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치는 열한 번째 편지, 너희는 빛의 자녀라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날이 가까워서일까 꽤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상황, 분위기를 잘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참 대단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의 한마디나 그의 기분에, 생활하고 있는 거주지나 주변 환경에 저는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날아다니기를 반복했었고 그런 자신을 인도에 와서야 비로소 관찰할 능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아침에 눈뜨자마자 이동수단부터 걱정해야 하고 차량이 없을 경우 집에 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날들이 반복되면 얼마나 외롭고 지루하고 갑갑하던지요. 소독약 냄새나는 쌀에 유통기한 지난 김을 반찬으로 먹다 결국 기름진 과자로 끼니를 대신할 땐 멍하게 창밖을 보며 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건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혼자 울던 날도 많았습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불편하며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투쟁의 연속인 이곳은 혼자 있는 시간을 기꺼이 즐겼던 저를,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어렸을 적 사경회에서 봤던 것 외에는 근 십년 간 크게 만날 기회가 없던 동생들이었습니다. 헌데 지체의 힘이란 게 참 놀라운 것이, 단박에 큰 갭의 시간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해주더라구요. 석준이와 해성이를 공항에서 보는 순간 어린 시절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귀여운 얼굴들에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반갑고 또 신이 났는데,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색깔의 기쁨이었어요.
여행자거리의 옥상 카페에서 인도식 저녁을 먹으며 녀석들이 잠깐 거쳐 온 일본에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곳에도 우리 말씀운동 지체분들이 계신데 간절함과 뜨거움으로 진리를 사모하시며 애쓰고 계신다 하더라구요. 강론집이 오는 날만 목 빼어 기다리시다가 공항에서 책들을 받으시곤 아이처럼 행복해하셨다는 얘기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예전엔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는데 외국에서 지내보니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 분들이 참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어요.
녀석들과의 여행은 유쾌했습니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박장대소하고, 요즘 유행한다던 노래를 볼륨 높여 듣고, 기분이 내킬 때마다 사진을 찍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굳이 입을 열어 말을 섞지 않아도 ‘지금,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든든하고 재미나던지. 정수리 위로 작열하는 태양빛과 얼굴 앞에서 어른거리는 무시무시한 코끼리 엉덩이에도 인상을 찌푸리는 법이 없었지요. 이십 중반의 청년들임에도 마냥 아이 같기만 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엄마 미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유적지가 볼만했던 자이뿌르라는 도시는 옛 성곽과 궁전들로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더위에 찌들어 있던 우리는 순전히 내부가 시원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한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다소 어두웠던 그 곳은 우리의 간절한 염원에 걸맞게 에어컨이 구비되어 있진 않았지만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큰 휴식이 되었죠. 뜨거움도 뜨거움이거니와 자꾸 그을리는 피부 때문에 영 신경이 쓰였던 저는 박물관 안에서도 빛을 피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빛. 피하려고 하다 보니 자꾸 쳐다보게 되고 그러면서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빛의 심오함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가장 어두운 모퉁이 구석에도, 빛은 희뿌연 공기처럼 고여 쾌쾌한 먼지를 비춰내고 있었지요. 걸음을 옮겨 더 어둑한 곳으로 갔습니다. 전시장 뒤, 우상 아래, 커튼 속. 빛은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빛이란 것은 닿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가리고 숨기려고 해도 미세한 틈새로 마구 뻗어 나와 주변의 숨죽인 모든 것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빛의 자녀라’. 빛처럼 압도적인 것이, 빛처럼 절대적인 것이 또 있을까요. 태초에 있었던 그 빛이, 내가 그 빛의 자녀라는 사실에 새로운 두근거림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나와, 지체로 엮인 빛의 자녀들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박물관 입구에 앉아 물을 마시던 두 마리 청년들^^- 우리의 아름다운 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곱씹어보았습니다.
창세 전 이미 그리스도 안에 존재했던 우리들이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대한민국 땅에 동시대인으로 태어났고 다른 종교가 아닌 기독교인으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에, 그것도 말씀운동의 일원으로 엮여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그 이후의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팔과 몸과 다리가 되어 언제까지나 함께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땐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냥 같은 교회를 다니는 식구들, 정도로. 그런데 인도에 덩그러니 떨어져서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진리를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싸우는 동지요, 동역자들이었습니다.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현상적으로밖에 느낄 수 없던 것들을 여기에서야 배우게 되었어요. 또한 이 곳에도 뜨거운 마음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지체들이 많았습니다. 전심전력을 다해 ‘주를 위해 산다’ 는 말에 부끄럽지 않도록 투쟁하시는 분들을 보며 저 역시 숙연해졌습니다. 어쩌면 하나님 존재에 대해 우리만큼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확증을 거치지 못했을 것임에도, 나의 신앙을 다시금 돌아보게 할 만큼 열심이었습니다. 우상과 잡신이 난무한 인도 땅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진리. 그것을 위해 싸울 군사로, 가치 있는 존재로 택함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명예로운가 싶더라구요.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과연 제가 인생의 선배로, 신앙의 선배로 녀석들에게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나 하는 뒤늦은 자책감을 갖기도 했지요. 흑. 도리어 제가 그들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바가 많아 뒤늦게나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리구요. 너희가 와서 너무너무 좋다고, 너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쁘다고 말했을 때, ‘누나, 저희도 그래요’ 라며 서슴없이 대꾸해주던 한마디가 어찌나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지. 이런 말을 하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이여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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