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운동으로 인한 교회의 하나됨 안에 다름
1.서언
여기서‵ 하나‵ 됨 과 ‵다름‵ 의 뜻은 단순한 인문학적 의미의 용어로서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의견이나 감정의 일치(一致⁄consent) 혹은 불일치(不一致⁄dissent)를 의미하는 어떤 세속적 행태나 행동양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이 글의 주제에서 표현하고 있는 하나 됨(union) ⁄다름(unique)이라는 용어의 함의(含意)는 성경신학을 근거로 하여 말씀운동에 입각한 성경 해석학적 확신과 믿음으로 인한 통찰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열어 보여주시는 통합적 시각을 필자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는 말씀운동의 신학적 근간을 이루는 성경신학적 틀에 의하여 성경을 한권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사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합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사실적 근거는 첫째, 성경은 결코 인본주의 사상이나 이념에 기초한 윤리. 도덕적 교훈이나 철학의 내용이 아니다. 둘째, 성경이 66권으로 파편화(破片化⁄fragementation)되어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로고스(Logos)로서 온전한 해석이 불가능 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 편에서 주권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선포하시는 방식으로 언약. 성취의 논리적 구조에 의한 성경 전체의 의미의 통일성을 일원론적으로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성취의 확증 의하여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명제적으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계시(self_revelation)에 의한 당신의 존재와 속성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하시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성도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각양 은사에 따라 특별한 부르심 즉 서로 다름으로 부르신 존재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여호와이시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교회(하나 됨)를 이루게 하기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말씀의 공급에 의하여 연락하고 상합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다.
2.말씀운동으로 인한 교회의 통합적 사고 ⁄ 하나됨안에 다름
사도 바울은 아직 사울이었을 때 자기가 믿고 추종하던 유대교의 율법주의로 인하여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옥에 가두는 일에 열심이었던 철저한 유대주의 자 이었다.
사도행전 9:3_6 에서는‘ 그가 길을 가는 중에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왔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져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으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므로, 그가 말하기를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이다. 일어나 성읍 안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네게 일러줄 자가 있을 것이다.”
진리의 빛 되시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음성을 듣고 바울이 사도로서 소명을 받게 되었던 동기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고백을 그의 서신서 서두 마다 고백하고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는 사망의 법 즉 율법의 체제 아래 있던 사울을 생명의 성령의 법인 사랑의 법 안으로 사도 바울 되게 하신 창세 전 부터 하나님의 작정 섭리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예비 하시고 그의 전 생애를 이방을 향하여 복음 전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비밀에 붙들림(union) 이 있게 했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부르심이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고유한 사명 즉 다름(unique)이 있게 하셨다.
3. 말씀운동: 시대적 도전과 응전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씀운동 가운데 두시고 21C신학의 혁명 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계시적으로 보게 하시는 신령한 교회 관을 허락 하셨다. 교회의 하나됨과 다름에 대한 통합적 사고의 기틀을 말씀운동과 함께 다져오게 하셨던 것은 지금 우리에게 교회 체제개혁을 하게 하시는· 근본적인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말씀운동으로 설립된 교회의 통치원리는 성경신학을 근간으로 하는 성경을 순전하게 바라보게 하신 언약 성취의 계시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 하신다.
이 시대 참 진리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는 갈급한 영혼들이 있음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셨다. 16C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을 들어 일으키게 했던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절대권위만을 주창 하였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만을 외쳤던 진리운동으로서 교회사의 큰 전환점 이었다.
그러나 18C 계몽주의 이후 서구신학은 성경의 절대 권위와 영감, 그리고 통일성에 대한 회의와 함께 역사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라는 신학의 그릇된 방법론이 자유주의신학으로 둔갑하여 구라파 교회의 생명력을 이미 잠식해 버렸다. 또한 오늘날의 시대정신인 불확실성과 상대주의(relativism) 가치에 흔들리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영향 아래 신비주의, 기복주의, 종교다원주의 신앙으로 성도들을 오도하고 있다.
이는 종교개혁과 이후 계승자들은 성경의 권위와 정확 무오성을 주장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전체적이고 구조적인 논리를 통해 입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성경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 도전의 빌미를 주었다.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 현 시점에서 종교다원주의와 포스트 모던니즘으로 옷을 갈아입고 도전하는 자유주의 신학(인본주의 신학의 통칭)의 도전은 종교개혁 이래 최대의 도전을 해오고 있다.
4. 결 론
말씀운동은 성경해석학적인 원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성도의 구체적인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교회란 에베소서가 증거 하는 대로 영원한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으며 그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 가운데 신령한 교회가 역사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때의 교회는 만물위에 있으며 만물을 충만케 하는 충만 이다.(엡1:22_23) 성경은 이런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그리고 신령한 교회의 모습을 전제한다.
이것이 말씀운동의 진정한 교회관이다. 이런 신령한 교회의 하나님 계시적의미가 확인된 다음 제도적인 의미의 교회 역시 중요하다. 신령한 교회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 교육적인 의미의 그리고 사랑에 입각한 제도적인 교회가 이루어져 간다. 신령하고 우주적인 교회 그리고 그에 따라 세워져 가는 제도적인 교회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우고 통치하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통합적인 사고를 갖게 하시는 말씀운동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