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것에 당연함이란 없다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
주인공 우시지마는 카우카우 파이낸스의 대표 즉, 사채업자이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소위 나쁜 놈. 그리고, 이 나쁜 놈에게 기꺼이 자신을 의탁하는 자들의 무수한 사연이 만화의 주를 이루고 있다. 이를테면 도박에 중독되어 파칭코를 드나드는 남자, 남편의 퇴직금을 주식에 쏟아 부었다가 빚을 진 주부, 돈 때문에 승객을 죽인 택시기사, 명품을 사기 위해 혹은 양아치인 남자친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 부모님께 기생하며 살다가 집이 차압을 당하게 되자 졸지에 노숙자가 된 젊은 남자, 깡패들의 협박으로 매달 돈을 만들어야 하는 청소년, 잡지에 실려 패셔니스타가 되기 위해 자신을 잃어가는 남자 등등.
만화를 보며 섬뜩했던 건, 그들 인생의 면면이 현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들은 쉽게 쉽게 기억에서 잊혀지는, 한 번 보고 돌아서면 끝인 속편한 ‘가상의 사건’이 아니다. 하나를 안으면 그 다음의 하나를 쥐기 위해 손을 벌벌 떠는 욕망과 그 욕망을 기어코 채우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리는 처절한 집착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등장 인물들이 가진 탐욕이나 질투, 분노, 불안과 불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잠복해 있는, 불행의 씨앗들이다.
나 역시 그것들에 사로잡혀 스스로 피를 말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정확하게 정립하지 못한 탓에, 내가 도달할 수 없거나 혹은 때가 아니어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표독스레 손을 뻗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능력 밖의 것들을 해보려 허덕거리고,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현재의 기쁨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망쳐버리곤 했다. 그러면서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태도로 하나님을 원망하기가 다반사였다. 물론 모태신앙인데다 마음이 건강한 부모님 덕에 이정도(?)의 신앙심을 구축하고 있긴 하나 기본적인 컨셉이나 마인드는 늘 투덜이였다. 가끔 이런 작품들을 통해 본정신이 돌아올 때면 정면으로 돌진해오는 트럭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내가, 그러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아직도 여전히 착각하는 한 가지 사실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여긴다는 점이다. <사채꾼 우시지마>는 그 지점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보살피심과 붙드심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도박에 중독되고, 명품에 목숨을 걸고, 깡패들과 잘못 엮여 협박을 당하고, 주식으로 돈을 홀라당 날려 노숙자 신세로 살았을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결단코,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땐 ‘대체 왜 저렇게 살아?’가 되지만,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거라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물론 단 한 번도 노숙자와 관련된 삶을 꿈 꾼(?) 적은 없다. 하지만 상상해보라. 하루아침에, 무일푼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채 으슥한 지하도에서 시커멓게 구걸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과연 나는 평생 ‘그런’포지션에 위치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있는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런 험한 일에 엮이지도, 내 존엄성을 무너뜨리지도 않고 이 사회의 버젓한 구성원으로, 교회의 조약돌 같은 지체로 역할 할 수 있는 건 나의 쓰임새를 그렇게 정하신 하나님 덕분이다. (심지어 진리까지 거저로 깨닫게 해주셨다!) 게다가, 개개인의 분량과 분복과 커리큘럼-하나님을 배워나가는-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나. 다행히 내가 욥이나 바울 같은 그릇이 아니기에(?) 이 정도의 레벨에서 형통과 불통을 함께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설령 이 땅 위에서 농축된 절망을 맛보게 되더라도 꺾이지 않을 수 있는 건 믿고 비빌 언덕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주어진 것에 당연함이란 없다. 이 땅에 태어나 내가 일구고, 내 재능과 의지로 가진 것은 없다. 설령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앉아 공부하는 수재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과 여건 역시 본인이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염치 불구, 바라는 것이 더 있다면 존엄과 품위가 상실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넘치게 행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사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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