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0-05-27 18:59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포도원과 하나님의 보살핌


고대에 포도농사는 극진한 보살핌과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잠시라도 소홀하면 포도원은 금새 황폐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에 대한 상징을 말할때에 항상 두가지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첫째는 맹수를 막고자 양의 문에서 자지않고 양들을 지키는 ‘목자’이고, 둘째는 도둑과 맹수의 침입을 막고자 망대에서 자지않고 파수꾼처럼 지키는 ‘포도원지기’이다.

이 두가지 역할에 대한 이미지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돌봄’에 대한 상징으로 성경에 종종 등장하는데 ‘밤에 졸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하나님은 극진한 사랑으로 완벽한 포도원을 만들고 지속적인 관리를 하셨지만, 마땅히 좋은 포도를 맺어야 할 이스라엘은 들포도를 맺고야 말았다. 그들은 실로 배응망덕했다. 극상품 포도를 히브리어로 ‘소렉’이라고 하는데, 이는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에 나오는 들릴라의 고향이기도 하다. 날 때부터 나실인이었던 삼손은 소렉(극상품 포도원) 골짜기 출신의 들릴라에게 미혹되어 결국 하나님이 주신 큰 힘을 탕진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삿 16:4)

성서시대 이스라엘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40세 정도였다. 여자들은 짧아서 30세 전후였는데 이는 출산 중에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포도원 재배는 성서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체 수명에서 1/6 정도의 시간을 드려야 그 소출을 얻을 수 있었다. 무화과 재배와 함께 많은 돌봄과 정성이 필요한 포도 재배는 성서시대 유대인들의 상징과 문화가 되어 성경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 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왕상 4:25)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왕하 18:31)

포도 재배를 해서 그 소출을 얻는다는 것은 오랫동안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를 의미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전 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공멸을 막고자 이후 정신을 차리고 국제연합인 ‘유엔’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전쟁이 없는 세계를 꿈꾸며 노력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잿더미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한국도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한 결과 유엔의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유엔 건물의 입구에는 유명한 말씀이 적혀 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는 말씀인데, ‘보습’은 논밭을 가는 쟁기를 의미하며 ‘낫’은 번역이 잘못된 단어로서 ‘포도의 가지치기를 하는 전정가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농촌에서 벼를 베는 그 낫이 아니다. 창과 칼은 당연히 전쟁을 위한 무기일테지만, 그러한 창과 칼을 쳐서 쟁기와 전정가위를 만든다는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특별히 농사의 전정가위가 장기적인 평화를 염원하는 유대인들의 표현에 등장하는 것은 오랜 돌봄이 필요한 포도에 대한 유대인들의 상징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단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스비 아니하리라”(사 2:4)

남유다 말기, 극도의 우상숭배와 타락으로 인해 바벨론에 의한 멸망만을 남기고 있던 여호야김 시대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리셨다. 광야에 살고 있는 레갑 족속들을 성전에 불러들여서 포도주를 마시우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레갑 족속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도 재배치 말며 두지도 말고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쳐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렘 35:6-10)

광야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짓고 정착하면서 안정적이고 보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런데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유다 말기까지 여전히 집도 짓지 않고 씨도 뿌리지 않고 포도원도 재배하지 않으며 광야의 텐트에서 사는 레갑 족속이 갑자기 부각된 것이다. 하나님은 남유다 말기에 왜 성전으로 광야의 레갑 족속을 불러들여서 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일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농경문화의 럭셔리한 삶으로 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농경문화의 풍요의 신인 바알에게 빠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상 숭배와 그로인해 곧 임할 멸망을 경고하신 것이다. 레갑 족속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그들의 조상인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하여 광야에 거하며 ‘무소유의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양들을 치던 레갑 족속들을 불러서 이들에게 농경문화의 대표적 산물인 포도주를 마시게 함으로써,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친밀하게 하나님을 체험했던 시절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레갑 족속은 포도주의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는데, 이는 바로 자기네 조상 요나답의 명령 한마디 때문이었다. 조상의 말에 철저히 순종한 레갑 족속과 달리, 이스라엘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듭된 책망과 명령에도 불구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우상숭배를 멈추지 않았으니, 우직하게 순종하며 광야에 거한 레갑 족속은 멸망이 임박한 남유다 사람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모델이었던 것이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 선조가 명한 그 명령을 준행하나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렘 35:16∼17)

레갑 족속의 모델은 지금도 유다 광야와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한 네게브 사막을 중심으로 텐트를 치며 거하는 베두인 아랍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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