구요. 중고등부 방에만 정전이 되는 바람에 핸드폰의 조명을 켜놓고 아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마치 화생방 훈련이라도 마친 양 문 밖으로 튀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배 터지게 웃었던 저는 그리 어른스런 선생님은 못되나 봅니다. ^^
인도생활 4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들이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책상 앞에 붙여 놓은 가족과 교회 식구들 사진, 페이스북으로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 한국에서 가져온 펜 하나만 봐도 콧잔등이 시큰거립니다. 처음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버려서 겁이 났었는데 요즘은 나머지 시간들을 어떻게 버틸까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저의 작년 4월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맘때의 나는 무엇을 하였던고 하니, 이단 종교의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더랬죠. 해외에 1년간, 무료로 보내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그 때가 아니면 안 되는 사람처럼 강박적으로 외국엘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거기서 돌아와 애처럼 울고불고 생떼를 부렸던 기억이 나네요. 나 혼자 이 진리를 안다는 것에 감격하기도 했고 외국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서럽기도 했고… 그리고 지금, 인도에서 지내고 있어요. 정말 딱 1년이라는 기간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마음을 주시고 여건을 조성하시어 꿈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다만 그걸 제가 모르고 넘어갔거나, 알아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거겠지요. 하나님은 참 치밀하고 주도면밀한 분이시란 걸 부쩍 느낍니다. 꿈을 이루어주실 뿐 아니라, 인간 ‘개조’(!)도 해주시더라구요. 제가 지극히 싫어하고 마음에 안 들어했던 저의 어떤 면을 닳고 닳을 때까지 깎아주셨습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하게도 해주셨고, 그를 통해 치떨림과 분노 보단 하나님 앞에서 올곧게 해석할 수 있는 지혜도 부어 주셨구요. 그래서 하나님을 가르치고 섬기는데 있어 필요한 자질을 하나 둘씩 갖추어 가게 하십니다. 궁극적 완성이야 이 땅에선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다듬어진 스스로의 모습은 어떨는지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이곳 인도 땅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한 가지는, 나는 정말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구나 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선 이렇게까지는 아니었거든요. 말도 안 되는 우상과 인형, 그림을 갖다 놓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힌두교임을 상징하는 가리마의 붉은 점과 손등의 문신을 볼 때 특히 더 먹먹해집니다. 비약일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내가 당신의 택한 자임을 알게 하기 위해 창세 전 그들을 준비하고 만들어 놓으셨음을 떠올리면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구요. 해가 어스름 질 무렵 모자 하나를 푹 눌러쓰고 인도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때,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성경 강론을 들으면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분명하고 날카로운 하나님의 구별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저는 아무것도 한 적이 없으며 정죄를 당하지도, 대가를 -드릴 수도 없거니와- 드린 적도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감사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자녀 삼아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저는 그저 이 사랑을 먹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