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교회동역자협회  

 
작성일 : 12-12-26 22:02  기사 출력하기 글쓴이에게 메일보내기
 

인도에서 부치는 마지막 편지


작년 이 맘 때가 꼭 지금과 같았습니다. 싱숭생숭하고, 마음이 붕 떠 있고,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인도 행을 결정하고 떠날 날짜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무수한 복합적인 감정들을, 저는 이제 한국으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또 느끼고 있습니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심란한 이유는 또 다시 새롭게 맞이해야 할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하고 있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곳에서 사람을 배웠습니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고, 판단과 정죄를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나약하고 그리하여 너무나 불완전한 인간들을 경험했습니다. 홈그라운드가 아니었기에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내면을 깊이 파고들며 자신을 성찰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존심이 바스라지기까지 매달려도 보았고, 내팽개쳐진 와중에도 관계 회복을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기도 했고 결국 스스로를 버려둔 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은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과, 그러기 위해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단단하고 견고하면 ‘관계’에서 오는 만족과 슬픔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고, 무슨 일이 닥치든 타인을 의식하기에 앞서 내 자신을 먼저 돌볼 수 있게 되겠더라구요.
  돌아갈 날을 목전에 두고 소회에 젖어봅니다. 처음 와서 뭣도 모르고 적응하느라 헤맸던 겨울, 갑작스레 찾아왔던 뜨거운 봄과 여름, 선선해지면서 숨통이 트이던 가을. 이제 겨울입니다. 한국과는 다른 사계절을 겪으며 한국에서는 다른 교육 방식으로 하나님을 깨달았습니다.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이 땅에서 말씀 하나만 가진 채 버티고 깨지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영영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이 흘러 무사히 훈련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다시 떠올리는 것이 조금은 버거운 1년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가르치던 때만큼은 행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떠나기 2주 전, 중등부 학생들과 쇼핑몰의 식당 코너에 앉아 정담을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채 듣지 못했던 나머지 신약 강의를 해달라 부탁해왔습니다. 한창 철없고 놀기 좋아할 나이의 녀석들이 그 정신없는 곳에서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다른 게 선물이 아니구나 이게 진짜 선물이구나 하고 가슴이 뭉클해져 왔습니다. 성경공부 내내 녀석들은 녹음까지 하며 열의를 보였고 마칠 때는 깨알같이 빽빽한 글씨가 적힌 편지와 아기자기한 선물들로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가르치면서 말씀으로 소통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교사라는 직분이 이렇게나 근사한 것인지에 대해 재발견 했달까요.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공부가 되었고, 가르치면서 또 한 번 배우게 되었고, 아이들의 질문에 다시금 확인하게 되며 여러 차례의 확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말씀을 전할 때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이루어지던 그 뜨거운 공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경험이자 자산이 되었어요. 성경이 이런 것인지 몰랐다, 성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성경이란 게 뭔가 대단한 것 같다- 라는 말들을 들을 때면 그래도 내가 허튼소리를 하지는 않았구나 하며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왜 한국에 가시냐고, 꼭 가셔야 되냐는 질문에 문득 한국에 있는 제 교회와 그곳 지체들이 떠올랐습니다. 투정을 빙자한 서운함으로 물어보았을 것임에도 단호할 만큼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라구요. 잠시 비워두었던 자리는 다시 돌아가 메워야 하고, 원래의 제 몫에 성장한 만큼의 값까지 더 해 동역자들과 함께 수고하려 합니다. 말이 좀 거창한 것 같은데 오래 생각해 왔던 부분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절실하게 느낀 이 진리의 우월함 그리고 소중함. 진리가 귀하기에 그것을 담는 그릇 또한 여물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께 기쁨으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한국의 내 학생들에게, 내가 확증하고 확인한 것들을 이전보다 더 소리 높여 전할 수 있겠지요.
  어리고 약하고 그저 교회의 한 일원 정도에 불과했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젠 주의 일을 함에 당당히 한 몫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슴 벅찹니다. ‘진리를 위해’ 살았다고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으신,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일을 해오신 말씀운동의 훌륭한 선배들을 본받아 저 또한 복음의 본부인 한국에서 열심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또 당신의 때에 저를 쓰심에 있어 부족함이 없도록 정진하고 싶어요.
  1년 동안, 한국행 비행기 표만 수십 번을 들여다봤고, 제대를 앞둔 군인처럼 날짜에 그은 엑스표로 달력이 지저분합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으로 가슴이 터질 뻔 했던 날들을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 까닭은, 아팠던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깨진 만큼 굳은살이 붙었고 나의 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으며 그것들을 개선해 나갈 노력과 의지를 키웠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무척 재미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 것도 성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에 대해 깨달은 것도요.
  이 곳에 와서 힘들 때마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크게 쓰시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다는. 그런데 저는 그 ‘크게 쓰신다’라는 말이 주는 환상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현재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순간, 지금, 오늘 나를 나 되게 만지시고 쓰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 하루가 모여서 또 다른 때를 주시는 것이기에 매 순간 소중하지 않은 때가 없지 않나 싶어요. 나중의 잘됨을 위해 지금을 견딘다고 생각하면 나의 지금을 부정하는 것 같은, 모든 것을 결과로만 환원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지금의 이 힘듦 역시 나를 쓰고 계시는 중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무릎이 아팠던 작년 1년을, 저는 그런 식으로 견뎌서 후회가 되었거든요. 끝만 바라보며 현재 이를 악무는 삶이 아니라, 현재도 충분히 어루만지며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천국이 있으니까 여기선 하고 싶은 대로 대충 살아 보자가 아니라 영원 속 이 피조 세계는 이번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에 하나하나 샅샅이 느끼고 매 순간 전력으로 임하자고 말입니다.
  어서 빨리 돌아가 많은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돌아갈 곳이, 반겨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합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만나서 할까요? ^^ 1년간 인도 땅에서 훈련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신 임마누엘 교회에도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인도에서의 마지막 편지를 부칩니다.

글쓴이 프로필
글쓴이 :

안과 질환 이렇게 치료한다
인도에서 부치는 열한 번째 편지, 너희는 빛의 자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