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2-06-02 16:27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인도에서 부치는 다섯번째 편지


1년이라는 애매모호하게 짧은 기간으로 작정하고 왔으면서도 이 곳의 음식과 기후, 문화, 사람들에 부딪치다 보면 달력부터 뒤적이게 됩니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식으로 버텨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면 쏜살같던 하루 시간도 얼마나 더디게 느껴지는지 가슴이 답답할 뿐입니다.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들을 날 것으로 마음껏 먹고 싶은 게 요즘의 바람입니다. 양상추를 (구하기도 힘들지마는) 한 번씩 먹으려고 할 때마다 초벌로 씻고 다시 야채세제에 씻고 수돗물에 헹구고 다시 정수기 물에 헹구는데 여간 귀찮고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그걸 떠나서, 열심히 씻어내도 독한 농약과 방부제들이 다 씻겨나갈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먹는 김치에선 소독약 맛이 나고 과일은 한여름의 상온에서도 어지간해선 썩지 않으며 한국식 식재료는 구하기가 어려워 그 날 그 날 끼니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도 하나의 일과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인도 사람들이 너무나 싫고 밉습니다. 수치심이나 체면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은 눈과 눈을 마주친 채 말을 섞으면서 속이고 훔치고 불성실하게 굽니다. 거짓말이 들통 나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되려 자기가 충고를 하는 등 뻔뻔하게 굽니다. 속이 터지고 열불이 나는 쪽이 손해입니다. 얼마 전에는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도로 위의 선은 구색을 갖추기 위함일 뿐 아무도 그것을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뻥!’하는 굉음에 가스가 터지는 줄 알았더니 뒤쪽의 트럭이 박은 거였습니다. 목과 척추에 충격이 오다 못해 두개골까지 깨질 듯 아팠지만 운전기사들은 내려서 자동차만 체크하기 바빴습니다. 경미한 사고에도 뒷목부터 잡고 내리는 한국 사람들이 그리워지던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낸 택배도 집으로 바로 배송해주지 않고 타 지역 오피스에서 붙잡아 놓고는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을 들이밀며 내용물이 다 썩도록 한 달 가까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집만 정전이 되어 세 시간 넘도록 냉장고 퓨즈가 나가 먼지 폭풍바람을 헤치고 관리실에 갔더니 이상한 신청서를 주며 이걸 작성하고 돈부터 내라고 합니다. 자동차의 에어컨이 고장 나 사우나처럼 후끈거리는 뙤약볕에 차를 세우곤 대책 없이 서성거리는 운전기사를 보며 발끝부터 주체할 수 없는 ‘강퍅’이 차오름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불합리합니다. 대충대충 설렁설렁 야매야매. 사람들은 그것이 인도라고 하며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지요. 지금의 마음으로라면 저는 후자 쪽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고단함을 위로해주는 한 가지는 바로 저의 학생들입니다. 3주 전에인가, 중고등부에서 쪽지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10문제 중 하나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었는데, 스무 명 학생 중 4명 정도가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답을 적었어요. 아직 역사서를 공부 중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부활절 특강 때 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고 놀라운 성과지요 (T.T) 채점을 하면서 가슴 벅참을 이기지 못해 올레!를 외치곤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중고등부만이 아닙니다. 초등부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막힘없는 대답에 보조교사들이 늘 놀라곤 합니다. 매 시간마다 성경 각 권의 주제를 스토리로 엮어주며 복습을 시키는데 무턱대고 외우는 게 아니라 나름의 논리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리지요. 공부 시간이 짧은 게 아쉬운지, 노트를 펴고 펜을 든 꼬맹이들은 빨리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하라 성화입니다. 성경에 관심도 없던 한 고등학생이 제 부활절 강의를 듣고 엄마를 불러다 앉혀 강의 내용을 쭉 설명하더라며 감격스러워하는 어머님의 인사를 들었을 땐 제가 더 뭉클했습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매번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나 되뇌입니다. 꼭 금메달 딴 선수처럼요.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 중 가장 애정하는 것이 교회이고 그 눈동자는 늘 교회를 향해 있으며, 교회를 세워가시는 목적은 여호와를 알고 경외하기 위함이고 그리하여 여호와가 누구인지 소개해주는 일은 너무나 소중하며 귀하고 값지다는 아빠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습니다. 창세전에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마음을 주시어 이런 아름다운 일에 저를 써주심이 기적처럼 느껴집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내게 손해라는 바울의 말이 뼈저리게 와닿습니다. 하나님의 눈 안에 들어서 예쁨 받고 있다는 사실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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